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된다. 지금 안 사면 다 팔리고 없다"

쇼핑 즐기는 남편, 무소유 정신을 배웠으면

등록 2008.05.25 13:04수정 2008.07.2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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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쇼핑은 여자들의 전유물로 생각했다. 해서, 남자들은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쇼핑은 귀찮아하는 줄 알았다. 헌데 모든 남자들이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쇼핑을 즐기는 편이었다.


결혼하고 돈 관리를 남편이 했다. 처음에 시어머니가 돈 관리를 하겠다고 하셔서 '그것은 아니다' 싶었다. 해서 차선책으로 얼마간의 돈을 생활비로 받고 나머지는 남편이 돈을 관리한다는 것에 별 이의가 없었다. 그런데, 돈을 어디에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남편의 씀씀이가 조금 헤퍼 보였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나, 아니면 버스를 타면 되는 것도 남편은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

"버스 타면 되는데 뭐 하러 비싸게 택시 타노?"
"아, 택시기사도 밥 먹고 살아야제."
"아무튼 다음부터는 버스 타자."
"아이, 시끄럽다마. "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남편의 씀씀이가 어딜 갔을까, 앞으로는 저금을 넣었지만 뒤로는 마이너스 잔고가 늘어갔다. 살림을 하면서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줄어 있었다. 결혼한 지 2년 쯤 되었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살림은 내게로 넘어 왔다. 살림은 남편이나 아내 누구나 해도 상관이 없다. 요는 둘 중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알뜰한 사람이 하면 된다.

어디서 그렇게 아는 브랜드는 많은지, 하루는 모자를 사고 와서는

"이게 원래 얼마짜리 줄 아나, 6만원인데 만원 주고 샀다 아이가."
"이거 비슷한 모자 있잖아."
"그거 하고 색깔이 다르잖아."


내가 보기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이건만 싸게 사서 오히려 돈을 벌었다고 흐뭇해한다. 또, 뭔가를 사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면 전화가 온다.

"이거 사야 되는데, 돈 가지고 와라" "다음에 사자" "안 된다. 지금 안 사면 다 팔리고 없다" 하면서 당장 사고 싶어 어쩔 줄 모른다. "좀 아껴 쓰라"고 하면 "돈을 아껴 쓴다고 모이는 게 아인기라. 돈이 나인데 붙어 야지" 한다. 이건 또 무슨 궤변인지.


집에서 여기저기 채널을 돌린다. 여지없이 쇼핑채널을 틀면,

"여보, 여봐라. 저거 하나 사지?"
"별 필요 없는데"
"뭐가 필요 없노, 사노면 다 쓴다."
"안된다."

생활이 불편해서 무엇인가 필요해서 사는 경우보다 '견물생심'이라고 신문이나 매체, 각종 모임 등을 통해 사고 싶은 욕구는 배가 된다. 해서, 늘 살 것이 줄을 서 있는 것 같다.

친구얘기를 들으면 보통 남자들은 옷 하나 사 입히러 같이 쇼핑 가자고 해도 "괜찮다, 아직 입을 만하다"고 하면서 양복 한 번 사려면 힘들다고 한다. "울 남편은 5만원이 아침에 지갑에 있으면, 그날 별 일 없으면 그냥 그대로"라고 한다. 나는 그런 여문 남편을 둔 아내가 부럽다. 내 남편은 아침에 5만원이면 저녁에 없다. 오늘 주머니에 5만원이 있다면 이걸로 무엇을 살까? 궁리를 한다.

나의 이런 고민에 한 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맞벌이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그 언니, 잘 살아 보려고 옷 하나 제대로 사 입지 않고 알뜰히 사는데, 남편이 하도 질러 대는 통에 저축이 되지 않았다. 잔소리를 하다하다 그 언니 더 크게 백화점에 가서 질러 버렸다. 처음에 옷을 샀을 때는 "잘했어" 하더니, 몇 번 반복되자 백기를 들었다. "알았어, 나 아껴 쓸게. 그러니, 당신도 그만 질러" 하면서.

하하 듣는 순간 '나도 그럴까' 싶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나름 방법을 찾으러 하고 있다. 일전에 텔레비전을 보면서, 한 정신과 의사의 말에 의하면 쇼핑중독은 '관계'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소비자가 왕이라'고 했던가. 쇼핑을 하면서 '대접' 받으며 거기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거란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사랑으로 관계 속에서 존재감을 확인하고 행복을 찾으라고.

해서,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렸다. 함께 전시회를 가거나, 등산을 가거나, 야구장을 가거나, 서점을 가거나, 맛있는 식사를 한다. 그러면서 사랑도 확인하고 쇼핑에 눈을 돌릴 여유를 적게 준다.

쇼핑을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어떤 이는 쇼핑을 귀찮아하고 어떤 이는 쇼핑을 즐긴다. 남편은 쇼핑을 즐긴다. 가급적 가계에 부담을 주지 않고 즐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오프라인에서 현금으로 사용한다. 가급적 홈쇼핑이나 인터넷은 이용하지 않는다. 돈의 감각이 조금 부족해졌다 싶으면 만원이 아닌 천원이나 오천원 지폐를 이용한다. 가급적 적은 금액으로 쇼핑의 만족을 느낀다.

남편은 물건을 사는 것은 좋아하면서 버리는 것은 싫어한다. "버릴 물건이 어딨노, 놔두면 다 쓸 때가 있다"고 한다. 버리지는 않고 사기만 하니 집 안에 불필요한 물건이 가득이다. 버리거나 필요한 다른 이에게 주면 좋으련만 소유욕이 그걸 가로 막는다.

이 글을 쓰면서 법정 스님이 자꾸만 떠오른다. 가급적 불필요한 물건은 소유하지 않고 얼마 안 되는 물건들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필요로 하는 다른 이에게 나누어 주고, 최소한으로 간소히 사신다고 책에서 보았다. 물질에 매몰되지 않고 정신이 맑고 풍요로운 그 분이 존경스럽다. 현대 세속의 삶 속에서 그 분처럼은 안 되겠지만, 노력하면서는 살아야 되지 싶다.

덧붙이는 글 | <쇼핑중독>응모글


덧붙이는 글 <쇼핑중독>응모글
#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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