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의 분단의 중심에서 신흥 경제 중심지로 변한 베를린의 심장부 포츠다머 플라츠정은경
2006년 8월 한 달 간 서울에서 20~29세의 대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통일해야 한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들어온 이야기라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부담을 내가 지고 싶지는 않다." 설문지를 돌리면서 접한 첫 반응이었다. 청년실업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한국 대학생들에게 통일은 취업난을 극복하는 일에 밀리고 있었다.
예컨대,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1980년생의 경우 1987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만 해도 철저한 반공교육이 계속됐다. 그러나 이들은 남북한 UN동시가입과 독일의 통일에 이은 화해무드 속에 중학교에 입학해 남북한 대립보다는 평화공존을 배웠다. 2000년 대학생이 된 이들은 IMF 위기 아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장의 짓눌린 등록금 부담을 분담하고 취업의 바늘구멍만 좇았다. 그러기에 통일로 가는 길목도 좁게만 보인다.
우선 '북한이 어떤 대상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응답자 200명 중 47%(95명)가 '협력대상' 이라고 대답했다. 남자 응답자 52명 중에서는 군 미필자의 45%(15명)가 북한을 '협력대상'으로 꼽은 반면 군필자는 38%(37명)만이 '협력대상'이라고 응답했다. 북한을 '경계대상 내지 적'이라고 응답한 49명 중 군필자는 46%(45명), 미필자는 12%(4명)로 군 복무를 마친 복학생이나 고학생이 군 경험이 없는 미필자들에 비해 북한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북한지도층에 대한 인식' 문항에는 전체 응답자 200명 중 41%(82명)가 '남한의 적인 동시에 북한주민의 적'이라고 대답했고 '남한의 적' 32명, '상호협력 관계’ 29명 등 반응이 비슷했다.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도와주어야 할 이웃이며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답변이 75%(151명)를 차지해 북한과 북한지도층, 북한 주민을 별개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통일 찬성은 64%(128명), 통일 반대는 22%(44명)로 집계됐다. 찬성 이유로 '단일민족의 재결합', '한반도 전쟁발생방지', '경제발전', '자유민주주의로 체제 통합' 순으로 나타났다. 통일을 반대하는 이유로는 74%(31명)가 '막대한 통일 비용에 따른 부담가중'을 뽑았다.
다시 통일에 찬성한 응답자(138명)를 대상으로 별도 설문조사를 실시,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통일의지에 대한 견해를 알아보았다. '어느 나라도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반응이 82%(113명)로 나타났고 중국(14명), 러시아(6명), 미국(4명), 일본(1명) 순이었다.
남북통일을 위해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할 나라로 미국 58%(81명)였고 중국, 러시아, 일본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대해 이용철 고려대 아세안문화연구소 교수는 "기성세대들이 대학생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보는 것과 달리 나름대로 국제관계를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라면서 "통일 환경에서 미국과 중국의 깊은 영향력과 협력관계 없이는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중국이 2위로 뽑힌 것에 대해 "경제적으로 한중 관계가 밀접해진 반면 북중 관계는 북한 미사일 발사 후 소원해진 것을 부분적으로 반영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통일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가 58%(82명)인 반면 '영향을 끼친다'가 38%(51명)를 차지했다. 결국 통일에서 주변국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의지이며, 북․중이 한반도 통일에서 부정적 요소 중 하나로 꼽는 한미동맹이 통일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남․북한의 관계 개선을 위한 시급한 과제는 정치적 신뢰구축 57%(78명), 사회문화적 교류확대(38명), 경제협력 교류확대(23명), 미군철수(3명) 순이었다. 북한이 통일 전제조건으로 늘 제시한 주한 미군철수 요구에 호응한 수가 미미한 것에서, 대학생들이 북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통일 후 예상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격차'(55%, 76명). 통일이 된다면 북한 지역주민과 같은 지역에 거주할 수 있냐는 질문에 '기꺼이 거주할 수 있다' 41%, '몇 세대는 가능하나 수가 많아지면 곤란하다' 21%로 북한과 새터 주민이 서로 긍정적인 정서를 표출하는 답변이 2배에 이르렀다. 통일 후 북한 주민을 받아들일 의향과 관련, '직장 동료나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31%로 나타났다.
'통일정책에 국민의견은 없다'... 불만 70%
'독일신드롬'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경제적 비용 부담은 통일에서 가장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부분이다. 대학생들은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남한이 경제력 향상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선 조사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학생들은 통일을 매우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일상에서 통일의 영향력에 관심을 두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남한 국민이 1인당 4500원(1년 기준)꼴인 정부와 민간의 대북지원금에 대해 '적절하다'가 51%(102명), '잘 모르겠다'가 30%(61명)의 지지율을 얻었다.
이 교수는 "지원금 문제와 관련, '잘 모르겠다' 답변이 많은 것은 남북교류에 드는 비용과 통일 후 인프라 구축 같은 구체적 통일 비용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만 지원금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관심을 적게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지원금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이 51%가 넘는 것을 미루어 봤을 때, '퍼주기' 등 지원금 규모에 대해 분분하게 말이 많지만 대학생들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그 정도 금액은 충분히 인내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민간연구단체인 핸드연구소는 한반도 통일비용을 최소 50조원에서 최대 670조원으로 전망했다. 대학생들은 '적당하다' 45%(90명), '통일 전면 재검토 필요' 30%(60명), '잘 모르겠다' 40%(20명) 등으로 답했고 경제 문제가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국민의 의견이 정부의 통일 정책에 어느 정도 반영되느냐는 질문에 '대체로 반영되고 있지 않다'가 70%(140명)인 반면 '반영된다‘는 응답은 20%(40명)에 그쳐 통일 정책에 대한 불신과 국민 참여 채널이 부족함을 알 수 있었다. 통일정책 추진 과정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집단을 묻자 '대통령과 청와대' 35%(71명), 정치인 18%(36명), 언론 12%(24명) 순으로 나타났다.
박상건(언론영상학) 서울여대 겸임교수는 "영향력에서 정치권력과 언론이 빅3로 등장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면서 "역설적으로 통일을 위해서는 이들 집단의 책임감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반증한 것이며 통일문제가 민감한 사안이긴 하나 국민들에게는 어느 날 깜짝 이벤트로 다가서는 경우가 많았다, 통일이 정치적으로 악용돼선 안 된다, 언론의 환경감시기능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독일 통일을 바라본 한국 대학생들은 75%(150명)가 한국 주도의 통일을 원하고 있으며, 독일통일 방식이 우리나라 통일 방법에도 가능하냐는 질문에 '가능하나 부분적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는 반응이 67%(135명)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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