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즈 집안에 걸려있던 형제, 자매들의 결혼사진
김성국
가족 중 한 명이 이사라도 가면 몇날며칠 눈물로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본 결혼식 장면은 전통적인 결혼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네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하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결혼식이라는 행사가 완전 집안 식구들끼리의 잔치라는 것이다. 친구들보다는 형제자매·사촌들이 모여서 결혼식을 주관하고 진행해 나간다. 하나의 가족 잔치로 즐기는 듯한 모습이다. 부모 양측의 가족 구성원들이 결혼식에 모두 모이면 150명이 넘는다고 했다.
이들의 끈끈한 가족 연대감이 좋아 보이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개인적인 판단 하에 독립적인 삶을 살기에는 쉽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무슨 일을 하고 싶으면, 언제나 부모 형제의 의견을 먼저 물어야 하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니!'
부모님의 동의도 얻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은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세계를 여행한다는 걸, 이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빠져나오기 쉽지 않겠는 걸…, 설령 할 수 있다고 한들 엄청난 아픔이 따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예를 들어 가족 중에 한 명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면 다른 식구들은 몇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운다고 했다. 심지어는 역전이나 공항에서 울고 있는 이 가족들에게, 지나가던 행인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기라도 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게 되었냐며 함께 울고 슬퍼한다고 한다. 이란인들 뿐만 아니라 무슬림들에게 있어, 형제애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유별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혼식이 끝나면, 이 대가족은 모두 함께 밤을 지새우는 춤판을 벌인다. 그러고는 신랑 신부가 코란(이슬람의 경전)의 밑을 통과하는 의식을 마쳐야 결혼이 완성된다. 이란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 뿐 아니라 어디 먼 길을 떠날 때는 나그네의 안녕을 위해 이렇게 코란의 밑을 통과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 관례다.
해서 이곳 시라즈에는 코란이 들어있는 코란 게이트라는 건축물이 따로 있는데, 시라즈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차를 타고 이 게이트 밑을 지나게 되면 코란의 밑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밥 먹다 말고 흥겨운 춤판결혼식 테이프를 보고 있는데 이 집의 대장 격인 맏아들 알리가 돌아왔다. 35살의 회계사인 알리는, 한 눈에 보아도 이 집안의 대들보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아버지가 돌아오셨고 주변의 삼촌과 고모들까지 우리를 직접 보러 방문해 주셨다.
나타난 사람들은 온갖 궁금증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떠하더냐? 직업은 뭐냐? 정말 자전거를 타고 다니냐? 그런데 어떻게 그 많은 경비들을 감당하느냐? 나쁜 사람들을 만나진 않았느냐? 이란은 어떠냐?" 등등.
우리가 답을 하는 사이, 저녁 식사를 위해 거실의 카펫 위엔 방수천 같은 보자기가 펼쳐졌다. 우리의 '밥상'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는 보자기다.
모두 15명 정도의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했는데, 식사 도중 TV에서 이란 전통 음악이 나오자, 알리가 외동딸 사라에게 손짓을 했다. 사라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일어나 넓은 거실로 나간 후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고, 둘째언니의 두살 난 아들인 막내둥이 구로시도 아무것도 모른 채 흥이 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에 흥이 난 알리와 엘라즈까지 가세해 모두 밥을 먹다 말고 흥겨운 춤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춤사위는 마치 아주 다정한 일상의 한 부분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우리가 그동안 생각했던 원리주의 종교의 나라 이란의 이미지가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1979년 호메이니의 원리주의 이슬람 혁명 이후, 나라의 분위기가 많이 엄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만난 이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엄하지는 않았고, 사람들의 표정과 미소 속에서 '이들도 이들 나름대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