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히트>iMBC
석호필이 왔다갔다.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단 한 편의 드라마로 국내 팬을 사로잡은 웬트워스 밀러라는 배우가 방한했던 것이다. 그의 극중 이름인 스코필드를 한국식으로 바꾼 애칭, '석호필'이 생길 정도니, 그의 인기는 가히 대단하다.
그가 이렇게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매력적인 눈, 부드러운 저음 목소리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완벽한 드라마의 힘 덕분인 듯하다.
최근 들어 국내 시청자들은 케이블 방송과 온라인 매체를 통해서 <프리즌 브레이크>같은 미국 드라마를 거의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미드족'이라고 불리는 미국드라마 마니아까지 생겨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드라마는 국내 타 방송사 드라마와의 전쟁만이 아닌, 세계의 드라마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드라마 한 편에 총 10여명의 작가가 투입되고, 제작비는 금액의 자릿수부터 차이 나는 미국드라마와 국내드라마의 이 전쟁은 이미 승자가 정해져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착실하게 공식에 따라 진행하는 지금의 한국드라마로는 이 전쟁에서 더욱 처참하게 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우연히' 삭제하고 '원인과 결과' 넣은 <히트>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MBC 월화미니시리즈 <히트>는 어떻게 해야 다매체시대에 국내 드라마가 지금보다 나은 위치를 차지하고, 외국 드라마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존 한국 드라마에선 인과라는 것이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우연히'라는 말만 있으면 모든 사건이 해결됐기 때문이다. '우연히' 재벌 2세 앞에서 넘어지고, '우연히' 길에서 만나고, '우연히' 불륜을 목격한다는 내용은 시청자를 재핑족(zapping : 리모컨으로 화면을 계속 돌려보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히트>는 그 '우연히'를 삭제하고, 그 자리에 원인과 결과를 넣었다.
차수경(고현정) 경위는 여성이지만 오랫동안 여성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그녀는 형사의 삶, 특히 연쇄살인을 쫓는 일에 열중하는 인생을 택했다. 그녀가 이 삶을 택한 것은 '우연히', '어쩌다보니'가 아니다. 과거에 애인이 연쇄 살인범에게 살해당한 뒤, 그 범인을 잡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과거와 차수경 그리고 현재의 사건이라는 3각의 구조가 차수경의 답답한 행동에 '이유'를 불어넣어준 것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그녀가 연쇄살인에 집착하고 그것이 언론에 흘러가 'HIT(히트)'라는 조직이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말도 안돼"라는 말을 하며 리모컨을 건드릴 횟수를 현저히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