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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반대 작고아나키스트추모제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단주 유림평전 13] 정치가들은 이미 그들의 무능을 완전히 드러내고 만 것이다

등록 2024.10.28 15:12수정 2024.10.2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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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한국광복군 환송기념사진. 첫번째 줄 김구를 중심으로 이시영, 차리석, 박찬익, 조완구 지사가 자리해 있다. 맨 뒷줄에 조성환, 조소앙, 지청천, 이범석, 양우조 지사가 서 있다.
1942년 한국광복군 환송기념사진. 첫번째 줄 김구를 중심으로 이시영, 차리석, 박찬익, 조완구 지사가 자리해 있다. 맨 뒷줄에 조성환, 조소앙, 지청천, 이범석, 양우조 지사가 서 있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현대사가 해방 이후 비탈길을 걷게 된 것은 미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요인들을 개인자격으로 귀국케 하고, 국내에서 조직한 여운형의 인민위원회도 불법화시키면서 도태시켰기 때문이다.

52세에 환국한 그는 시종 통일정부 수립을 염원하였다. 그러나 해방정국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단선노선이 주창되고 이승만이 앞장섰다. 유림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다.

그가 귀국하기 전 서울에서는 8월 29일 다수의 아나키스트들이 모여 자유사회건설자연맹(자련)을 조직하였다. 국내와 중국·일본에서 활동하던 이들이었다.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의 이을규·이정규 형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이석규, 재일본흑우연맹 한하연, 흑기연 서상경을 비롯 국내에서 활동하던 아나키스트 대부분이 참여하였다. 유림이 환국하면서 아나키즘 운동은 크게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해 12월 22일 서울에 모인 아나키스트들이 지난 식민지시대에 활동하다 작고한 동지들의 추도회를 통해 다시금 조직을 다져나갈 터를 마련했다.

임정 주석 김구와 이시영(아나키스트의 원조 이회영의 동생)이 내빈으로 참석한 이 자리에서 유림은 추도사를 통해 "지난 4반세기 동안 우리 아나키스트들이 국내 혹은 해외에서 피흘리며 싸운 당면한 제1차적 투쟁목표는 일제의 식민지 통치로부터 조국을 해방시켜 민족자주권을 회복하는 데 있었음을 확인하면서 국토가 양분되고 민족의 분열이 조장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즉 그는 '전후 국제세력간의 양극적 냉전'이 이 땅에 '연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세에 의존하고 편승하여 집권을 노리고 광분하는 반민족적 비민주적 세력들이 민족내부에 급속히 자라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만약 사태가 이대로 진전되는 날이면 이 강토에 장차 어떤 비극이 다시 연출될 것인지 실로 예측을 불허한다"고 앞날을 걱정하였다. (주석 1)

정국은 유림을 비롯 독립운동가들이 우려하는 방향으로 급속히 굴러갔다. 1946년에 접어들어 신탁통치 문제로 더욱 혼란에 빠져들고 통일정부 수립은 요원해졌다.


유림의 해방정국을 보는 시각은 계속해서 비판적이기만 하다. 즉 '민족'의 구심적 의지를 우선 외국군의 철수와 군정의 철폐로 집중해야 하겠거늘, 오히려 그들의 등 뒤에 업혀서 자기세력의 확대에 여념이 없음으로 해서 좌우 양 세력의 대립이 깊어만 가고 있음을 비판하였다. (주석 2)

유림의 시국관은 작고 아나키스트 추모제의 추도사에 잘 반영되고 있다.


우리가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난관은 밖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우리 민족의 내부에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통일된 민족의 자주적 독립이란 하나의 공통된 목표 아래 각자의 주의나 주장을 초월하여 우리가 굳게 뭉쳐 있다면, 우리 주변의 국제적 정세가 어떻게 변동하건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데에 우리의 어려움이 있다고 하겠습니다.(중략)

무엇보다도 우선 하루바삐 통일된 민족의 대표기관이 구성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남북의 군정으로부터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관은 어디까지나 민주적 자주적 평화적 방식에 따라 구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이 과업을 이 원칙에 따라 수행하는 것만이 우리 아나키스트의 이념을 살리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주석 3)

한반도의 운명을 가름하는 탁치문제로 좌우세력이 극한적으로 대치하고 있을 때 아나키스트들은 힘을 모으고자 1946년 2월 21일 부산에서 경상남북무정부주의자대회를 열고, 이어서 4월 23일에는 경남 안의에서 전국 아나키스트대표자대회를 개최하였다.

여기에는 임정 국무위원인 유림을 비롯하여 신재모·이을규·방한상·한하연·박석홍· 김형윤·이정규·하종현 등 1백 여 명의 각 지방 대표들이 참가했다.

이 대회는 무정부주의자들의 결속을 다짐하고 앞으로의 운동방향을 토론하는 대회였으나, 이 대회를 계기로 한국아나키스트는 두 파로 갈라지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유림을 중심한 그룹은 정치단체로의 전환을 주장했고, 이을규 형제를 중심한 그룹은 사회운동으로 나갈 것을 주장했다.

결국 유림을 중심한 그룹은 '독립노농당'을 창당, 정치활동에 들어갔고, 이을규 그룹은 1947년 봄 '국민문화연구소'를 발기하여 문화·교육·농민운동에 전념하게 된다. (주석 4)
1946년 2월 21·22일 부산 금강사에서 열린 경남북 아나키스트대회에서 채택한 성명서는 유림을 비롯 아나키스트 지도자들의 시국관을 보게 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원칙에 의거하여 과도정권이 수립될 것을 요구한다.

-. 정부수립은 일체의 외세의존을 배제하고 자율적이고 자주적인 방법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 정부는 통일된 민족의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한다.

-. 정부수립은 지방자치의 확립과 불가분하게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수립을 지향하는 두 개의 집단 즉 비상국민회의와 민주주의민족전선은 위의 세 가지 원칙에 비추어 볼 때, 비자율적이고 비통일적이며 비민주적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들은 이미 그들의 무능을 완전히 드러내고 만 것이다.

이제 남은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조선아나키스트들은 동포 국민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각 시·읍·면은 자발적으로 그 자치제를 구성하고, 그들의 대표자로 하여금 국민대표자회의를 구성할 권리를 행사하자. 그리하여 이 기관으로 하여금 과도정부를 구성 또는 선택할 권리를 확보하자. 이 원칙과 이 방법에 의하여 수립되는 과도정부민이 자주적 민주적 통일적 정부로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부이다. (주석 5)

주석
1> 김재명, 앞의 책.
2> 최갑용, <황야의 검은 깃발>, 119쪽.
3> 하기락, <탈환>, 214쪽.
4> 최영주, <한국 아나키스트 군상>, <정경연구>, 1983년 9월호.
5> 최갑용, <황야의 검은 깃발>, 120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단주 유림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유림평전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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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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