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살림쿡스는 '내 책' 낼 수 있을까?

[기획리포트] '출판'을 향한 온라인의 꿈... 인디작가·소설가·만화작가까지

등록 2007.08.31 11:37수정 2007.08.3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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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때문학소녀 "야, 사실 나한텐 꿈이 있었다는 거 아냐. 꼭 시집 한 권 내고 싶었어."
살림쿡스 "네가 시를 써? 푸하하 누가 출판이나 해준다니?"

한창때문학소녀 "야, 너무 무시하지 마. 이래 봬도 중학교 때 학급문고 찍으면서 동네 문구점에서 내 시집 다섯 부 찍어서 필명 채린까지 찍어서 베프들에게 뿌렸다고."
살림쿡스 "푸하하~ 야 필명 채린? 야 진짜 간지럽다, 때려 쳐~"

한창때문학소녀 "넘 비웃지 마라. 너. 너도 블로그에 만날 시시껄렁한 요리 찍어서 올리면서 요리 쪽 출판 관계자의 덧글을 기다린다느니 그런 소리 하잖아"
살림쿡스 "그건 다르지"

한창때문학소녀 "다르긴 뭐가 달라?"
살림쿡스 "웹 2.0 시대라는 거 아냐. 공공저널리즘도 모르니? 이라크 전쟁 때도 외신보다 이라크 청년 살람팍스 블로그가 더 생생했잖아. 요리의 현장은 나 같은 살림꾼이 더 잘 아는 거야."
대한출판협회에서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6년도의 출판은 '다품종 소량생산'이었다고 한다.

2006년 신간도서는 4만5521종, 1억 1313만9627부가 발행되었는데, 2005년에 비해 발행 종수가 4.4% 늘어난 반면 발행부수는 5.5% 줄어든 수치다. 비록 경기침체 때문이었다는 분석이지만, 블로거 '살림쿡스'와 '한창때문학소녀'에게 '다품종 소량 출판'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인디라이터', 인터넷 소설가, 온라인 만화작가로서 각각 출판의 꿈을 이룬 세 사람의 모습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명로진] 더 많은 '인디라이터'가 '내 책'을 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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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라이터>를 쓴 명로진 작가 ⓒ 김홍주선

아마도 내 책 만들기는 더 이상 꿈만은 아닐 듯하다. 온라인에 다양한 공간이 생김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소통에 참여하고 있다. 글을 쟁여둘 수 있는 곳이 생기면서, 책을 출판할 기회도 늘어났다. 인디 음악가와 인디 영화감독만 있는 게 아니라 '인디라이터(Independent Writer)'도 생긴 세상이다.

배우로도 잘 알려진 명로진 작가가 지난 5월 출간한 <인디라이터> 역시 더 많은 작가를 위한 출판 입문서가 된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서점에 '더 잘 쓰기 위한' 문장론은 그득하지만, 실제로 내 책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은 드물었다. <인디라이터>는 소비자가 프로슈머로 변하는 시대, 더 많은 저자를 출판으로 이끄는 안내서다.

8월 4일 서울 동교동 집필실에서 명로진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첫 책을 출판할 때 원고를 작성해 20군데 출판사를 돌렸던 경험을 소개하며, 명씨는 글을 쓰기 위해 재능보다도 열정이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시집·에세이집·실용서·아동 청소년물 등 총 14권의 책을 써온 명씨는 최근에도 두 달여 취재 끝에 막바지 집필을 하고 있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여섯 시경 집필실에 와서 글을 쓰는 생활이다.

"인디라이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거요? 좌절의 일상화죠."

명로진 작가가 냈던 첫 책은 <감성 시집>, 출판사에서 가장 거절을 많이 당했던 책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말을 모은 잠언집 <세상에 꼭 하나뿐인 너를 위해>다. 열두 번 거절당했다고. 앞으로는 노후에 대한 책과 젊은 여성들에게 보내는 연애론에 대해 쓰고 싶다는 명로진 작가는, 젊은 세대에게 말한다. '비 인디펜던트 (Be independent!)!'

최근에는 '심산스쿨'에서 '인디라이터' 강의를 하고 있다. 2기까지 졸업했고, 3기 모집이 끝난 상태다. 48명 정원인데, '내 책을 내는 과정'을 알려준다는 강의에 현직 목사와 전문직 종사자, 미래의 작가와 만나고 싶다는 출판 관계자까지 다양한 직종, 연령대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책을 내면 경력이 쌓이기도 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얻기 전이나 휴직 기간에 '내 책 만들기'에 도전해보라고 말한다.

"인디라이터 강의 과정을 통해 꿈꾸는 건, 일종의 원고 마켓을 만드는 거예요. 아직까지는 출판사의 편집인이 작가를 일일이 만나는 주먹구구식이 많죠. 작가들도 콘텐츠는 있는데 어떻게 책으로 내야 할지 모르기도 하고요. 그동안의 수강자들 책을 모아 완전 제본 상태로 출판사에 연결 시켜주는 에이전시까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진] 내가 참여한 출판물... '한 페이지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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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페이지단편소설 사이트 운영자이자 장편소설 <웰컴투더언더그라운드>를 쓴 서진 작가 ⓒ SATA

소설가의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는 많아졌다. '한 페이지 단편소설(아래 '한단설', www.1pagestory.com)' 운영자이자, 장편소설 <웰컴 투더 언더그라운드>(2007 한겨레 문학상 수상)를 쓴 서진(33) 작가는 "의외로 소설 쓰기가 취미인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고 말한다. 잘난 척하는 것 같아 왠지 주변에 말하기는 어렵지만, 취미로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게 더 큰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한 페이지 단편소설'을 열었다.

8월 17일,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부산에 있는 서진 작가를 만났다.

서진 작가 자신도 문학과 무관한 전자공학을 공부하다가 박사 과정을 박차고 나와 소설에 뛰어든 경우다. 연구실에서 '해피레터'라는 이메일 회신 프로그램(리눅스 기반)을 제작해 운영하면서 다양한 글쓰기 장르를 실험하게 됐다. 그러다가 한 페이지 단편 소설을 쭉 써서 모은 <채리>를 출간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뭔가 한 페이지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2003년 사이트를 개설하게 되었다.

오프라인 출판물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저비용으로 원고를 받을 수 있고 서로 소통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블로그와 달랐던 점은 '소설'이라는 양식으로 '당선' 양식의 콘테스트를 거쳐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다양한 기회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소설 7947편, 종이책 9종, e-book 21권을 출간한 '한 페이지 단편소설'은 매년 베스트 작품을 선정해 책을 만들기도 한다. 올해부터는 원고지 80~130매 상당의 좀 더 긴 단편소설 콘테스트인 '픽션페스트'를 진행하고, 잡지를 발간할 계획이다.

"책을 어디서 사냐고요? 홈페이지에서 신청해서 사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핵심은 '참여'입니다. '좋은 책을 받아 읽겠다'보다는, '내가 참여한 출판물을 보겠다'는 마인드로 뭉친 곳입니다."

상업논리에는 맞지 않지만, '책을 팔아 책을 만드는' 경영난 속에서 꾸준한 작업을 진행해온 '한단설'. 이 곳에서 취미 말고 실제 프로 작가도 배출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서진 작가는 '아마도 제가 가장 큰 예가 아닐까요. 제가 한겨레 문학상에 투고한다는 건 가족에게도 밝히지 않은 비밀이었죠. 아무도 몰랐을 걸요'하고 웃는다.

작가의 낭독회 등 오프라인 모임도 함께 여는 '한단설'은 서진 작가의 든든한 '백그라운드'라고 한다. 다만 냉정한 출판 시장 속에 '한단설'이 어떤 활로를 개척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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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페이지단편소설 사이트 ⓒ 한페이지단편소설

[이화성] 만화가, 문턱은 낮아졌으되 성장이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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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꽃분엄마 파이팅>을 쓴 이화성 작가 ⓒ 이화성

만화가들의 사정은 어떨까. 만화 잡지가 거의 출간되지 않고, 일본 만화 위주의 단행본이 주류를 이루는 만화계에서 인터넷이나 포털은 얼핏 '만인에게 열린 기회'를 주는 듯이 보인다. 2005년 6개월간 <오마이뉴스>를 통해 주 3회 <꽃분 엄마 파이팅>을 연재했던 이화성(36) 작가도 이렇게 말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만화로 진입할 수 있고, 무명의 만화가들이 자신을 알릴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좋습니다."

8월 28일 망원동 작업실에서 만난 이화성 작가는 취미 삼아 온라인 만화에 진입했던 케이스는 아니다. 프로를 꿈꿔왔던 그는 중학교 때부터 스누피를 동경하고, 만화를 위해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만화 중에서도 서사보다는 압축적인 이미지가 강조되는 카툰이 그의 관심분야다. 한겨레 출판 만화학교 2기로 참여해 '오로지 만화를 바라보는 나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꿈을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순수창작만화를 하기에 한국 만화 시장은 수요도 부족하고, 작가를 길러주는 시스템도 약한 편이다. 순수 창작 만화의 경우, 현재 기존의 '문하생'(기존 작가의 보조로 들어가 작업을 배우는) 시스템도 사라진 상태이고, 개인의 노력으로 유명해진 일부의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알아서 크라'는 시스템 속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출판만화가 우선 뒷받침되어야 함에도, 정부 지원은 애니메이션 쪽에 많이 몰려 있다. 요즘 어린이용 서적들은 학습서 위주로 출판되는 경향이 있어, 그나마 기존 만화 시장도 힘든 추세다.

이화성 작가는 온라인을 통해 열린 듯한 만화 시장에도 우려를 표한다. 이런 상황에서 고료가 적어도, '일단 알리자'는 생각에 온라인에 연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현재 온라인 포털은 아주 짧게 짧게 치는 단편 위주이지, 호흡이 긴 장편을 하기에는 어려운 시스템이에요. 고료 문제도 큽니다. 큰 포털 사이트의 경우에도 연재료로 작가가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곤란한 상태입니다. 독자들이 인터넷에선 공짜로 보려고 하지 돈을 내지 않는 경향도 있고요. 만화 자체가 취미 수단으로, 처음 진입하기에는 쉽지만, 그 이후 성장은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스토리 만화보다 카툰을 꿈꾸는 그에게 시장은 더 좁다. 시사 잡지의 한 페이지 삽화로도 독창적이고 작품성 있는 카툰을 싣는 유럽 등지의 언론과 달리, 한국에서 카툰은 수요가 그다지 많지 않다. 이화성 작가의 우려대로라면, 더 많은 작가가 더 진지한 작업을 할 날은 아직은 먼 것 같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살림쿡스'와 '한창때문학소녀', '인디펜던트'한 정신을 가지고 자본의 논리에 굴하지 말고 '한 페이지씩' 쓰다 보면, '돈이 안 되더라도 일단 한 권' 출판할 기회가 올지어다.

한창때문학소녀 "그래 살림쿡스, 다품종 소량출판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겨. 내 시집 나오면 다섯 부만 사주렴."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기자단 기사입니다.

*'살림쿡스'와 '한창때문학소녀'의 대화는 가상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 기획취재기자단 기사입니다.

*'살림쿡스'와 '한창때문학소녀'의 대화는 가상임을 밝힙니다.
#명로진 #서진 #이화성 #인디라이터 #한페이지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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