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갤러리사비도성 가상체험관과 나란히 붙어있다.
문하연
부친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을 보는 것처럼 유심히 그림들을 봤다. 그러다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 집에 앙상한 나무가 서 있는 그림 앞에 멈춰 섰다. 한참을 유심히 보시던 부친은 "쓸쓸하기 짝이 없네" 하신다. 꽃 그림도 많고, 귀여운 푸바오도 있는데, 하필 그 그림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셨다. 대충 둘러본 후 그만 나가자고 하니까 "잠깐만, 나 저 그림 다시 한번 보고 올게" 하시더니 다시 그 그림 앞으로 가신다.
"아빤, 이 그림이 좋아요?" 내가 물었다. 부친은 "응. 좋아. 옛날 생각이 나서. 옛날엔 다들 이렇게 가난하게 살았거든." 나는 한 걸음 뒤에서 부친의 그림 감상이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관계자 두 분이 내 곁으로 왔다.
난 두 분께 우리 아버지가 저 그림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한 분이 왜 그 그림이 좋은지 내게 물었고, 그 순간 난 구부정한 어깨의 부친이 두 손을 모으고 쓸쓸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쓸쓸하기 짝이 없는 그림을 지긋이 바라보는 걸 발견하고 말았다. 느닷없이 목이 멨다. 내 목 상태를 알 리 없는 부친이 나 대신 답했다.
"이 그림은 정말로 쓸쓸하기 짝이 없네요. 그런데도 이 그림이 참 좋아요."
감동에 젖은 목소리였다. 과거 내가 알지 못하는 쓸쓸한 일이, 가난해서 겪었을 가슴 아픈 일이 그의 내면에 고여있다고 생각하니 계속 목이 멨다. 생각해 보면 난 그가 그림 같은 건 잘 알지도 못하고, 좋아할 거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니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도 미술관에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로 말하자면 어쭙잖은 지식으로 미술관 책도 썼고, 대단찮은 언변으로 미술 강연도 다니면서 말이다. 명화만 그림이 아니란 걸 말로는 잘도 떠들면서 아마추어 작가의 그림은 보지도 않고 별것 없는 것으로 간주했다니.
어떤 감동은 추억과 맞닿아 있다
<흑백요리사>에서 심사를 맡았던 안성재 셰프가 어떤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생 요리를 만들라면 무엇을 만들겠냐는 질문을 받고,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줬던 감자떡이나 냉면을 만들 것 같다고 했다.
그가 흑백요리사에서 급식대가의 음식을 먹으며 감동에 젖는 장면과 연결되는 대답이라 느껴졌다. 나의 부친도, 안성재 셰프도 그렇듯이 어떤 감동은 추억과 맞닿아있다. 그러니 감동을 주는 그림이 꼭 명화일 리 없는 것이다.
우연히 들렀지만, 다시 돌아본 부소갤러리는 아름다운 건물 자체를 보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고, 넓은 잔디도 있어 인생샷을 찍기도 좋았다. 그 뒤로는 두어 시간 숲속을 산책하기 좋은 부소산성이 있으며, 고란사 아래에서 배를 타고 백마강을 둘러볼 수도 있으니, 요즘처럼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날, 당일치기로 훌쩍 다녀와도 좋은 장소였다.
날씨까지 좋아서 이번 여행은 또 우리에게 행복한 추억을 남겼다. 아마 훗날, 딸과 아빠가 여행하는 그림을 본다면 난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감동이 오래가면 경찰에 잡혀가는 법이라도 있는지, 다음 날 부친은 뜬금없는 문자를 보냈다.
"노벨문학상 받은 한강이 너랑 동갑이더라. 누군 그런 상도 받는데 우리 딸은 되는 것 하나 없어 아버지가 심히 언짢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비교할 사람하고 비교해야지 감히 한강 님과 비교하시다니. 되는 것 하나 없다는 말은 작년 드라마 공모전에 당선되고도 더 진전이 없었으며, 올해 새롭게 준비한 드라마가 공모전 최종심에 오르고도, 수상하지 못한 것을 뜻했다.
그런 팩폭을 하시는 부친께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 안 된 나도 속상하지만, 안 되는 자식을 보는 부모도 속이 상하시겠지' 싶어 신속히 답장을 보냈다.
"언젠가는 될 거예요, 아버지. 왜냐면 제가 될 때까지 할 거니까요. 회신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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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아버지의 발목을 꽁꽁 묶어둔 그림 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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