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여 잘 있거라!

모기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는 방법은 남편뿐...

등록 2007.06.20 13:59수정 2007.06.2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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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준비되어 있는 모기약 ⓒ 주경심

어릴 적 바닷가에 살았던 탓에 나와 모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의 관계였다. 그 누가 말했던가? 하루라도 모기에 물리지 않으면 몸에 가시가 돋는다고….

바닷가 모기의 위력은 물려본 사람만이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엉덩이 부분에 하얗게 줄무늬가 그어진 바닷가 모기는 크기도 크기지만 시커먼 인상이 저승사자가 와도 벌벌 떨 것이다. 그 모기에게 물렸다 하면 최하 10일은 피가 나도록 긁어주고, 보너스로 덫이 나서 고름 정도 터져줘야 "그 모기 이름값 하는구나!" 했다.

그러니 그 오지 낙도에서 다리가 부러지고, 독사에 물려도 약이라고는 된장에, 지네 기름이 전부인 내 집에도 모기에 물렸을 때 바르는 약은 항상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약이라고 해봤자 상처 부위와 용도에 따라 효능을 달리하는 각종 연고가 아닌 물파스와 바르면 알싸한 기운이 엄지발가락까지 뻗치는 안티푸라민이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따듯한 남쪽지방이라 고향집 마당에서는 언제나 모기의 웽웽거림이 울려 퍼졌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 많고, 따뜻하고, 공기 좋은 데다 방역 한 번 하지 않는 그곳이 바로 지상낙원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양푼만한 얼굴이 모기에 물려 퉁퉁 부어 있는 꼴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만은 없었던지 엄마가 어느 날은 네모 반듯한 모기장을 사와서는 작은방 네 귀퉁이에 못을 박고 쳐주셨다.

공주가 된 느낌이랄까? 커튼도 아닌 것이, 캐노피도 아닌 것이 어찌 그리 안락하던지…. 모기의 입장에서는 파란 모기장 안에 갇혀 있는 나는 영락없이 볼거리이지만, 그 안에 갇혀 있는 나는 말을 안 들을 때마다 울 엄마가 외치시던 "나가 니를 뭣허러 나서는 이 고상인지 모르겄다. 도로 들어가부러" 하던 그곳! 마치 엄마 뱃속으로 도로 들어간 듯 푸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방천지로 뛰어다니며 베개에 머리만 닿았다 하면 잠이 들던 내가 푸근함까지 맛봤으니 그 잠은 꿀맛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격자무늬 틀 속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난 기겁을 하고 말았다.

우연히 모기장 안으로 들어온 모기가 밤새 잘 차려진 독상 앞에서 동생과 나를 번갈아 뜯어놓는 바람에 얼굴뿐 아니라 몸 전체가 울긋불긋하니 마치 수두에 걸린 듯했다.

더군다나 이 크고 통통한 몸뚱어리 중 왜 하필이면 부러 찾으려도 찾기 힘든 눈두덩은 물어놨는지. 그렇지 않아도 작다고 놀림 받던 눈이 그날은 아주 하루 종일을 햇빛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친구들하고 선생님한테 놀림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이렇게 모기와의 짜릿한 추억이 많은 내게 낭만은 진즉에 남의 나라 얘기였던 것이다. 가끔 TV를 보면 시골집에 방문한 아이들이 하늘의 별을 세며 잠을 자는 낭만적인 풍경이 비치곤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한 번도 부럽다는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시골 마당에 덩그러니 놓인 평상에서, 그것도 모기장도 없이, 모깃불도 없이, 하늘을 이불 삼아 자는 그 행위는 모기 맛을 좀 아는 내게는 자해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모기에게 있어 평상에서 자는 사람들의 행동은 자선 행위, 박애정신의 투철한 사랑이 아닐 수 없지만…. 가렵고, 덧나고, 심하면 흉터까지 남기는 모기와는 사투는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큰아이가 태어나면서 다시 시작된 모기와의 전쟁 "써글놈의 모구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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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는 모기향 ⓒ 주경심

큰아이가 태어나고 이맘때쯤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인간이 아닌 벌레와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도시 모기를 아주 우습게 알던 내가 하루종일 문을 열어놓았는데, 지하방에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그새 들어온 모기들이 밤새 아이를 물었다. 그런데 아직 면역력이 약한 탓인지 모기에 물린 것이 마치 말벌에라도 쏘인 것처럼 작은 귀는 손바닥만해졌고, 앙상했던 다리는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 같은 봉선화꽃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남편이란 사람은 그 모든 잘못을 내 탓으로 돌리고 있으니…. 의지할 데 없는 이 몸이 모기라도 되었으면 남편의 소시지만한 입술을 물어뜯어서라도 복수를 해줄 텐데,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속상한 마음에 말인지 막걸리인지도 모르고 내뱉은 남편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부랴부랴 약국으로 가서 벌레에 물리는 약을 사고, 연기로 죽이는 향, 냄새로 죽이는 향, 뿌리는 약, 그리고 방충망까지 사들고 와서는 일대 공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바닷가 모기 못잖게 지하방 모기 또한 강력했던지, 모기에 물린 다음날이 되자 그 자국에서는 진물이 줄줄 흐르는 것이었다. 말도 못하는 아이가 가려움을 호소하며 긁어대는데, 어릴 적 딸자식이 모기에 물려 퉁퉁 부은 얼굴로 학교 길을 더듬어가며 넘어갈 때 뒤에서 "써글놈의 모구새끼들!"하고 혀를 차던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이 큰 몸뚱이를 놔두고 왜 하필 주먹만한 아이를 물었는지…. 젖 냄새가 달아서 아이한테, 특히 모기나 벌이 잘 들러붙는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젖을 끊을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모기로부터 아이를 지켜낼 난공불락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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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구석구석에 설치된 방충망 ⓒ 주경심

그때부터 난 어느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했다. 사시사철 우리 집 창문에는 방충망이 펄럭이고 있었고, 손 닿는 곳 중 가장 가까운 곳에는 모기향과 약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베개에 머리만 닿았다 하면 업어가도 모르던 그 잠충이가 장소 불문, 시간대 불문하고 모기의 웽∼∼ 소리만 났다 하면 벌떡 일어나서는 모기를 잡은 뒤에야 잠을 자게 되었다.

하지만 허무한 건 내가 아무리 밤잠을 설쳐가며 모기를 잡아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모기는 여전히 내 아이들의 야들야들하고 달착지근한 피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기라고 다 피를 빠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알을 낳아야 하는 암컷만이 피를 빤다고 하니 외롭다고 칭얼대는 남편의 너른 등허리가 넘어다 뵈는 건 왜일까?

모기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고픈 모성애라고 하면 남편을 제물 삼은 이 마누라를 조금은 용서해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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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방 창문에도 ⓒ 주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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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욕실에도.. ⓒ 주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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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방 창문에도 설치된 방충망 ⓒ 주경심

덧붙이는 글 | <여름의 불청객 '모기'를 말한다> 응모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여름의 불청객 '모기'를 말한다>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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