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간의 밤알바, 청혼까지 받았지만

[아르바이트의 추억] 밤낮이 뒤바뀐 두 달간의 '찜찔방 알바'

등록 2008.07.12 14:14수정 2008.07.1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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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 11일부터 두 달 가량 부산에서 찜질방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두 달간 근무했던 별장식 찜질방은 우리나라에 찜질방 붐이 막 일기 시작할 때 생긴 것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찜찔방은 초호화판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요즘 현대식 찜질방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별장식 찜찔방은 목욕탕이 없고 샤워시설만 갖추고 있었다. 황토방과 게르마늄방과 옥방인 중온방 정도가 있었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찜질방이었다.

당시엔 이 곳에도 손님들이 아주 많았으나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좋은 찜질방 시설들이 생겨나면서 고객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동네엔 유흥업소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모텔들이 많았다. 밤이면 화려하게 외향을 꾸민 모텔 불빛이 나이트클럽들과 함께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찜질방은 한가운데서 좀 비켜나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 곳의 사람들은 이름이 없었다

찜질방 사진.(자료 사진) ⓒ 이명화


나는 그 곳 별장식 찜질방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야간으로 2교대를 했는데 나는 밤 9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9시 30분까지 근무했다. 딴에는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을 찾다가 마땅한 것이 없어서 찜질방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으며, 낮 시간보다는 밤 시간이 주일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근무시간을 그렇게 정했다.

하루와 하루 사이에 고리가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야간 근무를 하고 아침 햇살이 퍼지기 시작할 때 찜질방을 나서면 눈이 부셨고, 밤새 잠 못 이룬 내 얼굴은 까칠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 때면 맨 뒷자리에 앉아 정신없이 졸았다.


주일이면 잠 못 이룬 채로 교회로 바로 향했는데 정신없이 졸아야 했다. 낮에는 억지로 잠을 자기 위해 애를 썼고 저녁이면 또 출근을 서둘렀다. 휴일은 한 달에 두 번, 어쩌다가 하루를 쉬고 나서 출근을 하면 근무를 시작하고 한동안 일에 탄력이 붙지 않고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지내야 했다.

출근을 하면 먼저 낮 근무를 했던 아가씨와 교대를 했다. 근무일지를 점검하고 또 돈 계산을 하고 난 다음에 본격적으로 근무에 돌입하는데, 크게 힘든 일은 없었다. 근무교대를 하고 나면 찜질방 안에 보일러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부터 시작해 몇 가지 확인하고 한 바퀴 돌아본 다음, 카운터 자리로 왔다.


그 곳에서는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단지 락커 키의 번호로 불리울 뿐이었다. 그 번호 또한 내가 건네주는 키 번호로 불리는 것이었다. 여긴 번호로 통하는 곳이고 익명의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가 익명으로 사라지는 간이역과 같은 곳이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았다. 단지 상상만 할 뿐이다.

나는 고객들이 오면 옷과 키를 건네주고 귀중품을 보관해 주었으며, 근무일지를 기록하고 그들이 나갈 땐 계산을 하는 등 간단한 일들을 했다. 밤늦은 시간에 이 곳 찜질방을 찾는 사람들은 남자들이 많았고 취객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새벽녘엔 찜질방 온도가 적당한지 보일러실에 가서 조절을 하기도 하고 밤을 꼬박 새고 이른 아침이면, 간판불과 외등과 네온·방갈로의 전등을 전부 소등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불을 챙겨 넣고 정리를 하고, 돈 계산을 해놓고 또 아침에 출근한 낮 근무자와 교대를 했다. 그리고 저녁에 다시 출근을 하면 이 곳에 고정적으로 눌러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맞닥뜨려야 했다.

[찜질방 고정멤버들] 슬픈 사람들, 사연도 많아

몇 달 혹은 1년도 넘게 아예 단골고객으로 여기서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모두가 사연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루 일과를 밖에서 보내고 들어온 사람도 있고 하루 온종일 찜질방에서 뒹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매일 저녁 보는 그 얼굴들은 저녁이면 TV 앞에서 연속극을 보며 흥분을 하고 욕을 하기도 하고 혀를 차기도 했다.

토요일에는 사극 '무인시대'를 보느라 TV 앞에 앉아 있었고, 평일에는 수목드라마 '천국의 계단'을 보며 거기에 푹 빠져 있기도 했다.  '천국의 계단'을 보면서 그들은 "가시나, 저 바보 아니가" "아, 멋있다. 세상에 저런 멋진 남자가 있을까" "빨리 가게 냅둬, 가시나야, 빨리 가야 돈을 받아오지!" 하면서 드라마 중간 중간에 효과음을 넣었다. 자기들이 하는 짓이 우스운지 갑자기 한바탕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137번 임씨는 동그랗게 누워 TV를 보고 있고, 마사지 여자는 임씨의 야윈 다리를 베고 누워서 있었으며, 그 앞에는 주민등록증도 없는 입이 거친 여자가 흥분해서 연방 거친 욕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리얼하게 TV 시청을 하고 있었다. 마치 하나의 드라마가 아니라 드라마 자체가 실제 상황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은 울고 웃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가 가슴 아픈 사연들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두 달 가량 근무하면서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났다. 어떤 고객은 "어디 갔다 왔느냐"면서 오늘 두 번째로 나를 본다며 슬며시 손을 내 손 위에 올려놓기도 했으며, 장기적으로 묵고 있던 '귀걸이'(귀걸이를 하고 있어서 귀걸이라 불렀다) 남자는 성깔을 부리고 고함을 치면서 시비를 걸어오기도 했다.

가끔 '귀걸이'를 찾아오던 온 몸에 문신을 한 남자는 카운터에 다가와 "귀걸이가 애를 먹이거든 연락하이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전화번호 몇 번이요?" 물어 나는 못 알아들은 것처럼 "찜질방 전화번호는 저기 간판에 붙어 있어요"하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무안한 듯 찜질방 간판을 찾는 시늉을 하며 머리를 만지다가 밖으로 나갔다.

거기에 근무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의 일이었다.

오십대 중반은 넘었을 것 같은 찜질방 고정 멤버 중의 한 아저씨가 막 출근한 나를 향해 "세끼 밥 먹여 줄 테니까, 내가 필요한 데 없소?"하고 말을 건네 왔다. 나는 갑작스런 질문에 "무슨 뜻이에요?" 하고 물었다. "러시아 말을 했나? 말을 못 알아듣네, 통역자가 필요한데!" 하고 그가 말했다.

처음엔 "짝지 있소?"라고 물었던 것 같다. "예, 있어요. 애들도 있는 걸요" 라고 했더니 마사지실 여자와 눈길을 주고받더니 다시 말했다. "그야 물론 애들도 있겠지, 남편이 있냐는 거지?"

나는 '주말 부부'라고 시침 뚝 떼고 말했다. 그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여자 고생 안 시키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사랑한다"며 손을 가슴에 얹는 시늉까지 하면서  말했다.

"내가 우리 마누라한테도 얼마나 잘해 줬는데, 손톱 깎아주고, 손톱 소지까지 다 해줬다. 손톱 소지는 있지, 약간 삼각형으로 밀어주면 이쁘거든."

그러자 옆에 있던 마사지 여자가 말했다. "그런데 왜 여기 와 있어요?!" 그러자 그는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면서 "이리 됐다 아이요. 내가 그렇게 잘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요렇게(다시 목을 치는 시늉을 하면서) 됐는지 연구하기 위해 여기 왔다 아이요" 하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마사지실 여자가 "마음고생 많았겠어요" 하고 말하자 그의 눈가에 잠시 이슬이 맺히는 듯했다.

[취객①] '그래, 술 취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찜질방에서 얼마 동안 근무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취객들을 상대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근무한 지 2주 정도 지나서였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참 황당한 일을 당했다. 가끔 술에 대취해 오는 고객들 때문에 긴장하고 있을 때가 있었는데 이 날 또한 그랬다. 술 취한 사람들을 거의 상대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 일을 하면서 다양한 취객들을 만나 황당한 일을 많이 당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자기 절제에 능한 사람이 있지만, 조금만 술을 마셔도 주위를 소란하게 하거나 이상행동을 하는 등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다. 술 취한 사람들이 갑자기 어떤 돌출행위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자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날은 어떤 중년 남자는 초저녁부터 대취해 들어와서는 횡설수설하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아가야, 아가야"하며 나를 부르는 시늉을 했다.

어이가 없어서 못 들은 척 하고 있으니까, 몇 번을 부르던 중년남자는 "아니 이 ×× 같은 년은…"하며 욕을 했다. 참아야 하나 가서 따져야 하나, 가슴 속에 불이 나는 듯했다. 처음 이 곳에 출근할 때 주인 할머니가 했던 말을 기억났다. 별의별 사람들 다 온다고, 잘 넘기라고. '그래 참자, 술 취한 인간은 그 순간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나는 마치 욕설조차도 듣지 못했다는 듯이 행동했다. 다시 두어 번 더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야~아가야, 여기 맥주 2개" 나는 안색을 고치고 "예"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허연 머리털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 초점 풀린 눈이었다. 나는 냉장고 열쇠를 열고 맥주 캔을 건넸다.

대취해 황당한 행동을 했던 그는 다음날 아침엔 정색을 하고 "아줌마"라고 불렀다. 전혀 딴 사람 같았다. 그는 아마 간밤의 일을 기억도 못할 것이다.

[취객②] 10만원짜리 수표를 100만원짜리라 우기다니 

술이란 게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힘든 밤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늦은 시각, 또다른 취객이 들어왔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카운터로 나온 중년남자는 지갑을 통채로 맡기는 것도 아니고 지갑에서 수표 세 장을 꺼내며 맡아 달라고 했다. 그의 눈은 풀려있고 만취상태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십만원짜리 자기앞수표 석 장이네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귀중품 보관함에 넣고는 "키를 금고에 맡겨놓겠습니까, 아니면 손님이 가지고 가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눈이 풀린 모습으로 건들거리며 그는 카운터에서 맡아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하는 말, "120만원이지요?" 하는 것이었다. 10만원짜리 수표 석장을 맡기면서 하나는 100만원짜리라고 우기는 것이었다. "아가씨 계산하고 내 계산하고 틀리네요"하면서 돈을 빤히 두 눈으로 쳐다보면서도 100만원짜리 한 장 있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술 취한 사람과 계속 실랑이를 벌일 수는 없고, 100만원 수표를 줬다는 사람의 돈을 맡아놓을 수도 없었다. "손님이 돈을 빤히 쳐다보면서도 100만원이 있다고 하시니 전 이 돈을 맡아놓을 수가 없습니다, 손님이 잘 보관하세요"라고 말하며 돈을 다시 돌려주었다. 그는 다시 카운터 위에 돈을 툭 던지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다시 남자 탈의실을 들여다보며(잘 없는 일이다) 손님 돈을 어떻게 할 건지 물었지만 정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끝까지 우기는데 기가 막혔다. 돈을 던지며 바닥에 누워버리는 그 사람의 가슴팍 위에 돈을 던지듯 탁 놓으며 알아서 하라고 하고, 나는 급기야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무슨 이런 황당한 일이 다 있냐."

여자 탈의실에서 키 큰 여자가 나왔다. 나는 여자한테 돈 30만원을 확인시키며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술 취한 사람이니까 그래도 맡아 놔야 한다고 여자가 말해서 나는 다시 귀중품 보관함에 맡아놓았다. 그는 깊이 잠이 들었다. 혹시 자다가 일어나서 또 엉뚱한 소리를 하지는 않아야 할 텐데~ 내심 걱정이 되었다. 새벽 2시였다. 그 취객의 황당한 행동만 없었다면 지극히 평화롭고 고요한 새벽이었다. 한밤의 소요도 잦아들고 새벽 2~3시 정도 되면 좀 한가해져서 잠깐 엎드려 졸기도 했는데 이날 새벽엔 잠도 오지 않았다.

12시간을 꼬박 잠들지 않고 버티기란 힘든일이다.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에 나는 카운터에 앉아 깊이 졸았다. 오전 8시 30분이 넘은 시각, 깨어 일어난 사람들이 물 마시는 소리, TV 소리, 샤워실에서 씻는 소리, 그리고 아직도 잠자는 사람들의 희미한 숨소리, 또 하루가 어둠 속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그날 저녁엔 출근하지 않았다. 모처럼 찾아온 휴일이었다. 다음 날 저녁 출근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그저께 돈을 120만원을 맡겼다고 우겼던 손님이 찾아와서는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만취해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점잖은 모습이었다. 그가 오기 전 주인 할머니 말에 따르면 내가 그날 아침 퇴근하고 난 뒤 한참 뒤에 깨어 일어나 돈을 맡겼는지 안 맡겼는지도 모르고 밖으로 나가더라고 했다.

신발을 꿰신고 나가려는 손님을 불러서 "손님 귀중품 맡겨놓으신 것 없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더라고 했다. 귀중품 함에서 수표 세장을 꺼내 보이자 그제서야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지갑에 분명히 100만원 수표는 한 장 있는데 10만원 수표 한 장이 없어서 의아했다"고 하더란다. 그런데 석 장이라니, 공짜로 돈을 얻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내게 사과하기 위해 이틀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기다렸노라고 했다.

사연 많던 사람들은 아직도 거기 있을까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2개월 정도하고 나니 나는 더 야위고 까칠해졌다. 그리고 낮에 아무리 잠을 자도 피곤했고, 아무래 피곤해도 낮에는 깊이, 오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두 달 동안 찜질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또 사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아픈 사연들을 들으며 인간에 대한 연민과 슬픔을 느꼈다. 또한 취객들로 인해 황당한 사건을 겪기도 했다. 그 때 찜질방에서 머물고 있던 사연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거기 있을까. 아마도 또 다른 곳으로 흩어져 또 다른 삶을 꾸려 가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흥미 있는 한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생물체에게 잠과 먹을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라는 제목의 한 일간신문 기사였다. 쥐에게 충분한 먹이와 환경을 제공하고 잠을 못 자게 하는 경우와, 잠은 충분히 재웠지만 먹이를 전혀 주지 않는 경우를 나누고 각각의 쥐의 행동을 관찰했는데 잠을 재우지 않은 쥐는 굶긴 쥐보다 앞서 명확한 이유 없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먹는 것보다 잠을 자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두 달 동안의 밤과 낮이 뒤바뀐 찜찔방 아르바이트 생활이 여러 모로 불편했던 나는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사는 것이 힘겨울 때는/ 가끔은 쉬어가는 법도 배우리/ 마른 땅에 떨어진 눈물/ 금방 말라버려 흔적 없지만/ 젖은 땅에선/ 고인 눈물도 흐르게 되지/ 억센 바람이 뿌리 채 흔들고/ 좀 먹는 나무처럼/ 잎사귀 시들어가도/ 온 힘을 모으면/ 언제든지 새잎이 나겠지/ 말라버린 눈물은 빗물이 되고/ 고인 눈물은 거름이 되어/ 더 풍성한 잎사귀를 갖겠지/ 사는 것이 힘겨울 때는/ 가끔은 가끔은/ 하늘을 보는 것도 배우며/ 쉬면서 가리 쉬면서 가리….' -신혜림의 시, <사노라면>

덧붙이는 글 | '아르바이트, 그 달콤 쌉싸래한 기억 응모'


덧붙이는 글 '아르바이트, 그 달콤 쌉싸래한 기억 응모'
#찜질방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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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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