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아끼는 빨간 자전거 잃어버린 날

자물쇠 채우지 않아도 자전거 없어지지 않는 날이 올까?

등록 2008.07.16 18:39수정 2008.07.1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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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자전거를 아내는 끔찍이도 아꼈다. 그 자전거는 지난봄에 두 대를 연거푸 잃어버린 후, 아내가 새로 구입한 자전거였다. 근처에서 시장 볼 일이 아니면 웬만해서 자전거를 사용치 않던 아내였지만, 그 빨간 자전거가 들어오고부터는 버스를 마다하고 40분이나 걸리는 직장까지 타고 다녔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 있던 자전거들은 엄연히 아이들 소유였다. 이제 다 큰 두 딸아이가 자전거를 거의 타지 않으니 아내가 가끔씩 사용하곤 했지만, 며칠 사이에 두 대를 고스란히 잃어버리고는 처음으로 자기 소유 자전거를 당당하게 장만한 것이었다.

빨간색 자전거를 끔찍이도 아끼던 아내

아내는 자전거 관리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두 대를 연거푸 잃어버린 충격이 크기도 했고, 디자인이 특이한데다가 색깔마저 마음에 들었는지, 처음 그 자전거를 새로 들여왔을 땐, 아이들 원성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아예 집안 베란다에 들여놓고 살았다. 자전거를 베란다에 들여 놓으려면 번쩍 들어 거실을 통과해야 하는 고초가 따랐지만, 약 한 달 정도 아내는 그 불편을 감내했다.   

아무리 끔찍이 아끼는 자전거라도 한 달이 지나니 불편을 감당해낼 인내심이 아내에게서 사라졌던 것 같다. 아니면 자전거에 대한 사랑이 처음보다는 조금 시들해졌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그 때부터 1층 현관의 계단 난간에 자전거를 채워놨는데, 그래도 잠 잘 때까지 몇 번이고 1층에 내려가 확인하곤 했다.

얼마간 아무 이상이 없자 이윽고 그런 버릇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항상 거기 있는 자전거를 하릴 없이 내려가 확인하는 것도 지겨워진 것이다.


그런데 그 빨간 자전거가 오늘 아침 감쪽같이 사라졌다. 새벽에 공원엘 나가 운동하고 들어오던 내 눈에 하필이면 텅 빈 그 자리가 눈에 뜨인 것이다. 평소 자전거 쪽엔 눈길조차 주지 않던 내가 그날따라 거길 쳐다본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퇴근 무렵에 비 내리는 날이면 아내는 자전거를 직장에 둔 채, 버스를 타고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집에 들어온 나는 아침을 차리느라 부산한 아내에게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어제 저녁에 비가 쏟아졌는데도 아침부터 왜 이리 더워?"

그랬더니 아내가 기가 막힌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어제 저녁에 무슨 비가 내렸다고 그래요? 이이가 아침부터 더윌 먹었남?"
"비 안 왔던가? 근데 당신 어제 자전거 왜 안타고 왔어?"

국을 뜨던 아내가 별 싱거운 소릴 다 듣겠다는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 계단 옆에 매 놨잖아요. 웬일로 내 자전거에 신경을 다 쓰고 그래요?"
"올라오면서 보니까 자전거 없던데?"

내 그 한마디에 국그릇을 쏟을 뻔한 아내가 황급히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뭔가 낌새가 좋지 못한 것을 느낀 나도 따라서 나가보니, 자전거 사라진 계단 난간 앞에 우두커니 걸려있는 사슬만을 노려보며 아내가 몸을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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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자전거가 있어야 할 자리 밤새 자전거는 사라지고 사슬만 덩그러니 남았다. ⓒ 우광환


"도대체 어떤 놈들이 자꾸만 자전거를 가져가는 거야. 그까짓 자전거, 옛날처럼 비싼 것도 아니고…."

없어진 자전거로 인해 아파트 현관이 어수선해지자, 옆 통로의 젊은 아주머니가 달려와서는 사태를 알아차리더니 혀를 찼다.

"어머머! 여기 자전거를 가져갔네. 글쎄, 우리아이 자전거를 가져가려다가 채워진 사슬을 풀 수 없으니까 심통이 났던지 펑크를 내버렸지 뭐예요?"

그 소리를 듣고 아내는 자책과 후회가 뒤범벅이 된 얼굴에 거의 울 것 같은 눈으로 말했다.

"어제 저녁 퇴근하다가 시장을 봐와서는 집에 갖다 놓고 내려와 채워놓는다는 것이 잊어버리고 그만…."

뒤이어 모여든 아주머니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에이그, 웬만한 사슬은 채워놔도 끊고 가져가는데, 안 채워놨으면 그냥 가져가라는 거 밖에 안 되죠."
"우리 아이도 자전거 몇 대나 잃어버렸는지 몰라요. 이젠 아예 사줄 생각도 못해요. 도대체 몇 개월을 넘기질 못하니."
"엊그제는 경비아저씨도 오토바이(스쿠터)를 또 잃어버렸다고 펄펄 뛰더구먼."

단 한 번의 실수로 영영 잃어버린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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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난 옆집 자전거 '자전거 도둑'은 애초에 이 자전거를 가져가려다가 뜻대로 안 되자 펑크를 내버렸다. ⓒ 우광환


'자전거 도둑' 하면 지금도 잊히지 않는 가슴 아픈 영화가 생각난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이태리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안토니오'는 정말 먹고살기 위해 자전거를 훔치려다 잡혀 뭇매를 얻어맞는다. 그 장면은 다시 생각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로 처절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전거를 잃어버린 안토니오가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내의 자전거를 훔쳐간 사람도 그 정도 절박한 심정으로 가져갔기를 바라려고 애써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이지 않은 그 생각에 피식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아내 말로는 아마도 아이들 짓일 것이라 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 자전거는 웬만한 신발값보다도 값이 나가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단 한번 실수로 채워놓지 못한 자전거가 그렇게 허무하게 없어지고 나니, 아내는 무척 속상한 모양인지 아침도 안 먹고 출근해버렸다. 아내가 집을 나서기 전에, '내가 한번 이 근처에서 찾아볼게, 빨강 색이라 눈에 금방 뜨일 거야'라며 위로해도 아내는 머리를 흔들었다.

"어떤 놈인지 차라리 그걸 가져가서 잘이나 타 주면 고맙겠네요. 분명 타고 갔다가 어딘가에 버릴 게 뻔하다구요. 도대체 무슨 심보냔 말이야."

씁쓸했다. 외국처럼 자전거 등록제를 실시해서 고유번호를 달자고 주장하고 싶어도 맥이 풀린다. 고유번호를 달고 있는 스쿠터도 수시로 잃어버리게 되니 말이다. 무슨 근거로 그러는지 아내는 거의 아이들 짓이라고 단정한다. 아무려면 어른들이 그까짓 자전거나 작은 스쿠터를 훔쳐가겠느냐는 것이다.

잃어버린 자전거 때문에 얼굴에서 찬바람 휭휭 날리는 아내가 집을 나설 때, 다녀오시라는 인사도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마디 던졌다.

"공부 아무리 잘해서 좋은 대학 나와야 다 쓸데없어. 먼저 사람교육을 제대로 받아야지. 애나 어른이나!"

뜬금없이 불똥을 뒤집어 쓴 아이들이 엄마가 나가고 나자 서로 자기에게 한 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며, 나 역시 출근을 서둘렀다. 하지만 잃어버린 아내의 빨간 자전거로 인해 당분간 편치 않을 나날을 보낼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아내가 자전거를 또 산다면 그 자전거는 다시 베란다 안으로 들어갈 확률이 높아졌다. 자신의 건망증 때문에 자물쇠도 소용없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베란다에 다시 두게 된다면 이번엔 들고 내는 담당을 내가 맡게 될 가능성이 크기에 영 불안하다.

아내가 자전거를 잠그지 않아도 없어지지 않는 날은 언제나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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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 방지용 튼튼한 자물쇠 건망증 심한 아내가 자전거를 다시 산다해도 자물쇠는 소용없을 것 같다. ⓒ 우광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선샤인 뉴스>에도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선샤인 뉴스>에도 실립니다.
#잃어버린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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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장편소설 (족장 세르멕, 상, 하 전 두권, 새움출판사)의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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