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현동은 일제시대 경성 제일 화류가였다.
조정래
2007년 일부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회현동'이 1위에 올랐다. 회현동 여관골목을 다룬 기사가 나왔기 때문이다. 여관골목에서 매춘을 한다는 내용이어서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노닐던 곳이었지만 근대화 이후 회현동의 역사는 다르다. 회현동은 주거지인 동시에
'초저녁이면 인력거꾼에 끌린 흰 얼굴의 게이샤들이 머리의 향내를 내뿜으며 언덕을 올라가던' 경성 제일의 화류였다.(<강홍빈의 도시문화탐사>)
이상의 소설 <날개>에도 미쓰비시 백화점에서 본 매음굴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동네가 회현동과 묵정동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미쓰비시 백화점 자리가 지금 신세계백화점으로 백화점과 회현동은 붙어 있다.
경제개발기 이후에는 여관골목을 통해 그 명맥을 이어갔다. 그렇게 된 것이 회현동 잘못은 아니었다. 어느 도시에나 욕망을 내뱉을 공간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그 공간은 기이하게도 돈과 사람이 모이는 지역 주변부였다.
회현동은 경제성장기 대한민국 경제를 대표한 남대문시장이 있는 곳이다. 일제시대에는 상업중심지였던 충무로와 명동이 인근에 있다. 몸 안에 독이 쌓이면 자연스레 종기가 나듯이 회현동은 그런 역할을 했다.
인근 소공동이 재개발되면서 밀려난 중국상인들도 회현동에 둥지를 틀었다. 남대문시장에 물건을 대기 위한 가내 하청업소들도 회현동에 자리를 잡았다.
회현동은 전국에서 사장님이 가장 많은 동네이기도 하다. 2000년 회현동의 사업체 수는 1만1144개로 서울 종로 1-4동, 광희동에 이어 세 번째. 1997년 조사에선 1만1464개로 전국에서 사업체가 가장 많았다.
회현동은 서울 시내에서 큰 쪽방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쪽방이란 0.6평-1평의 작은 방으로 남대문시장과 충무로 일대 일꾼들이 주로 회현동 쪽방촌 이용자다.
1999년 조사에서(서울시의회 이해식 의원) 서울시내 전체 쪽방 수는 4662개. 그 중 중구 회현동은 1745개로 전체의 37.4%를 차지했다.
지난해 6월 11일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통계청의 '2005년 인구 주택 총조사 자료'를 토대로 한 분석에 따르면 쪽방, 여인숙, 고시원 등에 사는 사람 비율이 회현동은 30%(803가구)로 명동 42%(488가구)에 이어 전국 2위를 기록했다.
1970년 지은 회현시범아파트, 철거될 날 기다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