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 할머니네 떡 맛은 덤 맛!

[단골가게] 없는 게 없는 우리 동네 떡집을 소개합니다

등록 2007.02.05 15:31수정 2007.02.0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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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떡 뽑는 떡집 풍경(자료사진) ⓒ 김현자 제공

"할머니 안녕하세요!"
"응 어서 와!"

바지런도 하시지. 아직 눈곱도 떼지 못하고 아침장을 보러 나온 젊은 사람 무안하게 칠순쯤 돼 보이는 초로의 할머니는 허연 구름 모자 눌러쓰고도 깔끔한 용모로 가게 앞을 쓸고 계신다.

@BRI@성남시 은행1동 동사무소 맞은편 골목 가게 앞 평상에는 어느새 사과, 귤, 피망, 만두, 가래떡, 칼국수가 팔리길 기다리며 진열이 되어 있고, 한편에 마련된 커다란 솥에서는 고구마가 익어가고 있다.

"뭐 줄까?"
"고추하고, 양파요!"

기분 좋아 덤, 봄이 왔으니 덤

얼마나 필요한지 묻지도 않고 할머니는 바구니에 들어 있는 고추를 검정봉지에 툭 털어 붓더니 상자에 손을 넣어, 마수걸이해 줘서 한 주먹 더, 맛나게 해먹으라고 한 주먹 더, 기분 좋아서 한 주먹 더, 봄이 왔으니까 한 주먹 더…. 서비스를 아끼지 않고 남발하신다.

"할머니 그만 주세요!"
"걱정 말어, 돈 벌자고 장사하나, 사람 좋아서 하지!"

공으로는 양잿물도 마신다든가? 할머니의 훈훈한 인심 덕에 코끝이 알싸해져 오는 아침바람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빨리 가서 청국장을 끓여야지…. 청국장을 끓여서 식구들 아침밥을 먹이고 난 뒤, 고추를 썰어 냉동실에 넣어놓고 나니 만석꾼이라도 된 듯 마음이 든든해졌다.

할머니네를 다닌 지가 벌써 3년째 되었다. 처음 그곳을 지나칠 때, 그 을씨년스런 분위기라니…. 가게라고 하기에는 너무 외진 곳이고, 그렇다고 가정집이라고 하기에는 진열되어 있는 물건이 너무 다양해서 호기심 반 의구심 반으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름 켜켜이 세월을 얹은 할머니가 마치 객지 나간 손자 반기듯 나를 반겨주었다.

"어서 와! 춥지?"
"예!"

대답을 해놓고 보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가게 안은 훨씬 더 넓고, 스산했다. 의자에 파묻혀 상체만 겨우 보이는 작은 할머니에 비해 지나치게 넓은 가게 안은 무서움마저 들게 했다. 그 위세에 눌려 내가 무엇을 사러왔는지 잊어버렸다.

"뭐 줄까?"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땅콩이 알알이 박힌 호박엿이었다.

"이거요!"

돈을 내고 나오는데, 호기심에 들른 나의 얄궂은 심보를 눈치 채셨는지, 이런 호기심이 다 이해된다는 듯 할머니는 내 등 뒤에다 "오며 가며 들러요" 말씀하셨다.

그 말 때문일까. 주춤해진 발걸음에 뒤를 돌아다보니 언제부터 있었는지 간판까지 버젓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그제야 평상에 나와 있는 가래떡이 이해가 되었다.

고구마에서 번데기까지 없는 게 없는 떡집

오래 되긴 했지만 그럴싸하게 "떡집"이라고 붙여진 할머니네 가게는 평상에 놓인 가래떡과 떡국이 아니라면 누구도 이곳이 떡집이라는 걸 알아챌 수 없을 것이다. 떡쌀을 불리는 모습도, 떡쌀을 가는 기계음도, 떡을 찌는 증기도 한번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할머니네 가게 앞에는 언제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긴 가래떡이 나와있으니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떡집을 운영하는 비법은 바로 바지런함이 아닐까 한다.

게다가 그 떡맛이라니. 시골 절구통에 잘 쪄진 쌀가루를 넣고 어깨가 뻐근해지도록 절구질을 해서 만든 추억의 그 맛. 뒷골목에 자리한 탓에 손님이 많지는 않지만 한번 이곳을 들른 사람이라면 할머니의 넉넉한 인심에 또 찾게 됨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떡집에 가서 "무 팔아요?"하면 다른 떡집에서는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네 가게에서는 "큰 걸로 줄까, 작은 걸로 줄까? 큰 건 잘못 사면 바람들어서 못 먹어. 그러니까 작은 걸로 가져가!" 하시고, 삶은 고구마, 삶은 옥수수, 번데기까지… 달라고만 하면 뭐든 다 나온다.

할머니네는 가격표도 정해진 게 없다. 굳이 '세일'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일 년 내내 세일이고, 굳이 덤을 바라지 않아도 할머니의 곱배팔 같은 손은 언제든 덤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만 달라고 손사래를 쳐도 기어이 기어이 할머니 욕심이 찰 때까지 퍼 주셔야만 봉지를 묶으시는 할머니!

웬만해서는 삼천원이 넘지 않는 할머니 가게 물건들은 사실 사는데 꼭 필요한 물건보다는, 돈보다는 사람이 좋아 장사를 한다는 할머니처럼 군입거리, 주전부리가 대부분이다. 밥만 먹는 퍽퍽함, 돈만 벌고는 못 산다는 그 넉넉함이 할머니의 가게에는 즐비하니 널려 있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네 가게에는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그냥 오며 가며 들르는 사람이 더 많다. 참새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떡방앗간이지만, 참새보다는 사람소리가 더 흥겹게 퍼져나온다.

아기 업은 새댁도 "할머니"하고 들르고, 늙수그레한 할머니도 "할머니" 하고 들른다. 그러면 할머니는 처음부터 당신이 할머니였던 것처럼 "어서 와요!" 한다. 할머니를 보면 세상에 웃음을 파는 장사꾼처럼 남는 장사꾼도 없고, 웃음 만한 호객행위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 얼굴을 사진에 담고자 두 번 세 번 부탁을 했는데도 할머니는 굳이 사양을 하신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면 할머니네 평상은 어느새 노을만 한 가득이다. 진열된 물건들은 벌써 누군가의 입과 추억 속에 들어가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새벽을 일찍 여는 할머니의 평상엔 내일 아침 또 새로운 물건들이, 참빗으로 빗어넘긴 할머니의 은빛 머리처럼 곱고 단정하게 진열되어 지나는 행인마다 인심을 나눠주겠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고, 파는 것 빼고는 다 공짜인 할머니네 가게. 그곳에 가면 물건보다 더 좋은 할머니의 인심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물건 여기 가면 싸다" 응모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물건 여기 가면 싸다" 응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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