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저녁, X파일의 주인공 이상호 기자(오른쪽)가 시사기자단 사무소를 찾아, 정희상 전 시사저널 기자(왼쪽)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오승주
저녁에는 MBC의 이상호 기자가 사무소를 찾아왔다. 이상호 기자는 2년전 정치권과 언론, 삼성그룹간의 유착 비리를 고발한 이른바 X파일 사건 보도로 한국사회에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킨 장본인. 그는 어제 PD수첩의 내용을 봤다며, 제작진이 말못할 어려움이 있어서 '할말'을 다 못했을 것이라며 미안해 했다.
본인 스스로도 중요한 인터뷰를 하기로 했었는데, 그것이 무마되었던 사실을 고백했다. 결국 시사기자단 기자들에 의해서 '오마이뉴스 릴레이 기고'의 필자로 선정되는 '벌칙'을 받게 됐다.
물론 이와 같은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지기 쉽다. 하지만 몇몇 의식 있는 언론인들은 시사저널 기자들이 고백하는 한국 언론의 패배에 대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데서 한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② 누가 이 기자들을 아프게 했는가.
PD수첩은 첫 장면부터 매우 '심각'하다. 집회에 관해 기자들과 경찰 사이의 '교섭'이 진행되는 중 갑자기 들이닥친 '회사 관계자'들이 천막을 마구 찢고, 이에 항의하는 기자들의 목을 조르는 등 공중파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상황을 정리하는 문정우 당시 시사저널 기자는 "노순동씨가 욕하는 것을 보는 게 고통스럽다. 신호철 기자가 핏대 올리는 것을 보는 게 민망하다"라고 말함으로써 이 기자들이 여간해서는 보이지 않는 행동을 한 데 대해서 안타까워했다. 그 중에서도 기자들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바로 두 경영자의 '말바꾸기'였다. '몰상식의 표본'에 이어 그들은 '말 바꾸기의 표본'이자 '말 바꾸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금창태 사장은 편집인으로서 '문제의 기사'를 보지도 않고 삭제를 지시한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부정했지만, PD수첩이 확보한 자료에 의하면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금창태 사장은 '기사'를 보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그리고 꺼내든 논리가 더욱 가관이다. "기사내용은 보지 않았지만 삼성으로부터 이미 그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으므로 본 것이나 다름 없다"는 주장이다. 금창태 사장이 삼성의 관계자인지 시사저널의 관계자인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그보다 더한 것은 심상기 회장이다. 기자가 6월 20일 심상기 회장 자택 앞 단식농상장에서 이숙이 기자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이숙이 기자는 "당시 심상기 회장이 발행인을 겸하고 있었는데, 건강상의 문제로 금 사장에게 발행인의 권한을 부여한 점이 특히 우려스러운 부분이었다. 이를 의식해 심상기 회장은 기자들에게 금 사장은 오로지 경영에만 관여한다는 약속을 해주었다"고 말했다.(오마이뉴스 6월 21일자 보도, "금권에 갇힌 언론자유")
하지만 오늘 시사기자단 사무소에서 "심상기 회장이 당시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보였나"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기자들은 "심상기 회장은 그런 약속을 해준 바가 없다"고 답했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러면서 꺼내든 논리는 금창태 사장의 것과 몹시 흡사한데, "기자들이 저돌적으로 나와서 달래느라고 둘러댔던 것이지 그와 같이 명확히 약속을 한 적은 없었다. 경영인은 편집권과 경영권을 모두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순간 기자들은 철없는 어린애로 전락해 버린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이와 같은 두 경영인과 함께 1년간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니, 홀로 '허공'과 대화를 나눴다는 편이 더욱 정확하리라.
③ 기자들의 '가족' 이야기
기자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가족들이다. 기자들이 싸우는 만큼의 '짐'을 가족들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복지를 '가족'에게 떠넘기는 대한민국의 시스템으로 보았을 때 이들의 생활고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중에서도 '생활고'와 '투병고'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이숙이 기자의 상황이 독자들의 눈물샘을 가장 자극했으리라. 이숙이 기자의 아버지는 현재 모 병원에서 암 투병 중이다.
이숙이 기자는 "딸내미가 회사가 힘든 거하고 겹쳐서 안팎으로 힘든 모습이 함께 비춰서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메모 일정을 확인하며 빨리 취재하러 가지 못하는 상황에 초조해했다.
편집권의 독립은 마땅하지만 가족들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지금 하는 투쟁이 의롭고 옳은 것이지만, 동시에 (가족들에게는) 무책임도 된다는 상황이 여러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생활비를 가져다 주지 못해 집에 있는 에어컨을 떼다 팔아야 했던 기막힌 사연을, 백발이 성성한 50대 기자가 누이들에게 생활비를 얻어다 쓰던 날의 열패감과 쓴맛을 기자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더 미안하게 하고 끝내 눈물짓게 만든 것은 가족들이 던지는 의연한 충고이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끝까지 순수하게 사랑을 지켜왔어요. 그 사랑은 변하지 않고, 그 사랑은 지속되리라 생각해요. 불필요한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백승기 전 시사저널 기자의 아내인 박정미 씨가 울먹이며 전한 이 말에 단식투쟁까지 불사하며 강단있게 버티던 김은남 기자가 무너졌다. 22명의 기자들과 그 가족들의 역사, 드라마를 시청자들은 짧은 시간에 볼 수 있었으리라.
시사저널 방영 이후 전 시사저널 기자단 사무실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