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빨리 일반병실로 옮겨줘"

중환자실에 계시던 어머니가 일반병실로 옮기셨습니다

등록 2007.08.03 16:50수정 2007.08.06 11:0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유명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이 큰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면 꼭 거쳐 가는 곳이 중환자실이다. 그들이 죄 값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때가 되면 병보석으로 풀려나는 것도 작금의 현실이다.


돈과 권력을 이용해 법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사람들은 중환자실을 우습게 볼 것이다. 그러나 환자에게는 중환자실 같이 중요한 곳이 없다. 촌각을 다투는 생명을 이곳에 맡겨야 하는 환자도 있다.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것이 생명이다. 중환자실은 일반 의료시설로 관리할 수 없는 중증 질환이나 대수술 환자를 24시간 보호관찰하고, 때에 따라서는 신속하게 구급 및 처치를 하도록 만들어진 종합병원의 특수치료시설이다.

'중환자실'의 첫 글자가 무거울 중(重)자다. 중환자실에 있는 기간은 짧지만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시간이다. 그래서 도의적이지만 환자가 소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의료진에게 있다. 환자나 보호자가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생각도 해야 한다.

수술 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가족들을 놀라게 했던 어머니가 나흘째 중환자실에 계신다. 30분씩 하루에 두 번 있는 면회시간이 가까워오면 중환자실 앞은 환자의 얼굴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렇다고 보호자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은 것도 아니다.

현재의 기분, 즉 마음속에 품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표정이다. 아픈 사람 만나면서 표정관리까지 하는 사람 없다. 그래서 면회를 기다리거나 끝내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환자의 상태가 짐작된다.


중환자실에는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환자도 있다. 유난히 침울하거나, 조용히 슬픔을 삭이거나,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는 사람들을 보는 날은 괜히 우울해진다. 그게 같은 하늘 아래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어머니가 산소 호흡기를 끼고 힘들어 할 때는 대화를 나눌 수 없어 보호자인 나도 답답했다. 면회를 해도 그저 얼굴 한번 보고, 손이나 발을 만져보고, 전날에 비해 차도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환자들을 돌보느라 바쁜 간호사들에게 수고하신다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호흡기를 떼고 말을 하게 되자 중환자실에 계셔도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다. 몸에 열이 많이 나서 고생하신다기에 얼른 가습기를 사서 머리맡에 놓아드렸다. 죽을 잡수신다기에 틀니도 찾아다 드리고, 오렌지주스도 사다 드렸다.

그런데 치료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병실로 빨리 보내달라고 소원하는 게 문제였다. 호흡기를 떼면서 첫마디가 "얘, 빨리 일반병실로 옮겨줘"였다. 대수술을 하고 큰 고비를 넘겼지만 현재는 의식이 멀쩡한 환자이다 보니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치료 못지않게 정신적인 치료도 중요하다. 오죽하면 제정신인 사람도 며칠만 가둬두면 돈다고 할까. 생사의 갈림길에서 밤새도록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은 중환자실에서 잠 못 이루는 어머니가 걱정되었다.

할 수 없이 담당 의사를 만나 어머니의 호소를 전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일반병실로 옮겨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중환자실이 아닌 청주 효성병원 366호 일반병실에서 재활을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를 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의 몸을 닦아 주고, 대소변을 받아주고, 주사 등의 응급처치를 하고, 체온측정 등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느라 고생하는 간호사들의 고마움을 알아줘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과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과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중환자실 #청주 효성병원 #366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일상은 물론 전국의 문화재와 관광지에 관한 사진과 여행기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혼해주면 재산 포기하겠다던 남편, 이 말에 돌변했다 이혼해주면 재산 포기하겠다던 남편, 이 말에 돌변했다
  2. 2 "쿠팡 심야 일용직 같이 하자했는데... 3일 만에 남편 잃었습니다" "쿠팡 심야 일용직 같이 하자했는데... 3일 만에 남편 잃었습니다"
  3. 3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4. 4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건 새뿐만이 아니다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건 새뿐만이 아니다
  5. 5 개 안고 나온 윤 대통령 부부에 누리꾼들 '버럭', 왜? 개 안고 나온 윤 대통령 부부에 누리꾼들 '버럭', 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