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능력시험 "통과하나 마나"

시험점수와 실제 한국어 능력 비례하지 않아

등록 2007.12.07 08:45수정 2007.12.0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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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능력시험을 통과한 외국인은 정말 한국어를 잘 하는 것일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한국어능력시험(이하 TOPIK)은 연 2회 시행되며 외국인의 한국어 구사 능력을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시험이다.

그런데 이 TOPIK 시험 성적이 높게 나왔다고 한국어 구사 능력이 우수한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지난 3일부터 사흘간 서울 소재 3개 대학에 재학 중이면서 TOPIK에 도전한 경험이 있는 외국인 유학생 30명을 대상으로 "TOPIK 시험점수를 몇 % 신뢰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들중 평균 55%에 이르는 외국인들만 TOPIK을 신뢰한다고 응답, 한국어 능력시험에 대한 응시생들의 만족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학생들은 왜 한국어 능력시험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내놨을까? 우선 TOPIK의 평가 항목 중에 말하기 영역이 없어 실제 한국어 구사능력을 평가하는 척도로서는 부족하다는 것을 꼽았다.

시험 점수는 고급, 대화수준은 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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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K 점수가 한국어 능력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의문이다 ⓒ 김은주


서울 K대 언어교육원에 다니는 34세의 일본인 토모코(6급반) 씨는 25세의 중국인 왕초(6급반) 씨 보다 시험 평균 점수가 10점 가량 높다. 이 정도면 취업이나 진학에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토모코씨는 한국말로 의사소통이 힘든 상황이다. 반면 왕초씨는 점수는 토모코 씨에 비해 낮지만, 주위에서 중국인인줄 모를 정도로 한국어를 아주 잘 구사하고 있다. 즉 시험 점수 따로 실제 한국어 말하기 능력 따로인 셈이다.

등급 결정은 어학원 임의대로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외국 유학생들의 한국어 교육 기관인 어학원에서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학생들의 경우 한국어학원에서 정해주는 대로 TOPIK 시험 등급을 신청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어학원이 유학생의 입학과 시험 등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한국어 능력을 검증하지 않고 있다.

전문적인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강사가 임의적으로 반을 결정하는 대로 유학생이 한국어 능력시험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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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가 두 배 이상 차이나는 학생도 같은 반에 배정되어 공부한다. ⓒ 김은주


위 표에서 보듯 어학원에 다니는 27세의 중국인 채경 씨와 25세의 황결 씨는 모두 5급 고급반 학생이다. 이 반은 단체로 중급수준인 4급 시험을 신청했다. 채경 씨는 76.25점으로 안정적으로 합격했지만 황결 씨는 불합격했다. 황 씨는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지만 어학원에서 배정한 반을 기준으로 당연히 고급 수준의 시험에 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어학원에서 배정한 반과 한국어 능력 시험의 수준에 차이가 벌어지면서 유학생들만 혼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시험 점수보다 실제 회화능력을 중요하게 점검하는 한국어 시험 능력이 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다.

한 대학교 어학원 관계자는 "TOPIK 시험은 문법상의 정확성만을 고려해 채점하기 때문에, 실제 능력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면서 "말하기 평가 항목이 추가돼야 시험의 공신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실생활에 활용도 높은 내용의 문제 비중이 높아져야 하고 평가 항목별 간의 뚜렷한 구분도 요구된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그러나 한국어 능력시험(TOPIK)을 주관하는 평가원 측은 시험 내용 개선에 대해서 느긋한 입장이다.

평가원 한 관계자는 "제한된 시간 내에 한국어 능력을 평가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다"면서 "올해 시험은 끝난 상태고, 내년 회의에 개선사항은 논의해봐야 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지난 9월 시행된 제12회 TOPIK에 응시 신청한 인원은 중국인만 4만7551명. 또 교육인적자원부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한국어 능력시험 응시자는 총 8만 여 명에 이를 정도로 매년 응시 규모가 늘고 있는 추세다.

TOPIK 성적이 유학, 취업 등 외국인의 한국 생활에 꼭 필요한 자격증으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시험 내용과 한국어 교육과정의 현실화가 요구된다. 대학과 기업에서 한국어 소통 문제로 부적응하는 외국인의 양산은 결국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국가의 경쟁력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등 전문 교육기관은 물론이고 관계 부처도 한국어 능력 평가와 관련된 표준화한 등급 기준을 마련하고, 실용적인 한국어 교재 발간 등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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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K 이란? ⓒ 김은주


#한국어 능력시험 #TOPIK #어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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