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3호선 타고 가는 올드타운 기행

원당역과 삼송역 사이의 정경(情景)

등록 2008.06.26 17:35수정 2008.07.0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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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 잘 심어진 논과 밭들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거 같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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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전철 원당역에서 삼송역 사이는 한 정거장이지만 많은 이야기가 있는 동네입니다.. 검은색 점선으로 표시한 길이 제가 추천하는 정겨운 길입니다. ⓒ 김종성




서울에서 경기도의 신도시인 일산과 분당을 오가는 3호선 전철역에는 좋은 곳들이 많습니다. 신도시가 있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모가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초록의 논밭과 흙내음나는 숲 길이 있는 동네가 아직도 건재하고 있어서입니다.

제가 발견한 그런 보석 같은 동네가 전철 원당역과 삼송역 사이에 있습니다. 전철역으로는 한 정거장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트렉킹 삼아 걸어 가기에 적당한 거리지요.

가까이에 고양시와 일산시의 신도시 아파트들이 포진해 있어서 이런 동네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이곳에 있었던 주말농장에 일 년에 회비 6만 원을 내고 가족들과 작은 텃밭을 가꾸었습니다. 다른 회원 가족들과 농장 주인 부부와 함께 철마다 채소와 과일도 키우고 기쁘게 먹었었습니다.

지금은 부근 은평 뉴타운 개발의 영향으로 그런 돈 안 되는 주말농장도 없어지고 추억이 서린 동네가 점차 사라지려 하고 있네요.

주민들이 편하게 잘살아 보자는 재개발에 이의는 없지만 풍광 좋은 이 동네에 삭막한 고층 아파트들은 제발 그만 지었으면 하는 요원한 기원을 해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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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산자락 아래 동네들이 뉴타운 개발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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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숲이 주는 초록옷을 두르고 있는 길가의 돌하르방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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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낮잠을 자고 있는 어느 집 마당의 그늘에서 쉬다가 할머니를 만나 사진을 찍어 드렸는데 아이처럼 부끄러워 하시네요. ⓒ 김종성



원당역에 내리면 이곳에도 예의 높은 아파트들이 병풍 같이 펼쳐져 있습니다. 1번이나 2번 출구로 나와 왼쪽을 보면 작은 길이 보이는데 배다래술 박물관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표지판이 안내하는 길입니다. 이 촌스런 작은 마을길이 원당역과 삼송역 사이 올드타운의 시작길입니다.

차들의 소음과 커다란 차도를 뒤로 하고 달리다 보면 갑자기 나타나는 푹신한 흙길과 길가에 핀 꽃들의 환영에 기분이 좋아지는 길이지요. 지금은 티가 안나지만 가을엔 밤나무가 무성하여 토실토실한 밤을 따러 오기도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키우는 텃밭들과 모내기를 한 논밭들, 야산의 숲들이 어우러져 저 뒤로 보이는 아파트들이 무척 생경하게 보입니다.

제 눈에는 불쌍하게만 보이는 젖소들이 큰 눈망울로 쳐다보는 축사들을 지나 계속 가다보니 왠 철책이 계속 둘리워진 녹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컨트리 클럽이라 불리는 골프장입니다.

지도상에서도 동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나무와 숲을 없애고 만든 엄청난 크기의 골프장이 그것도 두 개씩이나 동네의 명당을 차지하고 있으니 아깝기만 하네요. 

길가에는 TV에 나왔다는 무슨 보리밥집이니 장단콩이니 하는 식당과 가든도 종종 보입니다. 보기에도 탐스러운 버섯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들도 있고 작은 들꽃농원도 있고 다양합니다. 한가로운 식당에 들어가서 쉬고 계시는 아주머니께 부탁하여 자전거의 물통도 채우고 설탕 같이 느껴져 힘이 좀 나는 식당용 자판기 커피도 얻어 마시고 입장료가 없는 들꽃농원과 허브랜드에서 꽃구경도 실컷 합니다.

이런 소소한 풍경에 취해 서다 달리다를 반복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유명해진 서삼릉과 원당종마목장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곳에 갔다가 제 길로 돌아오려면 긴 오르막을 경험해야 하지만, 여기까지 오느라 땀을 많이 흘리고 지쳤더라도 꼭 한 번 들려봐야 하는 곳이지요. 서삼릉이나 종마목장은 그 유명세에 비해 상업화의 때를 덜 타 다행인 곳입니다. 다른 곳 같았으면 벌써 주변에 커다란 가든과 모텔들이 들어섰겠지요.

눈과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초록의 숲 사이로 나타나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한 차례 지나가면 꽃과 나무들이 많아 가을에 더욱 멋진 캠퍼스의 농협대학교가 나타납니다. 저도 농협대학교가 있다는 것을 이 동네를 지나다가 알게 되었지요. 학교 입구에 아름다운 야생화 공원도 가꾸어져 있고 인근 서삼릉까지 이어지는 학교 뒷산 산책길이 참 좋습니다. 

농협대학교에서 나와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로 계속 가면 오랜만에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를 만나게 되고 고양고등학교를 지나 곧 삼송역에 닿게 됩니다. 농협대까지 걸어서 오신분은 학교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삼송역까지 가기를 추천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농협대에서 삼송역까지의 길과 동네가 참 좋았는데 뉴타운 개발에 그만 동네가 사라지고 지금은 주민들이 떠난 허물어진 집들만 덩그러니 남았네요.

반나절 혹은 여유있게 한나절이면 닿을 수 있는 동네길이지만 길가의 소소한 풍경이 맘에 와닿는 곳입니다. 이웃동네인 전철 구파발역의 한양주택처럼 뉴타운 개발로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달려보고 혹은 걸어보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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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소가 사는 축사 앞을 지나는데 여름 날씨에 냄새도 나고 좁은 우리에 사는 소들도 무기력하게 보여서 참 불쌍했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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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담벼락 밑에 뜨락에 꽃들이 많이 피는 동네입니다.. 백일동안 피어난다고 하는 백일홍입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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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서삼릉과 함께 계절마다 산책하기 참 좋은 종마목장도 있습니다.. 다음달부터는 월요일, 화요일은 휴장이라고 하네요.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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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이 빠르고 무섭게 달릴 수 없는 소박하고 작은 길로 이어진 정겨운 동네입니다. ⓒ 김종성

덧붙이는 글 | 이 올드타운 길은 갈림길이 별로 없는 작은 길이지만 가다가 헷갈릴때는 동네 주민에게 물어보면 잘 알려줍니다.


덧붙이는 글 이 올드타운 길은 갈림길이 별로 없는 작은 길이지만 가다가 헷갈릴때는 동네 주민에게 물어보면 잘 알려줍니다.
#원당역 #삼송역 #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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