각자도생의 세상에서 연대하고 공감하는 변호사들

[김성호의 독서만세 247]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바랐던 바라던 바라는>

등록 2024.09.16 16:05수정 2024.09.1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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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을 후원한지가 올해로 9년째다. 출범한 지 20주년이 되었다니, 나는 그 절반 조금 못되는 시간을 후원자로 지켜본 것이다. 기자를 관두고 벌이가 줄어들며 후원하던 기관 다수를 해지했지만 끝내 몇 개는 남겨두고 지켜보았다. 공감도 그중 하나다.

가장 지지해서가 아니다. 가장 신뢰해서도 아니다. 지지와 신뢰가 굳건한 것 가운데 후원을 끊은 단체가 얼마나 많았는지. 나는 도리어 나를 의심케 하고, 고민하게 하며, 불편하고 갈등하게 하는 활동을 하는 이들을 가까이 두고 지켜보길 선택하였다.


어느 모로 보아도 나는 공감력이 있는 편은 되지 못한다. 나와 가까운 이들 가운데선 벌써 수십 년 째 나의 부족한 공감을 질타해온 이가 수두룩 빽빽이다. 그로 인해 의도와는 관계없이 갈등을 빚고 상처를 주어온 때가 잦았으니, 지금껏 이어온 관계와 그에 깔린 애정이 내게는 남달리 귀할 수밖에 없다.

삶이란 도대체 어찌 흘러가는 건가. 나는 공감이 대단한 미덕으로 여겨지는 직업을 택하여 제법 오래 일해왔다. 신문기자로 6년을 보냈고, 또 영화평론가와 서평가로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그 과정에서 부족한 공감은 때때로 장애로 작용했다. 눈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는 이들에게 무표정한 모습으로 대응한 때가 잦았다. 공감보단 분노로, 나는 내 앞에 놓인 과제며 장애와 대면하는 게 익숙하다. 그러고도 꽤나 괜찮은 성과를, 사회에 이로움을 전한 날이 있었단 건 역량보단 운이 좋았던 덕이겠다.

바랐던 바라던 바라는 책 표지
바랐던 바라던 바라는책 표지공감

도움이 간절한 이들 곁을 지킨 변호사들

공감을 알게 된 후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그 활동을 꾸준히 지켜보았다. 한국 최초의 전업 공익변호사단체로 출범하여 도움이 간절한 이들 곁에서 그 곤란에 대응하는 작업을 이들이 꾸준히 이어왔다. 이름 그대로 공감이 없다면 할 수 없을 일이다. 사회를 이롭게 하고 약자의 고통과 불편을 해소하는 일에 기꺼이 나서는 일이 아닌가. 부끄럽게도 이들이 맡아온 일 가운데 내가 문제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일이 적지 않았다. 내 안에 무뎌지고 외면하며 이해 없이 판단하려는 마음이 가부좌를 틀고 있음도 수시로 느낀다. 나는 이를 경계하고자 그들의 활동을 더욱 관심 있게 지켜보았던 것이다.

<바랐던 바라던 바라는>은 공감이 20주년을 기념해 그간의 활동을 정리한 자료집이다. 변호사단체답게 입법과 사법, 행정 등 법이 작용하는 여러 상황에서 입법활동과 소송 등을 벌인 성과가 망라돼 조직이 걸어온 지난 여정을 알기 쉽게 정리한다. 법률지식이 없어 곤란을 겪는 각급 사회단체와 연대해 힘이 되어주고, 소송 뿐 아니라 근본적 제도개선을 위해 애쓰는 이들의 모습이 사회를 진보시키는 공익적 법률가가 무엇인지를 알도록 한다.


활동영역만도 여럿이다. 이 단체는 여성과 장애, 빈곤·복지와 취약노동, 성소수자, 이주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뚜렷한 성취를 남겼다. 간략히 적어보자면 이런 것이다. 공감은 '염전노예장애인사건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함께 이른바 '염전노예사건' 관련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도와달라"며 수차례 파출소를 찾아갔으나 경찰에 의해 번번이 염전주인에게 돌려보내졌던 한 사례에 대해서만 국가책임을 인정했다. 이에 불복한 소송이 이어졌고 서울고법은 국가책임을 인정하여 원고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자료집은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가해자와 함께 조사하는 등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경찰과 근로감독관,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는데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지자체 공무원, 실종자로 등록된 피해자에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가해자의 노동착취를 방치한 경찰 등의 책임을 인정'했다고 판결의 의미를 되새긴다. 판결은 지난 2019년 확정돼 장애인 착취 사건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행동책임을 분명히 했다.


광역버스 운전기사 K씨가 흉복부대동맥류 진단을 받은 뒤 수술을 받고 일을 그만두었음에도 근로능력이 있다는 판정을 받고 기초생활수급 급여가 삭감된 사례 또한 언급된다. 공감은 이 사건에 대하여 국민연금공단과 수원시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한다. 여러 시민들까지 나서 여론을 달군 끝에 수원법원은 지난 2019년 해당 조치의 위법성을 인정했다. 자료집은 '잘못된 근로능력평가와 조건부과에 따른 구조적 압박으로 근로능력 없는 K씨가 취업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인과관계를 인정함으로써 조건 부과의 비인간성을 드러낸 점이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장애인, 난민, 사회적 약자의 곁에서

기자로 일하던 시절 직접 보도하기도 했던 사연도 성과로써 언급돼 눈길을 끌었다. 건국대학교가 운영하는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던 직원이 2020년 자살한 사건과 관련해서다. 사망 보름 전 직원 온라인 게시판에 부당함을 폭로하는 호소문까지 게시했던 발버둥에도 글은 20여분만에 삭제되고 작성자 또한 강퇴조치 되는 등 문제가 있었단 사실이 밝혀져 가족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이로부터 제기된 소송에서 서울고법은 근로자가 아니어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와 회사의 보호의무를 인정했다. 캐디가 여전히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과거 판례의 판단은 유지됐으나, 이 판결로써 특수형태근로자의 보호가 강화되는 법적 효과가 생겨나게 되었다.

2021년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발생한 소위 '새우꺾기' 사건에서도 공감의 활약이 이어진다. 법무부와의 면담, 고문피해자 법적분쟁 대리 등을 수행한 끝에 공감은 국가인권위의 인권침해 사실 인정과 외국인보호사 보호장비 사용 개선 권고 등을 이끌어낸다. 다시 그로부터 헌법재판소의 외국인 무기한 구금의 근거조항(출입국관리법 제63조 1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니 외국인의 권리향상의 한 페이지가 비로소 넘어갔다 해도 좋겠다.

이밖에도 시각장애인 지하철 추락에 대한 손배소, 버마 출신 민주활동가 난민자격 취득 행정소송, 스토킹 피해 여군장교의 항명죄 무죄판결, 용산 화재참사 유가족 및 피해자 법률지원, 유엔난민인권규약 국내 이행을 위한 난민법 제정, 알바청소년 및 요양보호사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소송과 입법 지원, 정신병원 강제입원제도 헌법불합치결정,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허가 무효소송, 낙태죄 헌법불합치결정, 쌍용차 해고노동자 복직을 위한 법률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노력이 언제나 마땅한 응답을 받는 건 아니다. 그보다도 꺾이고 이지러져 실망하게 하는 때가 잦다. 이주노동자가 고용센터 허가에 매여 직업선택의 자유를 충실히 누릴 수 없는 상황 등이 대표적이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고용허가제에 따른 사업장변경제한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기업의 안정적 노동력 확보라는 입법목적이 고려된 결과였다. 이로써 사업주는 이주노동자를 내국민에 비해 훨씬 더 수월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이 내국민과 같은 수준에 이르지는 못한단 걸 천명한 꼴이 아닐 수 없다.

나아진 것, 여전히 그대로인 것

동성애자에 대해서도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 공감이 대리인단을 구성해 동성부부의 혼인신고 반려처분에 대한 불복소송을 제기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법원은 '혼인은 근본적으로 남녀결합'이란 사실을 확인하며, 자녀출산과 양육을 통해 사회구성원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들어 동성부부의 혼인제도 배제가 타당하다 판결했다. 시대착오적 판단이란 비판에도 결정은 내려졌으니 상당한 기간 동안 동성부부는 혼인이란 법제도의 혜택으로부터 제외되게 된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기거하는 농장 기숙사에서 한국인 지배인에 의해 이뤄진 성범죄에 대해서도 아쉬운 판결이 나왔다. 야밤에 화장실에 가려던 피해자를 강제로 방으로 끌고 가는 일이 발생한 뒤 피해자가 사업주에게 이를 알렸음에도 가해자를 두둔하며 분리나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업주가 법적 처벌을 피한 것이다. 경찰의 불송치로 사업주의 미조치는 어떠한 책임도 발생시키지 않게 되었으니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여성 이주노동자의 위험이 여전하다 해도 좋겠다.

지난 20여 년 간 공감이 싸워온 많은 영역이 약간의 진전과 여전한 답보를 거듭한다. 지난한 싸움의 성패에 시민의 관심은 간절한 요소일 밖에 없다. 김이수 이사장이 쓴 인사말 마지막 문단은 그 현재가 결코 희망차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린다. 김 이사장은 공감의 기부금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공감 뿐 아니라 후원모델을 채택한 많은 사회적 단체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각자도생이라 불리는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단체에 대한 관심이 줄고 있단 건 이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일이다. 어찌 그를 방관할 수 있을까. 대중 판매서적이 아닌 공익단체의 자료집에 대하여 긴 서평을 써 붙이는 건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필요한 관심이 필요한 곳에 닿기를 바라며.
덧붙이는 글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랐던바라던바라는 #공감 #인권 #공익변호사 #김성호의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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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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