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26일 전원 사표를 제출하며 사측과 결별을 선언했다. 1년여동안 끌어왔던 사측과의 줄다리기를 끝내며 기자들이 그동안 몸담았던 편집국 현판 앞에 헌화를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동요의 갈래 중에 '참요'가 있다. 대개의 구전 동요가 역사 현실과 무관하게 발생하는데 비해, 예언의 동요인 참요는 역사와 연관이 있다.
조선시대에 숙종이 장희빈의 미색에 빠져 인현왕후를 폐위시키자, 장안의 아이들이 '미나리요'를 부르고 다녔다. "장다리는 한철이나 미나리는 사시사철"이라는 노랫말의 예언대로 장씨는 몰락하고 민비는 복위되었다. 동학혁명이 좌절되기 전에는 전봉준의 패전을 예언하고 애달파한 '파랑새요'가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근대의 참요로는 광복 직후 유행했던 '미국사람 믿지 마소요'를 들 수 있다. "미국사람 믿지 마소 소련 사람 속지마소 일본은 일어난다 조선사람 조심하소'라는 가사는 현실을 통찰한 민심을 보여준다. 지도자들이 그 민심을 외면하고 천심을 거스른 결과가 동족상잔의 전쟁과 분단이었고, 그로 인한 질곡이 우리 삶을 아직 옥죄고 있다.
이처럼 민중은 예로부터 정직하게 현실을 꿰뚫어봐 왔지만, 권력자들은 오히려 늘 진실을 외면해 왔다. 진실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불리하고도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이 외면한 진실을 간파한 시민들
<시사저널> 사태도 마찬가지다. 정직한 시민들은 본질을 대번에 간파했다. 그래서 파업 기자들을 지지하는 독자모임을 자발적으로 만들고, 1년이라는 긴 시간 기자들 곁에서 함께 싸웠다. 생업을 꾸려가기에도 빠듯한,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누가 모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큰 소리로 외친 것도 아니었다. 저마다 제 발로 쭈뼛쭈뼛 모여든 이들이었다.
22명의 기자도 대단하지만, 낮은 자리에서 기꺼이 파업 기자들의 손발이 되어주고, 자기 일을 제쳐놓고 길거리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내겐 더 경이로웠다. 기자들이 단식을 할 때는 핏줄이 굶는 듯 애타 하고, 그들 때문에 눈물 흘리고, 죄 지은 것 없이 미안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 살 맛이 났다. 성별·연령·학력·소속·지위·재산·거주지, 이런 것들이 아무 의미도 제약도 되지 않는 성숙한 시민 연대를 체험하며 행복했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에 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시사저널> 사태를 외면했다. 극소수 개인을 빼고 언론인도, 학자도, 문인도, 정치인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특히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유수한 언론이 보여준 침묵의 카르텔은 기묘하다 못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덕분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1년이 지나도록 <시사저널> 사태를 까맣게 모른 채 지내긴 했지만 진실이 언제까지 감추어지진 않는다.
세상에 비상식적인 일이 한두 가지이고 억울한 사람이 어디 하나 둘이겠는가. 왜 하필 <시사저널> 사태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금력과 언론 자유 수호를 위한 싸움은 이전부터 늘 있어왔던 일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시사저널> 사태는 결국 언젠가 곪아서 터질 수밖에 없게 형성되었던 우리 사회 환경적 조건이 농익어 터진 한 극점이다. 만물이 극단에 이르면 소멸하고 정반대의 것이 일어나게 되는데, <시사저널> 사태가 그 분기점이었다.
평범한 독자들이 금방 알아보았고,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는 나 같은 비전문가의 눈에도 보이는 현상이 언론계 종사자와 그 분야 전문가들에게 보이지 않았을 리 없다. 그 많은 문화 엘리트들도 모르진 않았으리라. 아마도 더 크고 중요한 일들로 바빴던 것이겠지.
기업권력이 지배하는 피라미드에서 튕겨져 나온 기자들
시사기자단의 저항은 소수의 기업권력이 다수의 삶을 지배하는 구조가 강고하게 고착된 우리 사회 틀에 대한 거부의 표시이며, 비인간적 삶을 강요하는 시장 전체주의에 대해 사람다운 사람으로 존재하고자 한 자유의지의 표현이었다.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우리는 좀 더 온당한 밥벌이를 위해 싸웠을 뿐이며, 기자정신이니 언론자유니 하는 거창한 말은 모르겠다고 시사기자단 기자들은 말할지도 모른다. 허나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여기선 중요치 않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은 현상이고 발생한 의미는 의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