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 읽는 소리를 좋아한다.
한밤중에
등불을 밝히고 무릎을 쳐서 박자를
맞추며 책을 읽노라면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
정조의 말이다. 공식적인 사서의 기록은 믿을 수 없는 면이 있다. 대개 좋은 내용만을 쓰기 때문이다. 더구나 제3자가 아니라 관련자가 기록을 남겼다면,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종과 정조가 학문에 관심이 많고,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했다고 해도 그것은 공식적인 이야기 일 수 있다. 위대한 인물에는 항상 좋은 미사여구가 따라붙기 마련이니 학문을 좋아하고 그 소양이 풍부했다는 말쯤은 붙을 만하다. 하지만 그들의 업적을 생각하면 허위는 아닐 것이다.
드라마는 대개 이면의 이야기를 그리려한다. 그래서 알려진 사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퓨전 사극이 아닐지라도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사극은 이제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드라마 <대왕세종>과 <이산-정조>를 보면 그들이 공부하는 모습이 도통 나오지 않는다.
드라마 <왕과 나>에서도 태평성군으로 평가받는 성종은 이미 책과는 담을 쌓은 모습을 보인다. 학문을 아예 안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관심사는 연애학이랄까. 다만, 그쪽 분야에는 소양이 없는 모양이다. 도통 신통치 않아 잘되지 않으므로 항상 고민하고 애달파 한다.
‘대왕세종’은 어린 시절 ‘대학연의’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그것도 제왕학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끝이다. 그리고는 계속 정치 한가운데서 전략을 짜는데 골몰하고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또한 드라마에서 이산(이성)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책보다 오히려 무술이다. 종합적인 능력을 지닌 왕으로 그리려는 심산이야 알 수 없지 없다. 하지만 정조라는 왕을 만든 것은 글읽기를 통한 인문학적 소양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들의 업적이 주로 인문학적 소양을 그것을 바탕으로 한 제도의 창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때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상상은 자유지만 그들의 학문세계는 무시할 수만은 없다.
<국조보감>이나 <세종실록>에 따르면, 충녕이 왕이 된 이유는 양녕대군보다 그가 지니고 있던 훨씬 높은 인문학적 소양과 식견 때문이다. 그를 선택한 태종이 마치 무인처럼 등장하지만, 그는 문과 급제자 출신이다. 단순히 골육상쟁을 통해 성장한 호걸만은 아니다.
<국조보감>을 보면 태종은 양녕에게 “학문이 너는 어찌해 충녕의 이만도 못하느냐?” 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해동야언>에 따르면 세종은 세자시절 한 권당 백번씩 읽었다고 한다. 또한 세종이 밤을 지새워 책을 보자 태종이 모든 책을 빼앗는데 한권만 지닐 수 있었고, 그것을 수백 번 보았다고 한다.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은 ‘학문이란 무궁한 것’이라고 말했고 항상 밤이 새도록 책을 읽었다. <국조보감> 세종 조를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나는 경사(經史)를 두루 읽어 보았다. 비록 지금은 늙어 다 기억할 수가 없지만 글 읽기를 그만두지 않는 것은 단지 살펴보는 사이에 얻는 것이 상당히 많고, 그것을 국정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글 읽는 것이 어찌 유익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정치나 국정에 치중해도 책은 놓지 않았다. ‘이산-정조’에서 세손은 중전과 편전에서 다투는 무도한 짓을 할뿐 아니라 학문을 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독서습관은 하루 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숙달되는 것이다. 정조도 어린 시절부터 안보는 책이 없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이산-정조’에서는 활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어떠한 역사적 사실의 왜곡보다 심한 이미지의 왜곡이다. 이미 빤한 스토리가 된 정조 암살설은 설이 아니라 진리가 되었다.
어디 책만 보는 것이 공부고 학문이겠는가. 차라리 정조의 말을 정확하게 숙독하고 있으면 다행일 것이다. 다음의 말을 고려했기에 책 읽는 거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학문이란 다만, 날마다 일상적으로 행동하는데 있다. 자기 자신의 경우에 행동하고 멈추고 말하고 침묵하는 것이다. 집안에서는 부모와 형 그리고 아내와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나라에서는 적임자에게 맡기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고, 책의 경우에는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다. 이같이 쉽고 가까운 것을 놔두고 다시 어디에다 힘을 쓴다는 말인가” -일득록(남현희 옮김)
2008.02.23 18:13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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