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준비되어 있는 모기약주경심
어릴 적 바닷가에 살았던 탓에 나와 모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의 관계였다. 그 누가 말했던가? 하루라도 모기에 물리지 않으면 몸에 가시가 돋는다고….
바닷가 모기의 위력은 물려본 사람만이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엉덩이 부분에 하얗게 줄무늬가 그어진 바닷가 모기는 크기도 크기지만 시커먼 인상이 저승사자가 와도 벌벌 떨 것이다. 그 모기에게 물렸다 하면 최하 10일은 피가 나도록 긁어주고, 보너스로 덫이 나서 고름 정도 터져줘야 "그 모기 이름값 하는구나!" 했다.
그러니 그 오지 낙도에서 다리가 부러지고, 독사에 물려도 약이라고는 된장에, 지네 기름이 전부인 내 집에도 모기에 물렸을 때 바르는 약은 항상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약이라고 해봤자 상처 부위와 용도에 따라 효능을 달리하는 각종 연고가 아닌 물파스와 바르면 알싸한 기운이 엄지발가락까지 뻗치는 안티푸라민이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따듯한 남쪽지방이라 고향집 마당에서는 언제나 모기의 웽웽거림이 울려 퍼졌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 많고, 따뜻하고, 공기 좋은 데다 방역 한 번 하지 않는 그곳이 바로 지상낙원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양푼만한 얼굴이 모기에 물려 퉁퉁 부어 있는 꼴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만은 없었던지 엄마가 어느 날은 네모 반듯한 모기장을 사와서는 작은방 네 귀퉁이에 못을 박고 쳐주셨다.
공주가 된 느낌이랄까? 커튼도 아닌 것이, 캐노피도 아닌 것이 어찌 그리 안락하던지…. 모기의 입장에서는 파란 모기장 안에 갇혀 있는 나는 영락없이 볼거리이지만, 그 안에 갇혀 있는 나는 말을 안 들을 때마다 울 엄마가 외치시던 "나가 니를 뭣허러 나서는 이 고상인지 모르겄다. 도로 들어가부러" 하던 그곳! 마치 엄마 뱃속으로 도로 들어간 듯 푸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방천지로 뛰어다니며 베개에 머리만 닿았다 하면 잠이 들던 내가 푸근함까지 맛봤으니 그 잠은 꿀맛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격자무늬 틀 속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난 기겁을 하고 말았다.
우연히 모기장 안으로 들어온 모기가 밤새 잘 차려진 독상 앞에서 동생과 나를 번갈아 뜯어놓는 바람에 얼굴뿐 아니라 몸 전체가 울긋불긋하니 마치 수두에 걸린 듯했다.
더군다나 이 크고 통통한 몸뚱어리 중 왜 하필이면 부러 찾으려도 찾기 힘든 눈두덩은 물어놨는지. 그렇지 않아도 작다고 놀림 받던 눈이 그날은 아주 하루 종일을 햇빛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친구들하고 선생님한테 놀림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이렇게 모기와의 짜릿한 추억이 많은 내게 낭만은 진즉에 남의 나라 얘기였던 것이다. 가끔 TV를 보면 시골집에 방문한 아이들이 하늘의 별을 세며 잠을 자는 낭만적인 풍경이 비치곤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한 번도 부럽다는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시골 마당에 덩그러니 놓인 평상에서, 그것도 모기장도 없이, 모깃불도 없이, 하늘을 이불 삼아 자는 그 행위는 모기 맛을 좀 아는 내게는 자해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모기에게 있어 평상에서 자는 사람들의 행동은 자선 행위, 박애정신의 투철한 사랑이 아닐 수 없지만…. 가렵고, 덧나고, 심하면 흉터까지 남기는 모기와는 사투는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큰아이가 태어나면서 다시 시작된 모기와의 전쟁 "써글놈의 모구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