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치매 속으로 떠나버린 내 어머니

작가 김순명 자전실화소설 <어매> 펴내

등록 2003.05.20 16:02수정 2007.06.1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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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순명 <어매> 표지

김순명 <어매> 표지 ⓒ 열매

"현재 우리나라 치매 환자의 수가 무려 2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어린아이, 청소년, 중장년층을 제외하고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만을 생각해보면 그 숫자는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암, 백혈병, 에이즈 등등 어느 것 하나 무섭고 두렵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질병이 가장 두려운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치매라고 대답할 것이다."

오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힘겹게 살아온 내력을 사실 그대로 그린 자전실화소설이 나왔다. 베스트셀러 <독야>의 작가 김순명(50)씨가 펴낸 장편소설 <어매>(열매)가 그것. <어매>는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에 치매상태에서 숨진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눈물 젖은 사모곡이다.


치매? 그래. 요즈음 며느리들은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치매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당신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 어머니를 치매병원에 가두어 둘 것인가. 아니면 더 큰 용기를 내어 집에서 그냥 그대로 모시고 살 것인가.

툭, 하면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어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하고, 집에 있을 때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누군가 진종일 매달려야만 하는 치매에 걸린 노인. 지극 정성을 다해 모셔도 짜증만 내는 노인. 하지만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는 그 사람이 누군인지조차도 모르는 노인.

그렇다. 전쟁보다 더 무섭고, 몸서리가 날 정도로 힘겨운 것이 치매에 걸린 노인을 돌보는 일이다. 그런데 내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 그리고 그런 내 어머니를 아내가 돌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때 당신은 어찌하겠는가. 그런 아내와 이혼을 할 것인가. 또한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 아내가 당신에게 이혼을 요구한다면 또 어찌할 것인가.

어매? 어매란 말은 경상도 사람들이 어머니를 부를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같은 경상도라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단다. 어매 외에도 어무이, 어머이, 오메, 옴마 등등. 또 어머니의 나이에 비추어 우리 할마이, 할마시라고 부르는 때도 있다고 한다.

그래. 어머니에 대한 호칭이 어떻게 불리워지던 간에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이름보다도 그 이름 속에 담겨 있는, 글로서 표현할 수 없는,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자신도 모르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어쩔 수 없는 그 어떤 감정이 더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30여 년을 대구와 경북, 부산 일원에서 밤무대 밴드마스터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김순명씨는 스스로를 낳아 길러준 어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 모두가 당신을 버릴지언정 오직 단 한 사람, 당신의 어머니만은 당신을 버리지 못한다"라고. 또한 치매에 걸린 사람에게 만병통치약은 사랑, 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그렇다. <어매>를 펼치면 작가가 영남 일대에서는 알아주는(?) 밤무대 밴드마스터 일을 하면서도 틈틈히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눈물겨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이 소설 속에는 며느리의 따돌림에 집을 나온 어머니를 밤마다 여관방에 모셔놓고 매 스테이지마다 짬을 내어 돌보는 글쓴이의 힘겨운 삶이 불거져나온다.


영남권을 맴도는 밴드마스터 재민은 아내와 네 살 난 아들, 그리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면서 집안은 겉잡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광기에 주인공 재민(작가 자신)은 아내와의 사이에 대화마저 끊긴다.

급기야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고, 마침내 아내마저 시어머니를 포기하게 된다. 재민은 어쩔 수 없이 가정을 버리고 어머니를 등에 업은 채 집을 나온다. 그때부터 아들과 어머니의 눈물겨운 삶이 매일 같이 찾아드는 어둠처럼 깊고 끝없이 침울하게 펼쳐진다.

김순명은 누구인가?
지금 밤무대 밴드마스터로 일해

작가 김순명은 1953년 경북 울진군 후포면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작가는 어느날, 어머니의 반지를 훔쳐내 기타를 살 정도로 음악에 깊이 빠졌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이 평생 한이 되어, 훗날 치매에 걸려 함께 집을 나온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얼마 전 치매병원에 계신 어머니에게 금반지를 끼워줌으로서 그때 진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았다.

지은 책으로는 <독야> <소국>이 있으며, 지금은 대구 경북 지역에서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틈틈히 소설창작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이번에 펴낸 장편소설 <어매>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그리며 쓴 책이다.
/ 이종찬 기자
재민은 자신이 일하는 나이트클럽 부근에 있는 여관에 어머니를 모시고, 매 스테이지마다 짬이 나는 틈을 이용해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본다. 그러나 어머니를 목욕시키는 것만은 여관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그 여관이 재개발로 헐리게 된다.

그때, 재민은 밴드마스터 멤버였던 상철의 도움으로 상철의 5층짜리 허름한 아파트에 임시 기거하게 된다. 하지만 재민은 하루 중 9시간을 텅 빈 아파트에 갇혀 지내야 하는 어머니 생각에 괴롭기만 하다. 마침내 재민은 밴드마스터 자리를 상철에게 넘겨주고 인근 술집의 전자 오르간 독주생활을 하는데...

장편소설이자 작가의 자전적인 체험이 있는 그대로 녹아 있는 실화소설 <어매>는 의학기술문명이 고도로 발전, 날이 갈수록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 우리 사회의 최대 복병인 치매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이제 치매는 더이상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아니면 나 자신에게도 다가올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장벽일지도 모른다.

<어매>를 출판한 열매출판사 대표 황인원씨는 "1996년에 나와 독자의 사랑을 온몸에 받았던 김정현의 <아버지>와 2000년에 나와 역시 베스터셀러가 된 조창인의 <가시고기>를 잇는, 물질자본주의라는 삭막한 시대에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가 되는 가족을 중심으로 한 감동소설의 계보를 이어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싫든 좋든 어머니는 당분간 병원 생활을 해야만 한다. 아니, 어쩌면 이제 다시는 병원 밖을 나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자신이 출근하고 나면 누가 어머니의 병상을 지켜줄 것인가? 과연 지금의 이 형편에서 재민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답이 없다. 아니, 답이 있을 턱이 없다."

어매

김순명 지음,
열매출판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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