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에 잠길 뻔한 고향집을 다시 세우다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화재 마을에 다녀와서

등록 2007.02.22 08:55수정 2008.04.09 17:41
0
원고료로 응원
a

일선리 문화재마을에 있는 '임하댁'을 바깥에서 본 모습. ⓒ 손현희

설날 아침, 한국방송 HD방송에서 <고향 버듬골에 살다>라는 프로그램을 내보냈어요. 어느 산골 마을 버듬골 풍경과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설맞이 풍경까지 두루두루 내보낸 방송이었지요. 설날 아침에 이 방송을 보면서, 산골 마을 사람들 사는 이야기에 마음이 짠해지고 애틋함 때문에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어요.

 

그랬기 때문일까요? 가까운 시골마을이라도 찾아가서 설날 풍경을 사진에 담아보고 싶었어요. 아무 곳이나 불쑥 찾아가 설날을 맞아 모처럼 온 식구가 모여 왁자지껄 떠들썩한 설맞이 모습을 보고 싶었지요. 남편한테 이런 내 마음을 얘기하니, 이런 곳에서는 아무리 시골이라고 해도 마땅히 그런 풍경을 담기 어려울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한 번 나가보자! 마음먹고 우리한테는 매우 훌륭한 자가용인 자전거를 타고 나갔어요.

 

경북 선산에 가면 시골 마을이 있을 거 같아 그쪽으로 신나게 달렸어요. 도시에서 고향에 찾아와 떠들썩하고 즐겁게 설을 보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란 꿈을 안고 부지런히 달렸지만, 아쉽게도 마땅한 곳이 없더군요. 그러다가 가게 된 곳이 바로 경북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일선리'라는 마을이에요.

 

a

마을 앞에 세운 비석 '수류우향(水柳寓鄕)'이 이 마을을 길잡이하고 있어요. ⓒ 손현희

a

일선리 마을은 옛집과 어우러져 흙과 돌로 만든 담장이 퍽 멋스러워요. ⓒ 손현희

a

길게 이어진 돌담길, 멋스럽고 예스런 모습이 그대로 배어 있어요. ⓒ 손현희

이 마을 앞을 지나다가 예스런 모습을 그대로 안고 있는 한옥이 눈에 들어와 그 자리에 멈춰서 이리저리 살펴봤어요. 마을 앞에 '일선리 문화재 마을'이란 안내판이 보이고, '수류우향(水柳寓鄕)'이라고 쓴 큰 비석이 이 마을 길잡이를 하고 있어요. 자세히 읽어보니, 이곳은 지난날 경북 안동군 임동면에 있던 수곡, 박곡, 무실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전주 류씨들이 살았는데, 안동 임하댐 건설 때문에 조상 대대로 몇백 년 동안 살던 고향집과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었대요.

 

그 때문에 지난 1987년에 이곳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에 새로운 터를 마련하고 자리 잡아 살게 된 거예요.바깥에서 봤을 때는 흙과 돌로 쌓은 담장이 매우 남달랐고, 또 오래된 전통 옛집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들어서서 보니 집 모양은 전통 모습 그대로이나 건물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곳이었어요. 현대 생활에 맞게끔 단장을 하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이 마을 사람들이 지난날 살던 고향집을 모양 그대로 이곳에 옮겨 새로 지었기 때문이에요.

 

a

꽤 넓은 터에 자리 잡은 '임하댁', 수재고택이라고도 하는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3호. ⓒ 손현희

a

조선시대 유학자 '수재(修齋) 류정호'선생이 세운 '수재(修齋) 고택'의 8대손인 류영수, 류성우님(왼쪽부터)이 임하댁 앞에 나란히 서서. ⓒ 손현희

마을 어귀에 들어서서 하나하나 주변을 살폈어요. 그러다 한 대문 앞이 여느 집과는 남달라서 사진기에 그 멋스러움을 부지런히 담고 있는데, 안에서 사람소리가 들렸어요. 사진을 찍다 말고 보았더니 넓은 집안에 몇몇 남자들이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얘기를 나누다가 낯선 이를 보자 반갑게 인사를 하시더군요. 나는 처음엔 그분들도 우리처럼 이 마을에 구경 온 사람들인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이 집 식구들이었지요. 이 집은 바로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3호'로 지정된 '임하댁'이었어요.

 

이 임하댁은 지난날 안동에서 살 때, 조선시대 유학자인 수재 '류정호' 선생과 그 아들 연구가 처음 지은 집으로 '호'를 따서 '수재고택'이라고 하기도 해요. 마을을 둘러보며 다녀도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는데, 이 집 식구들을 만나 짧게라도 이 마을이 세워진 이야기와 설을 맞아 흩어져 살던 식구들이 함께 모여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짧은 동안 인터뷰를 했지요.

 

나를 맞아준 분들은 이 수재(修齋) 고택의 8대손인 류영수(39), 류성우(33) 형제였어요. 지금 이 임하댁을 관리하고 있는 류회붕 선생은 이 형제들의 아버지였고요. 또 이 마을에는 임하댁과 함께 모두 10채가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와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등록된 집이 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a

이 마을 한가운데에 가장 크고 넓은 '동호재'라는 집이에요. 일선리 마을과 매우 멋스럽게 어울려요. ⓒ 손현희

a

동암 류장원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62호 '동암정'. ⓒ 손현희

a

조선 철종 때, 실학자 근암 류치덕 선생이 고종 7년쯤에 지은 '근암고택'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5호. ⓒ 손현희

a

예스런 모습이 그대로 남아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 손현희

'대야정', '호고와종택', '용와종택과 침간정', '만령초당', '삼가정', '수남위종택', '동암정', '근암고택', '망천리 임당댁', 그리고 '임하댁' 이렇게 열 채가 있어요. 이 가운데 '종서 김규진' 선생이 1775년(영조 51년)에 지었다는 '단포고택'이라고도 하는 '망천리임당댁'을 빼고는 모두 전주 류씨 집안사람들이 안동에서 이곳 일선리로 옮겨 지은 집이에요.

 

낯선 사람이 설날에 찾아와 이곳저곳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이것저것 물어도 싫은 낯빛 하나 없이 자세하게 하나하나 일러주며 맞아줘서 얼마나 흐뭇했는지 몰라요. 또 임하댁 식구인 두 형제 사진도 찍을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이 마을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젊은 분들이지만 조상들의 정신을 소개하는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답니다.

 

a

흙돌담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워요. ⓒ 손현희

전통을 지키며 보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알아요. 또 무엇보다 그런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며 지키려고 애쓰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저 세월 속에 묻히거나, 빠르게 바뀌어가는 현대문물 뒤로 밀려나기 십상이지요. 오늘 내가 만난 일선리 문화재마을 사람들처럼 올곧은 마음으로 조상들이 물려준 얼과 슬기를 이어가는 이들에게 힘껏 손뼉쳐주고 싶어요. 설날맞이 풍경이 담긴 시골마을을 찾아 나섰다가 뜻밖에도 아주 멋진 마을과 좋은 분들을 만나 이것저것 얘기도 듣고, 또 이렇게 좋은 글감에 사진까지 얻을 수 있어 참 기쁘고 즐거웠답니다.

덧붙이는 글 |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2007.02.22 08:55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자전거 #구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라면 한 봉지 10원'... 익산이 발칵 뒤집어졌다
  2. 2 "이러다간 몰살"... 낙동강 해평습지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일
  3. 3 한밤중 시청역 참사 현장 찾은 김건희 여사에 쏟아진 비판, 왜?
  4. 4 "곧 결혼한다" 웃던 딸, 아버지는 예비사위와 장례를 준비한다
  5. 5 주민 몰래 세운 전봇대 100개, 한국전력 뒤늦은 사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