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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나온 외할아버지... 엄마는 울었다

[지구를 위한 플랜 A] 결국 기후재난은 모두에게 닥쳐온다

등록 2024.08.14 07:01수정 2024.08.1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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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Planet B(제2의 지구)가 없기에, Plan B(플랜 B)또한 없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유명한 표어 중 하나입니다. 끊임없이 생산하고 끊임없이 성장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플랜 A를 선택해야 할까요? 유일하고 유한한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행성으로 만들기 위한 지구를 위한 플랜 A를 제안합니다.[기자말]
 
a  울릉도 남양리의 사진

울릉도 남양리의 사진 ⓒ 신민주

 
나의 외조부모는 평생을 울릉도에서 살았다.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울릉도에 태풍 '매미'가 찾아왔다. 하루 종일 음습한 분위기가 집안에 감돌았고, 엄마는 전화기를 붙잡고 끊임없이 전화를 해댔다. 이윽고 할아버지가 수재민으로 뉴스에 등장했다. 당시의 나는 기후재난이 무엇인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 뉴스에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나오는 것이 반갑고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나 엄마는 그 뉴스를 보고 울었다.

불행히도 나는 그해에 엄마가 왜 울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을에 사는 노인이 목숨을 잃고, 할아버지가 손수 만든 흙집이 무너지고, 발생한 폐기물을 처리하기 곤란해서 울릉도의 바닷가에 콘크리트와 함께 묻어버렸을 때, 나는 이 모든 일이 아주 무섭고 슬픈 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조각조각 부서진 것들을 모두 내다 버리기만 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과 달리 울릉도의 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것은 집과 사람과 재산 같은 것들이기도 했지만, 좋아했던 자연의 풍경과 추억이기도 했다. 한 번 부서진 것들은 고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 부서지고 무너뜨리고 재건하는 것은 결국 흉터를 남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그때 알았다. 더 곤란한 지점은 재난이 끝나도 사람들은 재난의 현장 위에서 계속 삶을 유지해야하는 부분에 있다.

대한민국은 기후재난 안전지대가 아니다

21년 전보다 천재지변은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재난을 경험한 사람이나 그 주변인들이 그런 것처럼, 나는 매년 태풍 경로가 울릉도를 지나가는지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었다. 기후재난의 가장 두려운 점은 언제 발생할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데 반해, 해마다 더 강한 강도로 반복된다는 점에 있다.

폭우와 산불, 한파 등 기후 재난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시기가 되면 모두가 기후재난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후재난이 '언제, 어떻게' 벌어질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매년 기후재난 앞에 개인은 손쓸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 누군가 죽고, 다행히 살아남았더라도 재산이나 소중한 것들을 잃으며, 자연의 풍경은 망가져 손 쓸 수 없는 것이 되는 일이 반복된다. 기후재난은 그래서 불가항력적인 재난이 아닌, 인간의 과오인 기후위기로부터 만들어진 재난이면서, 극복에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 된다.
 
a  2022년, 폭우 이후의 한강

2022년, 폭우 이후의 한강 ⓒ ⓒ Greenpeace / Sungwoo Le

 
올해도 다르지 않다. 전북 지역 일부 마을에 누적 강수량이 40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발생했고, 농작물이 물에 잠겼다. 마을이 고립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충남에선 호우로 승강기가 침수되어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전북 부안군에서는 6월, 4.8 지진이 발생하여 주민들을 몸서리치게 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지진 안전지대도, 기후재난 안전지대도 아니다. 운 좋게 나의 가족과 나의 집을 비껴갔더라도, 다음번에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다.

기후재난은 반복되는 문제이지만, 우리는 왜 그것을 대비하는데 매번 실패할까? 이제는 기후재난에 대비하고 이를 예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책 <위험사회>에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과거의 세상에서 발생한 빈곤과 같은 위험이 특정 사람들만 겪는 고통이라면, 현대의 세상에서 발생한 스모그 같은 위험은 모두가 겪는 일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빠른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던 과거의 세상에서 위험은 통제 가능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빈곤 등의 위험이 절대 다수의 구성원들이 경험하는 사회 문제로 생각되지 않았던 탓이다. 위험을 성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성장통'과 같은 것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부로부터 점점 쌓이고 있었던 새로운 유형의 위험도 존재했다. 그 위험들은 사회 전체를 위협하고, 도저히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부푼 이후에야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를테면 기후위기로 인한 기후재난과 원전 사고 같은 것이 그렇다. 지금의 위험들은 불확실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인간이 차곡차곡 쌓아 올려 만들어낸 위험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한편으로, 기후재난은 곧 모든 사람이 경험할 "민주적"인 위험이 될 예정이지만, 아직 "위계적"인 문제로 여겨진다. 빙하가 녹고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며, 해수면이 상승해 난민이 대거 발생하고, 마침내는 우리가 모두 집을 떠나야 할 것이라는 암울한 미래가 아직까지는 모든 사람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완전히 착각에 불과한 일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누군가는 극한호우로 출근길에 불편을 느끼는 것이 피해의 전부일 수 있지만, 열악한 집에 살수록, 가난할수록, 거주하는 지자체의 예산이 적을수록, 장애를 가졌거나 아픈 가족이 있는 사람일수록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2년 전 신림동 반지하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말이다.
 
a  2023년 태풍 카눈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집

2023년 태풍 카눈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집 ⓒ ⓒ Greenpeace / Sungwoo Le

 
이러한 인식의 격차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게 만든다. 기후재난의 문제를 지금의 세상을 유지한 채 통제와 관리가 가능한 문제로 사고하는 것이 첫 번째, 기후재난이 경제 성장을 위한 '성장통'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두 번째이다. 기후재난이 피해를 입는 사람들에게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음에도 그렇다.

'스텔스 장마'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갑작스러운 집중 호우가 발생하고, 첨단 과학의 집중체인 슈퍼컴퓨터조차 기상 이변을 관측하는데 번번이 실패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여름철 재난을 대비해야 한다"라며 정부는 거듭 재난 대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아직도 재난을 예방하고 대비하기 위한 예산과 준비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기후재난의 문제가 특정 사람들만이 겪는 안타까운 일로 여긴다. 기후재난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 그 대응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기후재난은 모두의 일이 될 것이다

기후재난은 위험을 경제 성장의 '성장통'으로 치부하는 사회에서 발생했지만, 조만간 경제 그 자체를 무너뜨리는 거대 위험이 될 것이다. 이미 몇가지 연구에서는 지구 온도 상승이 GDP 수치를 낮출 것이라는 예측을 발표했다. 기후재난으로 더 이상 고통받는 사람과 자연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하기 때문이든, 아니면 지극히 실리적인 관점에서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든 지금의 경제 시스템 자체는 변화가 필요하다.

평범한 사람들도 이 사실을 점점 깨달아가고 있다. 지난 7월 9일 발표된 한국환경연구원(KEI)의 '2023 국민환경인식조사'에서 처음으로 시민들은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를 '기후변화'로 꼽았다. 기후변화가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변한 사람은 88% 이상이었다. 미래세대가 피해를 본다는 답변은 91%였다. 무엇보다 '경제성장이 다소 둔화해도 환경보전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라고 답변한 응답자는 52.4%였다. 이는 '경제성장이 우선'이라는 응답자가 18.5%에 불과한 지점과 대비된다.

그렇다면 기후재난을 대비하는 것을 넘어,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할까? 먼저 재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부터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재난의 피해자는 기후위기라는 인류의 과오로 발생하였다. 재난 예방과 복구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기보다 당연히 국가가 수행해야 하는 책임과 역할에 가깝다. 더 많은 예산이 투여되어야 하고, 대응 방식도 기후위기 변화 양상에 맞춰 계속 개선해나가야 한다.

그 방식은 재난 대응에 실제 당사자들을 의사 결정 과정에 더 많이 포함시키는 일일 수도 있고, 재난에 취약한 집의 구조를 선제적으로 바꾸는 일이 될 수도, 기후재난의 원인인 오염 유발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재난 이후 더 길게 지속되어야 하는 공동체의 치유와 회복에 예산을 지원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기후재난으로부터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의 여건을 만드는 일도, 기후재난을 '대비'하는 일이면서 기후재난의 원인인 기후위기를 조명하며 '극복'하려는 시도도 함께 해야 한다.

경제 성장이 조금 둔화되더라도 사회 구성원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투자하는 일도 꼭 필요하다. 정부는 예산을 기후위기 대응과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더 많이 투여하고, 기업은 환경 파괴 행위를 멈추어야 하며, 시민은 지구와 함께하는 더 나은 삶을 세상에 요구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것들을 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인류 전체가 함께하는 조별 과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별 과제와 조금 다른 지점은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조장이 되어야 한다는 지점일 것이다. 기후위기도, 기후재난도 어느 한 사람에게 맡겨 둘 수 없는 문제이고, 곧 당신의 일이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그린피스는 지구와 인간이 함께 살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후재난 #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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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 에너지 캠페이너 신민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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