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입학한 학교서 졸업할 수 있길 바랄 뿐"

[더불어 함께 입학식 그후] '팀블로그'에서 꽃피는 대화

등록 2008.08.02 13:39수정 2008.08.2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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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함께 입학생들의 팀블로그에 얘기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 김당


전국에서 모인 '나홀로 입학생'들이 '더불어 함께 입학식'(7월 20~22일)을 마치고 돌아간 지 10일이 되었다. 그간 마지막날 강화 오마이스쿨에서 가입 및 운영 매뉴얼을 익힌 '팀블로그'(http://blog.ohmynews.com/chingu/)에는 사연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나홀로 입학생'을 인솔해온 몇몇 교사와 학부모들은 정식으로 후기를 써서 팀블로그에 올렸고, 아직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도 짤막한 인사말을 올렸다. 2박3일 동안 아이들과 함께 한 선생님들도 답글을 달았다.

"즐거운 추억 오래 이어지도록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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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선생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예은이와 일수(맨오른쪽). ⓒ 김당


먼저 김일수(김천 부항초교) 학생의 보호자로 참여한 이일호 교사는 '오아시스'라는 닉네임으로 22일 팀블로그 수업을 받는 중에 1착으로 "즐거운 추억이 오래 이어지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인사말을 올렸다.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제주도는 빠졌네용)에서 온 나홀로 1학년에게 지역감정이란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아이들이라 서로에게 호기심을 갖고 더 빨리 친해진 것 같습니다. 전국 곳곳에 내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요? 3일 동안의 짧은 만남이 오랜 우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당분간은 좀 도와줘야겠지요. 열심히 찍으신 사진 올려서 함께 보고 웃었으면 합니다."

'나홀로 입학생' 인솔자 중에서 유일한 미성년자로 동생 정시온(여수 소라남분교)을 데리고 참여한 중1년생 정경수 보호자도 팀블로그 수업 중에 '라임'이라는 닉네임으로 "이런 뜻깊은 행사에 참여하게 해준 오마이뉴스에게도 감사의 표현을 전하고 싶다"며 이렇게 제법 어른스런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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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시온이를 데리고 참가한 정경수 학생(중1, 가운데 뒷줄)은 이번 입학식에 참가한 유일한 미성년 보호자이다. ⓒ 김당


"처음엔 어른들이라서 너무 어려워했고, 긴장했지만 어른들께서 너무 잘해 주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넘 행복하게 2박3일 일정을 끝냈다. 그리고 입학생 아이들도 너무 잘해주고 해서 자연스레 친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모든 입학생들의 소망과 꿈이 모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정경수 학생은 함께 일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여동생 시온이를 데리고 와 보호자 역할을 거뜬히 해냈다. 한때는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에 다니기 싫다고 시내로 전학시켜 달라고 떼를 썼지만 <오마이뉴스>에 기사화된 후 SBS에도 방영되는 등 '동네 스타'가 된 시온이는 2박3일 동안 엄마와 떨어져서도 오빠를 찾지 않고 밝게 지냈다.

"모든 일 뒤로하고 참석해준 아빠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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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량아끼리 서로 통했나? 입학생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큰 한이(왼쪽)와 재응이는 만나자마자 단짝이 되었다. ⓒ 김당


22일 밤부터는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의 글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멀리 강원도에서 온 신재응(고성 흘리분교)과 함께 덩치가 가장 큰 입학생인 최한(파주 군내초교)은 "아쉽고 짧은 2박3일의 너무 신나고 재미있는 더불어 입학식이었다"며 1학년답지 않은 의젓한 글을 올렸다.

"처음 하루는 친구들과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같이 잠을 자면서 친해질 수 있었고 집에 도착해서는 친구들과 헤어져 너무 아쉬워 차에서 내리지 않고 한참 생각하다 내렸다. 처음으로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었고, 갯벌체험에서 게를 잡고 놀던 그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친구들과 다시 만나고 싶다. 또한 나 때문에 모든 일을 뒤로하고 함께 참석해준 우리 아빠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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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내의 유일한 나홀로 입학생인 한이는 남산 N타워에 갔을 때도 아빠와 함께 신의주 쪽을 망원경으로 바라보면 관심을 보였다. ⓒ 김당


담임 박수호 교사는 한이에 대해 "덩치도 크지만 엄마가 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서 그런지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 학력수준도 높은 편이다"고 귀띔했었는데 그게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한이가 다니는 통일촌 군내초교는 올해 '홀로 입학생'이 다니는 민통선(民統線, 민간인통제선) 안의 유일한 초등학교다. 그래서인지 한이는 한강물이 바다와 섞이는 김포와 강화도 사이를 흐르는 염하(鹽河) 너머로 북녘땅이 보이는 강화도 연미정(燕尾亭)에 가서도 "우리집에서는 북한이 더 가깝다"며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이도 남산 N타워에 갔을 때는 아빠와 함께 신의주 쪽을 망원경으로 바라보면서 관심을 보였다.

강바다(울진 월송초교) 학생의 보호자로 참가한 김은희 교사는 "이번 일로 다시 한 번 함께 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면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장애인과 함께 하는 일도 해보고 싶네요"라고 썼다.

김은희 선생은 28일에도 "시원한 바닷물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같이 했던 선생님들과 우리 어린이들이 생각이 난다"면서 "또 다시 보고 싶어진다"고 안부 인사를 남겼다.

"아이들이 '혼자가 아니다'란 생각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한편 박지은(고흥 우도분교) 학생을 인솔한 박점숙 교사는 '더불어 함께 입학식' 하루 전부터 태풍 때문에 지은이를 걱정하는 애틋한 심경을 담은 글을 올렸다. 우도분교의 분교장(分敎長)으로 자신의 블로그(http://blog.daum.net/fuiiggot)에 '교단일기'를 연재하고 있는 박 교사는 셋째날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후기를 올렸다(박 교사의 후기는 별도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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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숙 교사가 글쓰기 수업에서 칭찬을 받은 지은이의 발표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 김당


"내일 아침 8시 고속버스를 예매해 놓았기 때문에 일찍 잠을 자야하는데도 지은이는 서울구경과 새롭게 만날 친구들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 다고 하였다. 허긴 잠이 오지 않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어제부터 올라오고 있는 태풍 '갈매기'도 걱정이 되었다. 지은이가 서울에 가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태풍이 방해하지 말아야 할 텐데…."

박 교사는 "조그마한 섬에서 친구도 없이 외롭게 지내는 지은이가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 참석하여 예진이, 은아, 시온이, 혜진이, 하늘이, 미정이, 미령이 등 많은 친구들을 사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담임 교사사로서는 줄 수 없었던 행복감을 지은이에게 주신 오마이뉴스 관계자 여러분이 정말 고맙다"고 별도의 인사말을 블로그에 남겼다.

박 교사는 "아이들이 커 가면서 오늘의 뜻깊은 날을 기억하고 언제나 '난 혼자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면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하나의 길로 통하는 우리의 인연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덧붙였다.

"서울구경도, 또래 친구 만나기도 처음인 수정이"

김수정(청원 도원분교) 학생을 데리고 온 이정민 교사도 출발 전 아이의 설레는 심경부터 아쉬운 마지막 날까지, 세 차례에 걸쳐 후기를 올렸다(이 교사의 후기도 별도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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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문 글쓰기 시간에 수정이가 쓴 글을 디카에 담는 이민정 교사. ⓒ 김당



"7월 20일.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아침 일찍 수정이 어머님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한번 보고, 내 얼굴 한번 보고, 버스 안 사람들 모습 보고…. 수정이는 정신이 없었다.

"수정아, 캠프활동 어떨 것 같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수줍게 웃으며 수정이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서울구경도 처음이고, 캠프활동도 처음이고, 또래의 많은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처음이고…. 모든 것이 처음인 수정이. 이번 2박 3일간의 캠프활동이 수정이에게 많은 것들을 느끼고 뜻 깊은 추억의 시간이 되길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글을 잘 쓰는 선생님으로부터 평소 글쓰기 지도를 받은 덕분인지 지은이와 수정이는 2박3일 동안의 체험학습을 정리하는 글쓰기 수업시간에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받았다.

이 때문인지 우리나라 국토의 최남단 가거도에서 온 문지오 학생의 엄마는 박점숙 교사에게 글쓰기 지도 비결을 열심히 청취했다.

맞춤법 완벽한 수정이 "앞으로 인터넷으로 만나자"

또 이정민 교사는 자랑스런 수정이가 쓴 소감문을 디카에 담는데 열중했다. 수정이가 쓴 소감문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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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이가 쓴 소감문. 처음 사귄 또래 친구들의 얼굴도 그렸다. ⓒ 김당

"서울 가서 궁궐도 가고 많이 봐서 재밌었다. 근데 비가 많이 왔다. 어제는 갯벌을 갔다. 게를 많이 잡았다. 재밌었다. 구멍을 팠는데 게가 조금 있었다. 그래도 팠다. 게가 너무 빨랐다. 물이 차가웠다. 나중에 오빠랑도 가고 싶었다.

저녁에는 고인돌 봤았다. 보니까 무너질 것 같았다. 밤에 학교에 와서 잤는데 재밌었다.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자니까 엄마도 보고 싶었다. 이번 캠프 활동은 재밌었다. 앞으로 이런 캠프 활동을 더 가고 싶다. 친구들 만나서 재밌었는데 혜진이랑 많이 친해졌다. 문의초등학교 도원분교장 1학년 2반 김수정."

초등학교 1학년생이 쓴 글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맞춤법이 완벽했다('봤았다'라고 쓴 단 한군데만 틀렸다). 수정이는 이 글 아래에 '고인돌'과 '나', '은순이', '혜진이' 얼굴을 그렸다.

이민정 교사는 후기에 "짧은 기간이지만 또래의 친구가 생겨 그 친구를 그리는 수정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이번 캠프활동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고 썼다.

이정민 선생님을 꼭 닮은 수정이도 '함께 이야기해요'라는 제목으로 "안녕? 나는 문의초등학교 도원 분교장 김수정이야. 우리 같이 캠프 활동해서 재밌었어. 앞으로 인터넷으로 만나자"라고 짧은 인사말을 블로그에 남겼다.

이정민 교사는 수정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친구들과의 추억을 담아주려는 듯 다른 어떤 보호자보다도 디카 촬영에 열심이었다. 이 교사는 둘째날 후기에서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학부모·교사 간담회에서 한 아버지가 한 말을 떠올리며 "한 명 한명의 학생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맘속 깊이 생각하면서 그렇게 둘째날을 떠나보냈다"고 썼다.

그 아버지의 말은 이랬다.

"저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저희 아이가 입학한 학교에서 졸업할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나홀로입학생 #더불어입학식 #팀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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