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홍이, 보리와 배추, 란타나, 클레마티스
김은상
돌아갈 시간, 다시 지하철을 탄다. 갑자기 발밑으로 휴대폰이 굴러떨어져 깜짝 놀란다. 한 아이가 휴대전화를 집어 던지며 부모에게 투정을 부린다. 차 안의 모든 시선이 확 쏠린다. 야단치던 부모는 다음 역에서 아이를 데리고 후다닥 내린다. 우연인가? 왜 이리 지하철에서 소란이 잦을까?
터미널 역에 다다랐다. 대합실로 가는 길은 백화점 지하와 연결되어 있다. 짙은 향수와 빵 냄새가 배웅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 대합실에 모여있다. 모여야만 흩어질 수 있는 곳이다. 흩어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타고 모르는 사람 옆에 앉는다.
견디는 시간도 조절되는 것일까? 오금이 저릴 때쯤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부리나케 차를 몰아 시골집에 도착하니 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무사히 귀환했다. 이런 기분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시골 생활이 편안해진 것인지, 혼자 지내는 생활에 익숙해진 것인지.
해가 저문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여기저기 둘러본다. 짧은 부재에 변한 건 없다. 그래도 뜰지기는 알아챈다. 애호박은 훌쩍 컸고, 빨개진 고추가 늘었다. 보리싹과 무, 배추도 조금 더 자랐다. 달리아, 란타나, 클레마티스에게 다녀왔다고 얘기한다. '저 먼 밖은 어수선하고 난처하고 불안하더라.'
허기가 느껴져 밥을 짓는다. 보리 순을 넣은 애호박 된장찌개에 아내가 바리바리 싸준 밑반찬을 곁들인다. 저녁을 먹으며 TV를 켠다. 낯익은 연예인이 택배기사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산골 집집마다 물건을 배달한다. 그가 묻는다. "가끔 도시가 그립진 않으세요?"
산골 사는 어린애는 광고에 나오는 떡볶이를 눈물로 보채고, 피자가 그리운 어른들은 왕복 세 시간 걸려 시내를 오간다고 고백한다. 마침내 아이를 위한 떡볶이가 출연하고 헌신하는 연예인의 모습이 땀 흐르듯 그려진다. TV를 보는 내 고개가 삐딱해진다. '시골 사는 고충도 웃음거리로 쓰이는구나.'
고작 하룻밤 머문 도시는 소나무 껍질처럼 거칠게 느껴졌다. 팍팍한 삶을 잘도 숨기고 있을 뿐, 숫자는 많아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난 이제 시골의 불편이 달가운데, 여전히 도시는 시골이 안쓰러운가 보다. 잘 모르겠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어떻게 길들여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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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초보 뜨락생활자. 시골 뜨락에 들어앉아 꽃과 나무를 가꾸며 혼자인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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