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 밑에 웬 모기장이야?

당뇨 있는 친구 위해 오디 모으는 남편

등록 2007.06.27 14:47수정 2007.06.2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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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입맛 다실 게 없던 시절에는 훌륭한 주전부리 감이었지만 지금처럼 먹을 게 넘쳐나는 시절에는 그저 향수나 느끼게 해줄 뿐인 '오디', 먹으면 입 가에 꺼멓게 오디물이 든답니다. ⓒ 이승숙

남편이 컴퓨터 앞에 앉으면 나는 불안해!

"여보, 오늘 택배 오면 잘 받아 둬."

출근 준비를 하며 남편이 제게 이르는 말입니다.

"무슨 물건 또 샀어? 뭐 샀는데?"

내가 묻는 말엔 대답을 안 하고 남편은 옷만 챙겨 입습니다.

우리 남편은 인터넷으로 물건 사는 걸 좋아합니다. 이런저런 온갖 것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삽니다. 카드대금 용지가 날아와서 훑어보면 인터넷으로 물건을 산 대금이 안 날아오는 달이 없습니다.

물론 비싼 건 없습니다. 다 고만고만한 물건들입니다. 하지만 남편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저는 은근히 긴장합니다. '저 사람, 또 뭘 사려고 저러지?'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택배 기사가 물건을 두고 갔네요. 별로 무거워 보이지도 않는 상자가 하나 현관문 앞에 놓여 있네요. 궁금할 거도 없습니다. 또 그렇고 그런 자질구레한 연장 나부랭이들을 샀겠지요. 그래서 남편이 와서 뜯어보도록 그냥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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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장 값이나 나올려나 몰라... 마음을 어찌 돈으로 매길 수 있으리요. ⓒ 이승숙

퇴근한 남편은 옷도 채 안 갈아입은 채 상자를 뜯습니다. 어깨 너머로 흘깃 넘겨다보니 모기장이네요. 여름이면 유난히 모기를 타는 남편인지라 방에 모기장을 설치하려고 샀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모기를 쫓는 기구나 약들이 좋은 시절에 웬 모기장이랍니까?

그런데 그 모기장은 모기를 쫓기 위한 모기장이 아니었나 봅니다.

밖에서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보, 여기 와서 이거 좀 잡아 줘."

뭘 하는데 부르나 싶어 나가봤더니 모기장을 펼쳐놓고 가위로 쭉 오리고 있습니다.

"여보, 뭐 하려고 모기장을 오려?"
"뽕나무 밑에 쳐두려고 그러지. 이거 좀 잡아봐 오려서 넓게 펼쳐놓게."


아이구 세상에나….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줍기 위해서 모기장을 설치하려고 그런답니다. 오디 그게 뭐라고 생돈 들여서 모기장까지 사나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왔지만 그냥 남편이 하는 대로 놔두었습니다.

뽕나무 밑에 웬 모기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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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현덕의 집 앞엔 뽕나무가 한 그루 우산을 펼쳐놓은 것처럼 서 있었다는데... ⓒ 이승숙

"여기에 말야, 모기장을 쳐서 두면 오디가 다 여기에 떨어질 거 아냐? 그러면 흙도 안 묻고 줍기 좋잖아."
"오디는 뭐 하려고 그러는데?"

"응, 다 소용이 있어서 그러지. 오디가 필요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 여럿 있는데 내 나중에 줄려고 그러지."
"오디가 어디에 좋아? 어디에 좋은데?"

"오디는 말야 당뇨에 좋대. 승민이 아빠도 좀 줘야 되고 그리고 또 당뇨 있는 사람들 내 주위에 많아. 오디술 담아서 주면 좋잖아."


주변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서 오디를 줍는다는데, 그만 불평불만이 쏙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오디 그거 얼마나 주워야 모기장 값을 빼겠나 속으로 생각했는데, 당뇨 있는 친구에게 주기 위해서 오디 줍는다니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집 모퉁이에는 산뽕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그 뽕나무는 키가 꽤 큽니다. 그 정도면 나이도 꽤 먹었을 거 같습니다.

예전 제가 어릴 때는 집집이 봄, 가을로 누에를 쳤습니다. 그래서 뽕밭도 많았습니다. 그때 봤던 뽕나무는 키가 낮고 뽕 이파리가 손바닥보다 더 컸습니다. 그리고 오디도 알이 굵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 모퉁이에 있는 뽕나무는 이파리도 작고 오디도 자잘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산뽕나무 같아 보입니다.

산뽕나무 잎에는 뜨물(진딧물)이 잘 끼었습니다. 진딧물들은 뽕잎을 또르르르 말아서 이파리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진딧물이 끼면 누에가 뽕잎을 잘 먹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누에에게 주는 뽕잎은 진딧물이 안 낀 깨끗한 뽕잎만 주었습니다.

당뇨에 좋은 오디, 술 담아서 나눠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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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도 아닌 오디를 줍자고 모기장까지 다 사고... 그러나 별 거 아닌 오디가 별 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 이승숙

우리 집 뽕나무는 해마다 병치레를 합니다. 잎이 무성해지면 꼭 뜨물(진딧물)이 낍니다. 처음에는 몇 군데 정도 희끗하게 뜨물이 끼어 있다가 좀 지나면 나무 전체로 번져 갑니다.

진딧물이 낀 이파리들은 얼마 안 있으면 땅에 뚝뚝 떨어집니다. 진딧물이 영양분을 다 빨아 먹어서 그런지 이파리들은 가을도 아닌데 누렇게 물들어 떨어지곤 했습니다. 가을이 되기도 전에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 있곤 했습니다.

올봄, 뽕나무에 새순이 돋아나자 남편이 그랬습니다.

"올해는 뽕나무에 뜨물약을 좀 줄까? 이파리들이 성하면 오디도 더 많이 달릴 거 아냐."
"그 높은 데를 무슨 수로 쳐주려고? 기계도 없는데 당신 힘으로 어떻게 약 치려고 그래?"


괜히 약 친다며 또 기계 살까봐 미리 안 된다는 암시를 줬습니다. 내 보기에 별거도 아닌 오디 그거 좀 줍자고 농약에다 약 치는 기계까지 사면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크잖아요.

우리 집 산뽕나무는 덩치가 크고 키가 높다 보니 오디를 따먹는 거는 언감생심 그림의 떡입니다. 손으로는 딸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달렸으니 따 먹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오디는 나무에 달렸다가 물러집니다. 그러다가 저절로 땅에 떨어져 버립니다.

뜨물이 끼어서 잎이 다 떨어져 버린 뽕나무가 여름에서 가을까지 휑하니 서 있으니 보기에 그다지 좋은 풍경은 아닙니다. 뽕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베어버릴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베어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 뽕나무엔 비밀스런 꿈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상촌을 꿈꾸지만 오디술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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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장에 떨어진 오디를 아침 저녁으로 모읍니다.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모으고 보니 꽤 됩니다. 과실주 담는 소주를 부어서 서늘한 곳에 두었습니다. ⓒ 이승숙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 현덕'의 집 앞엔 커다란 뽕나무가 한 그루 있었답니다. 길을 가던 어떤 나그네가 그 뽕나무를 보고는 틀림없이 귀인이 태어날 집이라고 했다 합니다. 뽕나무가 서 있는 품새가 마치 천자가 나들이할 때 받쳐주는 우산처럼 생겼으니 틀림없이 귀인이 태어날 거라고 했답니다.

우리 집 뽕나무를 보면서 가끔 그 말을 생각해 봅니다. '누상촌'으로 불렸던 유비 현덕의 집앞 뽕나무처럼 우리 집 뽕나무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이름을 얻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우리 집이 누상촌으로 불릴지도 모를 일이야. 내 후손 중에 유비 현덕처럼 이름을 떨칠 사람이 태어날지 누가 알겠어?'

서천 소가 웃을 일이지만 속으로 꿈꾸는 거야 누가 뭐라 하겠어요?

저한테는 누상촌의 뽕나무로 보이는 그 나무가 남편에게는 약으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당뇨 있는 주위 분들에게 드리기 위해서 우리 남편은 오늘도 모기장에 떨어져 있는 오디를 모아서 담습니다.

그 사이 모은 오디가 제법 됩니다. 항아리에 담아놓고 과일주 담는 소주를 부어주었습니다. 당뇨가 있는 남편의 친구 분들이 우리 남편의 정성이 담긴 오디술을 마시고 부디 당 치수가 내려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디 #뽕나무 #당뇨 #모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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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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