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판, 즉 건설현장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통계를 살펴보면 잘 나타난다. 한국산업안전관리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4분기에 산업재해 보상보험법 적용사업장 1,407,569개소에 종사하는 근로자 1294만4059명 중에서 4일 이상 요양을 요하는 재해자가 2만2343명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 중에서 사망은 636명, 부상은 1만9450명, 업무상 질병이환 2257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재해자수는 2066명이 늘어 10.2%가 증가한 반면, 사망자수는 지난해 대비 3명이 줄어 0.5%가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제조업(8827명 재해, 148명 사망)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재해자를 낸 산업인 건설업은 1/4분기에 제조업의 반도 안 되는 4236명의 재해자를 냈지만, 사망자수는 190명이나 돼 산업재해 중에서 가장 위험한 산업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통계 이외에도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막노동판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일인지 단적으로 말해 주는 글이 있어 인용해본다. 다음 글은 막노동 알바에 대해 물어보는 한 대학생의 질문에 대해 아이디 wowotmd01님이 답글을 올린 내용이다.
노가다는 정말 비추천 해드리고 싶은데요, 얼마나 장기적으로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돈도 많이 줍니다. 얼만큼 힘든 일들을 많이 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차원이 다를 겁니다. 운도 작용하겠지만 군대를 갔다 오시지 않으시고서는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 겁니다. 평소 웬만큼 운동하시고 체력이 좋으시지 않으시다면 그 다음날은 자리에서 일어나시기 힘들 겁니다. 이왕하시는 것이면 하루하루 일해서 돈 받는 것보다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단위로 급여를 받는 것이 돈을 벌기에 더욱 좋고요, 웬만하면 다른 아르바이트들을 추천해드릴께요. 노가다보다 시급은 약해도 쉬지 않고 꾸준히 일하시는 것이 훨씬 돈 많이 버는 것 같습니다. 노가다는 비오면 일 안 하고, 힘들어서 못가고 시간 늦어서 못가고 이러다보면 초보자는 돈 모으기 힘든 편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통계나 답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떠한 사고가 발생해 재해를 당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건설현장에서 여행경비와 수업료를 마련하기 위한 목숨을 건 나의 아르바이트가 시작된 것이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다
새벽 5시. 평소에는 꿈나라를 허우적거리고 있는 시간이었지만 난생 처음 막노동을 하러 나가는 뜻깊은(?) 날이어서 그런지 일찍 눈이 떠졌다. 그리고 6시 전까지 집에서 도보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인력개발사무소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다른 날과는 달리 부지런을 떨었다.
'20일 동안만 죽었다고 생각하자. 20일이다.'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이며 결심하고 또 결심했다.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생애 첫 막노동일을 하기 위해 인력사무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좁디 좁은 사무실 통로를 지나 사무실에 접수를 하기 위해 들어갔다. 인력사무소는 누가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누가 먼저 왔는지가 중요했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 일자리를 찾아 나가기 때문이다. 심지어 늦게 온 사람은 일이 없어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있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인력사무소에는 빨리 일자리를 잡기 위해 한바탕 치열한 전쟁을 치른다. 여기에서는 어른이고 젊은이고 없다. 막노동이든 잡일이든 간에 재빨리 일을 잡아서 나가는 게 우선이었다.
일단 사무실에 들어가 접수를 마치고 사무실 한켠에 마련돼 있는 대기소로 향했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대기하면 좋으련만 무슨 용기로 그랬는지 혼자서 인력사무소를 찾아간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손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자 나를 부른 용역 직원이 물어본다.
"등짐이나 벽돌 지어본 적 있어요? 덩치가 작은데?"
"없는데요. 그런데 한번 해볼게요."
"안 해 본 사람은 힘들텐데요. 아무래도 경험자가 좋겠네요. 누구 해본 사람?"
"저요. 어제도 했는데요"하면서 햇볕에 그을려 검게 탄 얼굴을 한 근육질의 아저씨가 손을 들며 앞으로 나왔다.
"이 아저씨가 낫겠네요. 수고하세요."
"……."
용역 직원이 자리를 떠나자 인력사무소 직원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안 간 게 잘 한 거예요. 일은 또 있으니까 기다려봐요. 저 일 한 번 하면 아마 학생은 내일부터는 일 못할 걸?"
왠지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지만 인력사무소 직원의 말을 들어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아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되지 않아 또다른 용역 직원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6명 필요해요. 6명 보내줘요."
"무슨 일인데요?"
"공사 현장 잡일이에요. 별루 힘든 일은 아니에요."
바로 다음 순서였던 난 내 뒤로 접수한 5명의 사람들과 함께 인력사무소를 떠나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이날은 아무래도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에다 치열했던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막노동 일터만큼 사람냄새 묻어나는 곳은 없다
선택을 받은 난 용역회사 직원의 봉고차에 실려 공사현장으로 이동했다. 약 30여분을 이동해 도착한 현장은 한 관공서에서 발주한 노인회관 건축공사 현장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현장에는 이미 착공 초기부터 공사를 진행해 온 사람들로 보이는 인부들이 보였다. 그 중에서 감독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 무리로 다가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을 지시했다.
난 한 아저씨와 함께 샷보드와 판넬을 옮기는 일을 부여받았다. 한장 한장 지정한 곳에 차곡차곡 쌓으면서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은 뭐하다 여기까지 왔슈?"
"학교 댕기는 학생인디유."
"학생이 공부나 할 것이지 왜 이리 험한 일을 하냐?"
"수업료에 보태려구유. 제 용돈도 좀 쓰고."
"생각은 가상하다만 이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알어? 쉬운 일도 있을 것인디."
"있긴 한데유 보수가 적어서유. 그래도 이건 힘들어두 돈은 많이 주잖어유."
"그렇긴한데…. 암튼 다치지 않도록 조심혀. 다치면 약값도 안나오니께."
"예. 근디 못이 왜 이리 많대유?"
"막 거푸집 뜯어서 그려. 그 못도 다 줍고 박힌 못도 다 빼야 된댜."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곳 막노동터에서 일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서로의 안전을 걱정해 주는 등 사람 사는 냄새가 묻어나왔다.
막노동의 진정한 맛은 땀 냄새 밴 담배 한 가치와 막걸리 한잔
날씨가 무더운 탓도 있긴 했지만 힘든 일을 하며 숨이 턱 막히고 흘린 땀방울이 목젖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을 무렵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리들 오셔. 새참 먹고 합시다."
새벽부터 일을 해서 그런지 힘들고 허기가 올라오고 있을 무렵에 들은 말이라 그런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가웠다. 말이 떨어지자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인부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새참이 차려진 곳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게 보이는 국수가 준비되어 있었다. 얼음이 동동 떠다는 얼음국수가 말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갈증을 달래줄 막걸리도 함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잔씩 해요. 갈증 확 풀릴테니께."
"그려. 학생도 한 잔 혀."
"예. 그렇잖아도 목말랐었는데 시원하네요."
새참으로 먹은 시원한 얼음국수와 막걸리는 인부들의 허기와 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새참을 먹고 난 뒤 일을 하기 전에 담배를 피우기 위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 한 가치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는데 평소에 피우던 담배와 그 맛이 달랐다. 아마도 땀냄새가 담배에 배어 그런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수없이 담배를 피웠지만 그처럼 맛있는 담배는 평생에 처음이었다. 지금은 비록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그 당시의 담배맛이 얼마나 좋았는지 지금도 생각나는 듯하다.
못을 밟아 입은 부상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다
꿀맛 같은 새참으로 인해 다시 기력을 찾은 인부들은 다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오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와 아저씨가 맡았던 일이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그 때 다시 현장감독관이 다가와서는 다른 일을 지시했다.
"아저씨는 현장 경험이 많다니까 목수 일 좀 도와주고, 학생은 점심 먹고 부터는 장도리 들고 다니면서 못도 줍고 나무에 박혀있는 못 빼는 일을 좀 해야 되겄어."
오전 일이 끝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인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점심을 먹는 사이 현장감독관은 날이 뜨거우니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라며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점심식사가 끝나자 인부들은 스티로폼이나 박스 등을 주워들고는 각자 그늘을 찾아서 누울 곳을 찾아 자리를 깔았다. 일이 힘든 데다 막걸리도 한 잔 한 터여서 눕자마자 잠도 잘 쏟아졌다.
한숨 늘어지게 잠으로 휴식을 취한 후 오후 일이 시작되었다. 난 이제 다른 사람들보다는 힘이 덜 드는 못 빼는 일을 맡아 하게 돼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못을 빼기 시작했다. 그 때 무엇인가 뾰족한 것이 발바닥에 쑤욱하고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앗! 못에 찔렸어요."
이제 조금 있으면 일이 마무리될 시간인데 운이 없게도 못에 찔리는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어쩌다 그래. 일 다 끝나가는데. 얼른 신발 벗어봐. 못에 찔리면 얼른 응급치료라도 해야 지 덧 안나."
신발을 벗자 벌써 피가 양말을 다 적시고 있었다.
"피 나면 괜찮은겨. 피 안나는 게 문제지. 다행히 (못이) 얼마 안 들어갔네."
"그래요? 덧 안나게 약이나 좀 발라주세요."
한 아저씨의 도움으로 응급처치를 받고 현장사무소에서 나오자 인부들이 마지막 일을 정리하고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아침에 우리 일행을 이곳 현장으로 인솔해 온 용역직원이 올 시간이 되었다. 아직까지 일당을 받지 못한 터라 다시 인력사무소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일당을 받기 위해서는 다시 인력사무소로 복귀해야 했고, 그곳에서 일당을 받으면서 인력사무소에 수수료를 떼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었다. 이윽고 우리를 태우러 용역직원이 도착했고 다시 인력사무소로 가서 일당을 받고 다친 다리를 절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20일 동안 죽은 듯이 일만 하자고 결심했는데, 첫날부터 다리를 다쳤으니 어쩐다? 치료비가 더 나오게 생겼으니 원! 여행이고 뭐고 다 끝났군.'
다행히 치료비는 얼마 나오지 않아 한숨을 돌리긴 했지만 막노동 일터에서 못에 찔려 세워놓았던 모든 방학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내가 막노동 일터에 나가 일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단 하루의 경험이었지만 그날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되고 있으며, 비록 힘들긴 했지만 그 일터에서 사람냄새 묻어나는 사람 살아가는 인생을 배우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