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흰 옷이 쑥떡베 옷이 되었네

증기기관차의 연기와 기적의 수증기가 만나 내린 비로 옷을 망치다

등록 2007.06.07 09:19수정 2007.06.07 09:1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961년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새벽 5시 5분에 출발하는 순천행 통학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집에서 기차 시간 30분 전에 출발해야 했다. 약 3Km를 걸어 나와야 기차를 탈 수 있는 곳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이미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5년째 접어든 중·고등학교 시절의 객지 생활이었다. 그동안 자취를 해보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을 통학을 하여야 했다.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거의 3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가정 형편이 하숙을 할 형편이 못 되었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1학기도 거의 마지막인 7월 초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헐레벌떡 달려서야 간신히 잡아탄 통학열차는 월요일 아침 수다스러운 학생들의 얘깃소리를 싣고 부지런히 달렸다. 한 시간 40여분이나 걸리는 42Km 거리를 증기기관차는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서 순천 역에 도착하였다.

아침 8시 30분경, 학교에 30분 안에 도착하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할 것이다. 학교까지는 약 2.2Km 정도의 거리였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다시피 하여서 학교에 도착하고 나면 늘 파김치가 되고 온 몸은 흥건히 땀에 젖곤 한다.

이곳 순천은 철도청이 있는 곳이어서 이 역에서 교행을 하거니 방향을 바꾸어서 출발을 하는 열차가 많았다. 전라선과 경전선이 만나는 곳이어서 남원 방향, 광주방향, 여수방향으로 가는 열차의 출발역이 되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광양으로 가는 철도는 연결이 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삼거리인 셈이었다.

기차에서 내린 우리는 부지런히 개찰구를 빠져 나가기 위해 서둘렀다. 그런데 우리가 건너야할 건널목 앞에서 교행을 하기 위해 달랑 방향을 바꾸려는 기관차 한 칸만이 열차사무소로 가기 위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학생들이 잔뜩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기관사는 조심하라고 기적을 울리면서 달려 왔다. 바로 우리들의 곁에서 기관사가 기적을 울리는 손잡이를 힘껏 당기자, 기관차 위에서는 시커멓게 내뿜는 연기와 함께 하얀 수증기가 힘차게 솟아오르면서 "삐익" 굉음을 내었다. 철로 곁에 서 있던 우리는 귀가 아파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정작 일은 바로 다른 곳에서 벌어졌다.

기관차의 굴뚝에서 품어 나오는 연기와 기적을 울리면서 나온 수증기가 만나 물방울이 되어 쏟아지는 것이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팔뚝을 보았더니 온통 쑥떡베(맥반석처럼 흰색에 검정 점이 박힌 무늬를 가진 베)가 되어 있었다.

나는 우선 팔뚝의 물기를 스윽 문질러 보았다. 팔뚝에는 시커먼 물기가 흐르면서 지저분해져 버렸다. 이 무렵 우리 학교 교복은 푸른색 점이 찍혀져서, 약간 푸른색을 띤 맥반석 무늬로 된 바지와 흰색의 남방셔츠였다.

‘이거 옷도 망친 것 아니야?’

나는 걱정이 되었다. 월요일인데 옷을 망치면 당장 내일 학교에 입고 올 옷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서 오른쪽 어깨 쪽의 셔츠를 바라보았다.

“아니, 이건? 옷이 완전히 쑥떡베가 되어 버렸잖아?”

하얀 셔츠는 검정색의 석탄물이 물뿌리개로 뿌린 듯 뿌려져서 회색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이 무렵에야 어디 이렇게 옷을 망쳤다고 말할 곳이 있었던가? 요즘처럼 소비자 권리가 어떻고 옷을 망쳤으니 세탁비를 내라는 등의 이야기는 알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에이, 참. 이게 뭐람. 에이 재수 없어. 이래 가지고 학교는 어떻게 가?”

혼잣소리를 해보지만, 다른 사람들도 모두 옷을 망치기는 마찬가지인데 어쩌란 말인가? 하는 수 없이 투덜거리면서 터덜터덜 학교를 향해 걸어야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녹원환경뉴스,한국일보디지털특파원,개인불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녹원환경뉴스,한국일보디지털특파원,개인불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통학 #기차 #연기 #수증기 #기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 한국아동문학회 상임고문 한글학회 정회원 노년유니온 위원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 ***한겨레<주주통신원>,국가인권위원회 노인인권지킴이,꼼꼼한 서울씨 어르신커뮤니티 초대 대표, 전자출판디지털문학 대표, 파워블로거<맨발로 뒷걸음질 쳐온 인생>,문화유산해설사, 서울시인재뱅크 등록강사등으로 활발한 사화 활동 중임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개의 눈을 가진 모래 속 은둔자', 낙동강서 대거 출몰
  2. 2 국가 수도 옮기고 1300명 이주... 이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3. 3 '삼성-엔비디아 보도'에 속지 마세요... 외신은 다릅니다
  4. 4 장미란, 그리 띄울 때는 언제고
  5. 5 "삼성반도체 위기 누구 책임? 이재용이 오너라면 이럴순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