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는 '비호감'일 수밖에 없나

[로마인 이야기] 역사를 새로이 알게 되는 재미

등록 2007.06.27 12:24수정 2007.06.27 14:10
0
원고료로 응원
a

클라우디아 새 아니오 수도 ⓒ 한길사

<로마인 이야기>를 읽기 전에 내가 알고 있었던 '로마'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두 가지 사상의 지배하에 나온 것이었다. 하나는 기독교의 일신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이교도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결국 주님의 품에 돌아온 고대 제국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현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본, 우월한 정치체제인 공화정을 포기하고 제정으로 돌아선 국가라는 것이다.

다른 세세한 역사적 사실이나 해석은 딱히 들어본 바도, 알게 될 일도 없었다는 것이 더 옳다. 사실 서구에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알게 모르게 고대 로마의 역사와 유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학교에서 기초 라틴어 수업이라도 들어야 한다면) 동양의 한복판에서 태어난 나에게 로마라는 것은 단지 먼 옛날, 먼 곳에서 잠시 스쳐 지나갔던 별 관심을 둘 것이 없는 세계였을 뿐이다.

앞서 언급한 로마에 대한 두 가지 평가를 들었을 때 내가 접한 인물이 각기 하나씩 있었다. 먼저 기독교의 공인에 관련된 인물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있고,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돌아서게 된 시점에 언급되었던 사람은 바로 '카이사르'이다.

이 두 인물이 고대 서양의 역사에서 점하는 위치는 참으로 거대하다고도 하겠지만,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내가 알고 있었던 기존 상식과 가장 다르게 접하게 된 두 위인이기도 하다.

먼저 카이사르. 어쩌면 <로마인 이야기> 전체는 시오노 여사가 카이사르에게 보내는 연서라고도 느껴질 정도로 대단하게 취급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전에 내가 들었던 인상이라고는 유럽 전역을 로마의 영토로 편입시키는 것에 열중한 정복자에다가, 본국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그 후에 종신 독재관으로 취임하여 사실상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가, 기존의 로마를 지키려는 세력들에 의해 암살당하고만 권력자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대단한 인물이라고는 생각되지만 딱히 위대하다거나 뭔가 본받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칭기즈칸, 나폴레옹 또는 히틀러 같은 다른 정복자들하고 무엇이 다른 가도 알 수 없었고. 더군다나 공화정을 폐지하고 제정을 확립한 인물이라니, 이 얼마나 반동적인 생각인가. 지금과 같은 자유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세상에서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서구에서 카이사르라는 인물을 현재 받아들이고 평가하는 것만 보더라도 기존의 내 생각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카이사르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가장 큰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는데다가 그게 아니라고 하여도 전권에 걸쳐서 누누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요약, 정리할 필요는 느껴지지는 않는다. 설사 그러한 명성을 깎아내리는 한이 있더라도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치우쳐진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다고나 할까.

로마의 팬들에게 비호감일 수밖에 없는 인물

a

로마 병사들 ⓒ 한길사

카이사르의 경우는 당연하게도 저자가 애정을 가지고 나름 심혈을 기울여 정확하게 묘사하고 평가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다룬 부분이 <로마인 이야기> 전체 중에서 가장 걸작이라고 평가될 만하다고 생각되지만, 앞서 말한 또 다른 인물인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경우는 저자가 '대제'라는 표현을 남들처럼 붙이는 것을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로마의 팬들에게는 비호감일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전에 내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망해가는 로마 제국 말기의 황제로 전 제국을 거의 점령한 기독교의 세력에 눌려서 제위 말기에 기독교를 공인하고 또 죽기 전에 마지못해서 세례까지 받은 심약한 인물로, 그에게 '대제'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단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이러한 나의 선입견들이 하나도 맞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어쩔 수 없이 '비호감'일 수밖에 없는 인물에 대해 묘사한 것이라면, 차라리 호의로 일관하고 있는 카이사르를 묘사한 부분에 비해서 더욱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도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그에 못지않게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다시 말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망해가던 로마 제국을 나름대로 가진 방식으로 재정비하여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았고, 그 과정에서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고 제국의 안정을 꾀한다는 측면에서 기독교를 효과적으로 이용을 하였다는 평가다.

죽기 전에 세례를 받은 것도 자신이 하는 세속 정치가 신권에 휘둘리지 않도록 한 배려였고, 그전에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공인한 것도 마치 공화정의 탈을 쓴 제정을 확립시킨 초기 황제들처럼 장차 기독교 국가로 나가기 위한 교묘한 정치적인 술수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결과라면 그렇게 해서라도 제국을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나 개탄을 하고 있고, 또 이 황제 이후로는 유럽에 있어서 중세의 시작이라 아예 로마의 역사로 보지 않기도 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잘했느냐 못했느냐의 평가는 뒤로하고라도, 사실 이미 다 일어난 일들에 대해 왜 그랬느냐고 해봤자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콘스탄티누스 대제라는 인물은 '대제'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나름 뛰어난 능력을 지닌 권력자였다는 생각은 든다.

사실 <로마인 이야기> 전체에는 이들 못지않게 흥미로운 인물과 그에 따른 역사적 사건들이 얼마든지 있지만, 대부분 처음 들어본 이름이거나 아니면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기존에 알고 있었던 상식과 크게 어긋나지 않은 평가를 받은 인물들이어서 (가령 한니발 장군 같은 ) 위 두 인물에 비해서는 깊은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처음에는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던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서 평가를 달리하게 된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인식, 나에겐 소중한 경험

a

ⓒ 한길사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인식은 <삼국지> 같은 동양의 고전을 다시 읽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가령 촉한정통론에 의심을 품고 제갈량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이미 지나간 역사에 대한 가정은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고, 더군다나 '잘못한 일, 실패한 일' 등을 가지고 뭐라 하는 것은 참으로 무의미한 일이다.

카이사르도 말했다시피 모든 일은 처음에는 다 선의를 가지고 시작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로마인 이야기>에는 왠지 좀처럼 부정적인 평가는 나오지 않는데 이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잘못된 결과로 끝나는 것들은 대개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삼국지>를 예로 들자면, 조조와 같은 인물을 다시 해석해서 높은 평가를 내리고, 더 나아가 그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까지 다시 만들어 보는 것은 이미 있었던 사실과 결과를 토대로 무엇이 그런 유의미한 흐름을 만들어내었는가를 고찰해보는 것이니 어쩌면 꼭 필요한 작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서 카이사르나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같은 인물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된 것은 나에게 있어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아울러서 '제국'이라는 이름 아래 전체적으로 부정적으로 다가왔던 로마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된 것부터가 새로 왔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동양의 역사에 대해서도 <로마인 이야기>와 같은 훌륭한 역사 이야기 책들이 나와서 미처 모르고 있었던 인물이나 사건, 또는 기존에 잘못 알려졌던 사실에 대한 재인식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 또한 간절하다.

우리가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아니, 저런 고대에 저렇게 훌륭한 문명이 있었다니!"라고 하는 감탄을 지금의 서양인들이 고대 동양을 무대로 한 비슷한 책을 읽으면서 느끼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로마인 이야기' 글쓰기 대회 참가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로마인 이야기' 글쓰기 대회 참가글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1995


#로마인 이야기 #한길사 #콘스탄티누스 #카이사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대통령, 또 틀렸다... 제발 공부 좀
  2. 2 한국에서 한 것처럼 했는데... 독일 초등교사가 보내온 편지
  3. 3 임성근 거짓말 드러나나, 사고 당일 녹음파일 나왔다
  4. 4 저출산, 지역소멸이 저희들 잘못은 아니잖아요
  5. 5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요양원 나온 어머니가 제일 먼저 한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