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씩 빼가는 얌체 승객들 있지만
시민들 고마움에 우산 다시 채우죠"

[기획리포트] '대구 명물' 달구벌 버스 '양심우산'을 아시나요?

등록 2007.08.31 15:43수정 2007.09.0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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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3번 저상버스에 비치된 양심우산(왼쪽)과 안내문구. 일반버스의 경우 운전석 뒷편 혹은 뒷문 인근에 위치해 있다. ⓒ 이준혁

북구3번 저상버스에 비치된 양심우산(왼쪽)과 안내문구. 일반버스의 경우 운전석 뒷편 혹은 뒷문 인근에 위치해 있다. ⓒ 이준혁
비가 내렸다 그쳤다 오락가락하던 지난 8월 28일 오전. 쏟아붓던 비가 그치고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자 대구시내는 다시 시민들로 북적이기 시작했지만 이내 약한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미처 우산을 안 가져온 시민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일부 시민들은 건물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마침 버스정류장에 달구벌버스 소속 시내버스가 멈추자 시민들은 버스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바로 이 회사 버스 안에는 늘 '양심우산'이 비치되어 있기 때문이다.북구3번·성서3번·202번·202-1번·518번 등 달구벌버스 소속 시내버스 차량에는 '양심우산을 빌려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작은 통이 있다. 이 통 속에는 보통 5~7개 정도의 우산이 늘 비치되어 있다.

 

2년전 시민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양심우산'

 

'양심우산'은 대여료나 보증금이 따로 없다. 이름 그대로 보증금은 보이지 않는 '양심'일 뿐, 금전적인 비용이 들지는 않는다.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않은 채 버스 타고 이동하다가 갑작스런 소나기에 당황하는 승객을 위한 우산으로, 다음에 달구벌버스 소속 시내버스를 이용하게 될 때 그 통 속에 다시 돌려주면 것이다.

 

달구벌버스는 왜 이처럼 '양심우산'을 차내에 비치해 놓았을까? 이는 달구벌버스의 기업사와 관계가 있다. 달구벌버스는 대구의 29개 버스회사 중 경영환경이 가장 어려웠던 회사로, 이 회사의 전신인 '국일여객'이 부도난 뒤 지난해 2월 19일의 대구광역시 버스 준공영제 시행 이후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으로서 거듭났다.

 

회사가 부도난 2005년 8월 이후 국일여객에서 운영하던 버스 노선은 운행 중단되었고 근로자들은 그해 말까지 도심 한복판에서 천막 농성을 벌였다.결국 우여곡절 끝에 70억에 달하는 회사 부채를 떠안고, '달구벌버스'로 재탄생하기에 이른다. 천막 농성 시절, 당시 국일여객 근로자들은 '회사가 정상화되면 도와준 시민들에게 은혜를 갚겠다'라고 말했고, '양심우산'은 그 첫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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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우산'을 펼쳤을 때의 모습. 양심우산에는 달구벌버스 명의가 찍혀 있다. 만약 양심우산을 빌려갔다 돌려주는 걸 깜빡한 분이라면 달구벌버스 소속 어떤 차량이든 괜찮으니 돌려주길 바란다. ⓒ 이준혁

'양심우산'을 펼쳤을 때의 모습. 양심우산에는 달구벌버스 명의가 찍혀 있다. 만약 양심우산을 빌려갔다 돌려주는 걸 깜빡한 분이라면 달구벌버스 소속 어떤 차량이든 괜찮으니 돌려주길 바란다. ⓒ 이준혁

달구벌버스는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을 제외한 빚만 해도 무려 34억원 정도 갖고 있었다. 거액의 빚으로 회사 형편이 어려운 달구벌버스는 승무단(운전기사) 전원이 1인당 800만원씩 출자하고 상여금 중 절반은 유예하는 등 뼈를 깎는 노력으로 1년 만에 부채 6억원을 상환한다. 이러한 착실한 경영 속에, 천막 농성 시절 시민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양심우산'을 만들어 차 내에 비치하기로 결정하였다.

 

마침내 올해 7월 초부터 장마철을 맞아 제작원가가 2400원 정도 하는 우산 1000 개를 구입해, 예비차 3대를 제외한 총 48대의 시내버스(202번 12대, 202-1번 12대, 518번 8대, 북구3번 12대, 성서3번 4대)마다 10개씩 양심우산을 비치했다.

 

202번을 종종 이용한다는 김정미(23·경북대 정치외교학과 재학중)씨는, "버스 안에 우산이 비치된 것을 보고 처음에는 차 내에 손님들이 두고 간 우산을 찾아가도록 놓아둔 '양심우산'인 줄 알았다"며, "기사님들의 따뜻한 마음 때문에, 혹 시내에 나갔다가 갑자기 우산 없이 비를 만나도 든든할 것 같다"고 반겼다.

 

달구벌커피, 비우면 채워지는 나눔의 여유

 

달구벌버스 차량 51대 가운데 특별한 버스가 있다. 바로 '대구 70자 3245' 번호판을 달고 있는 북구3번(망우당공원~아양교역~동대구역~신천교~동인네거리~달성공원앞~북구청~노곡동) 버스이다. 이 버스는 우선 대구 시내버스면허로 30대도 안 되는 저상버스 중 하나로, 지난해 8월에 출고돼 이제 갓 1년을 넘은 새 차다.

 

더불어 이 버스에서는, 달구벌버스 양심우산뿐 아니라 '공짜 커피'도 있다.모 공항리무진에서 생수를 주고 모 우등고속에서 정수기 물을 가져다 마시게 하는 경우는 보았어도, '시내버스에서 커피를 무료로 준다'는 사실에 생소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달구벌커피'라는 엄연한 이름까지 갖고 있는 이 커피는 셀프서비스다. '재료'는 바로 커피믹스와 3~4개의 보온병에 담긴 온수. 맛은 승객들의 물 조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이 커피는 유독 맛있다. 그 마음이 따뜻하기 때문이다.북구3번 버스의 회차점은 망우당공원. 당초 망우당공원 관리사무소에는 커피자판기가 있었지만 여러 문제로 사라졌다. 회차점에서 잠시 쉴 때, 혹은 회차점의 식당에서 점심을 할 때 커피 한 잔 마시곤 하던 기사들은, 이제 커피를 못 마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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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3번 저상버스의 양심커피. 저상버스 앞 부분은 짐칸 처리가 되어 있어 보온병, 커피, 종이컵 등을 놓기 안성맞춤이다. ⓒ 이준혁

북구3번 저상버스의 양심커피. 저상버스 앞 부분은 짐칸 처리가 되어 있어 보온병, 커피, 종이컵 등을 놓기 안성맞춤이다. ⓒ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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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구3번 시내버스의 이형문 기사(달구벌버스). '달구벌커피'는 자신이 버스운전을 하는 한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 이준혁

대구 북구3번 시내버스의 이형문 기사(달구벌버스). '달구벌커피'는 자신이 버스운전을 하는 한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 이준혁

이 노선에서 저상버스 차량을 운전하는 이형문 기사는 이 점을 아쉽게 여겼고 마침 망우당공원 관리사무소에 냉온수기가 있는 것을 알고 커피믹스를 사비로 구입하여 차내에 비치해 두었다가 회차점에서 쉴 때 동료기사들과 마시기 시작했다.그러다 한 기사가 '커피를 손님에게 서비스하면 어떨까' 제안했다. 마침 북구3번 저상버스차량은 앞부분 일부가 좌석 없이 짐칸 형태로 되어 있었고, 다음날부터 '달구벌커피'가 '개업'했다.

 

처음에는 승객들도 많이 어색해 했다고 한다. '950원(카드 기준)을 내고 버스 승차해 커피까지 얻어먹어도 되는지'에 대한 의아함이었다. 하지만 코팅한 안내 표지를 붙여 놓고 가지런히 정돈해 두자 사람들도 자연스레 '달구벌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놀라운 것은 그 이후다. 기사들과 나눠 마실 때 커피 마신 기사들이 나중에 커피믹스를 사다 준 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승객들도 커피믹스를 '기증'하기 시작한 것. 이는 지속적인 '달구벌커피' 운영의 원동력이 됐다.

 

낮은 우산 회수율, 커피값 인상에도 쭉~ 이어진다

 

'은혜가 은혜로' '호의가 호의로' 그대로 되돌아온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현실은 그다지 녹록치 않다. 이는 달구벌버스의 '양심우산'이라고 다르지 않다. 양심우산은 초기에 1000개를 구입한 뒤, 버스마다 10개 정도씩 총 500개가 비치되었다.

 

그런데 승객들이 비오는 날 양심우산을 가져간 1주일 뒤 회수분은 매우 민망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우산을 3개씩 빼가는 승객을 잡아 정중히 말린 적도 있었다는 안타까운 얘기까지 들릴 정도였다. 결국 회수분 외에 다시 우산 500개를 버스마다 적당량씩 나눠 비치했지만 이 또한 승객들이 다음 비 오는 때 가져간 뒤 대부분 돌려주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300개씩 추가주문해 비치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다.이에 달구벌버스 또한 '양심우산' 제도 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심우산' 제도를 없애지 않는 건 앞서 언급한 '시민들에 대한 약속'이 있기도 하지만 다음 승차시 혹은 승차하지 않더라도 우산을 돌려주려고 버스를 세웠다면서 우산을 반납하는 일부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더불어 버스를 나가자마자 비를 피하기 위해 건물을 찾거나 비를 맞으며 헐레벌떡 뛰는 승객들을 보며 안타까웠는데, 그러한 모습이 다소나마 줄어들었다는 점도 작은 원인이라고 한다.

 

'달구벌커피' 역시 북구3번 이형문 기사가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회사 차원이 아니어서 사비를 털긴 하지만 다른 버스 기사는 물론 승객들까지 십시일반하는 나눔이 있기에 가능한 것.

 

이형문 기사는 "커피믹스와 종이컵은 대형 할인점에서 구매하면 크게 비싸지 않고, 물은 공원사무소 냉온수기를 이용하기에 큰 부담이 안 된다"라며 겸손해했다. 이어 "처음에는 돈을 주려고 하는 승객분도 있었지만 정중히 사양했다"라며, "앞으로도 운전대를 잡고 있는 동안 '달구벌커피'를 계속 나누겠다"라고 밝혔다.양심우산과 달구벌커피. 결코 넉넉한 환경은 아니지만 '자사가 운행하는 노선' '자신이 운전하는 버스'의 승객과 무언가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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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버스'와 '달구벌커피'. 각각 달구벌버스에서 운송원가를 아낀 비용과 이형문 기사의 사비로 지급되는, 대구 시내버스의 따뜻한 나눔의 모습이다. ⓒ 이준혁

양심버스'와 '달구벌커피'. 각각 달구벌버스에서 운송원가를 아낀 비용과 이형문 기사의 사비로 지급되는, 대구 시내버스의 따뜻한 나눔의 모습이다. ⓒ 이준혁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기자단 기사입니다.

2007.08.31 15:43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 기획취재기자단 기사입니다.
#저상버스 #양심우산 #달구벌커피 #대구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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