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방과 후 공예 클라스
제스혜영
이해관계 없는 친구로 만나서 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나이를 까먹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서로에게 무례하다는 말은 아니다. '친구' 간 지켜야 할 존중과 신뢰만 있다면 나이는 문제 될 게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나는 이들 할아버지, 할머니 친구와의 대화를 좋아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처럼 느껴져 스릴도 있다.
한 할머니가 자기가 지금 사귀는 연하 남자친구와 울고 웃고 지내는 이야기를 할 때면, 듣는 나도 마치 연애를 하는 듯 설레곤 한다. 스물네 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 그 아들이 어릴 적 낙서했던 벽돌을 만지며 이야기할 때면 얘길 듣다 같이 펑펑 눈물을 쏟기도 한다.
한 친구는 중국 만리장성을 걷다가 자기 선글라스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고. 일단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장벽 밑으로 30분 이상을 걸어서 다시 내려가려고 했지만(구조상 그래야 했단다) 거기 있던 중국 군인이 친구를 보고는 안타까운 얼굴로 안경을 주워서 건네줬다는 이야기를 했다. 만리장성 장벽을 내려 가려던 친구가 흰머리 70대 노인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할머니 친구와 산책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내 걸음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풀밭 사이로 솟아오른 검은 버섯들이 보이고 나무 위에서 햇볕을 쬐고 있던 검푸른 도마뱀도 보았다. 어느 날은 새들의 지저귀는 톤이 달라졌다는 것도 알게 됐다. 보이는 게 달라지는 것이야 이해하는데, 청각도 더 예민해지고 발달할 수 있나? 새삼 신기했다.
'할머니 친구' 반기는 10대 딸... 우린 결국 다 연결돼 있다
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우리 집 열세 살 둘째는 앞집에 살고 있는 제니 할머니(73세) 집에 자주 들락거린다. 이래 봐도 제니 할머니가 재작년 가든대회 때 우리 지역구에서 2등을 하고 신문 앞면에 대문짝만 하게 사진이 찍혀 나왔었다. 사진 속 할머니 옆에는 한 아이가 수줍게 웃고 있었는데, 그 여자아이가 우리 딸이었다.
딸은 두 달 가깝도록 할머니와 함께 정원을 가꿨다는 이유로 '청소년 가든상'을 받았었다. 그날 이후로 딸은 물을 주거나 잡초를 뽑으러 자주 앞집으로 찾아가곤 했다. 어느 날엔 새로운 꽃을 산 할머니가 와서 꽃구경 해보라고 딸을 부를 때도 있다. 딸이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앞집을 자주 드나들 때, 자칫 귀찮을 수 있을 텐데도 제니 할머니는 매번 딸을 반갑게 맞아주곤 했다.
내 엄마인 아이의 외할머니는 한국에서 살고 남편의 엄마인 친할머니는 런던에서 살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에 사는 우리 집에 할머니가 놀러 오는 날은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다. 이모저모로 할머니가 그리운 우리 딸에게, 73세 제니는 딸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어주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