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유럽에선 자전거 부대가 활약했다

[서평] 자전거 200년 역사를 1000컷 사진에 담은 <자전거의 역사>

등록 2008.08.13 16:23수정 2008.08.1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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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최초의 페니-파싱 대회. 페니는 큰 동전, 파싱은 작은 동전을 뜻하는 말로 앞바퀴가 큰 '하이휠' 자전거를 뜻하는 말. ⓒ 예담


1800년대 초 이미 자전거 택배 서비스가 있었으니...

1790년 자전거가 처음 역사 무대에 나타났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이듬해였다. 비록 핸들은 고정돼 있고, 페달도 없어 두 발로 바퀴를 굴리며 달려야 했지만 사람들은 열광했다. 이 초창기 자전거를 사람들은 '셀레리페르' 또는 '셀레리피드'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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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년 자전거 역사를 담은 책 <자전거의 역사> ⓒ 예담

움직이는 핸들이 달린 자전거(드라이지네)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28년이나 더 지난 1818년이었다. 페달이 나타나는 데는 그로부터 한참 더 시간이 걸렸다.
43년 뒤인 1861년 프랑스 마차 수리공인 피에르 미쇼(Pierre Michaux)에 의해서였다. 지금처럼 다이아몬드형 몸체가 나오기까지는 다시 24년이 흘러야했다. 1885년 존 캠프 스탈리(John Kemp Starley)가 만든 로버(Rover)가 지금 자전거의 원형이다.

1888년 공기 타이어를 붙인 타이어가 선을 보였고, 1890년 마침내 바이시클(Bicycle)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핸들, 페달, 공기타이어가 달린 자전거가 나오는데 무려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이 100년간의 흔적을 살펴보는 일은 경이롭다. 올해 초 이탈리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멕시코 등 일곱 개 나라에서 한꺼번에 나온 <자전거의 역사>(예담 펴냄)는 218년 자전거 역사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꼼꼼하게 정리한 1000여컷의 사진 덕분이다(사진이 등장한 것이 1826년경이기 때문에 자전거 사진은 19세기 말부터 본격 등장한다).

귀족들만 즐기던 비싼 탈 것, 우아한 옷을 입은 귀부인들이 두 발을 땅을 박차며 달리던 자전거 교습소, 너무 높아서 몸통에 달린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했던 앞바퀴가 큰 자전거(오디너리) 등은 너무나 오랜 시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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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투어에 참가한 선수들. 카타르 대회는 카타르의 주요 도시와 알 주바라와 같은 역사 장소를 지난다. ⓒ 예담.


하지만 19세기 초반 사람들은 이미 셀레리페르를 타고 택배서비스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가정방문 배달 업무를 시작했고, 초고속사나이 찰스 머피(Charles Murphy)는 1899년 슈빈 자전거를 타고 롱아일랜드 철로를 따라 달리며 시속 96킬로미터라는 기록을 세웠다.


1818년 9월 이탈리아는 드라이지네를 비롯한 탈 것이 보행자를 다치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밤에 다니지 못하게 했다. 최고속도 20km의 고속(?) 자전거를 선보인 커크패트릭 맥밀런은 1842년 6월 어린 소년 하나를 치는 교통사고를 낸 뒤 자전거 개발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11~1817년 영국에선 기계파괴운동이 벌어지던 시절이니, 사람들은 자전거에 대해서도 기대와 두려움이 섞인 눈길을 보냈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자전거의 진보는 계속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1차세계대전은 자전거 기술에 큰 기여를 했다.


친환경 탈 것, 한때 전쟁무기로 각광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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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세계대전때 유럽 각 나라는 자전거를 전쟁에 이용했다. ⓒ 예담


영국군은 1887년 자전거 부대 자원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실험을 실시했다. 1892년 프랑스군은 모노휠(외바퀴) 자전거를 군용장비로서 가능성 테스트를 했고, 이탈리아군은 1909년 비앙키사에 접이식 자전거를 납품하라고 지시를 했다. 독일 경보병대 예거는 모든 대대에 자전거 사단을 배치했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뒤 자전거 사단의 수는 80배로 늘어났다.

비앙키사는 제1차세계대전(1914-1918)이 일어나기 전인 1909년 이미 접이식 자전거를 납품했고, 1915년에는 앞뒤 완충장치가 달린 '듀얼 서스펜션' 자전거를 선보였다. 1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군은 산악작전을 위해 베르살리에리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가방, 배낭, 라이플 총 훌더를 다 싣고서도 무게는 30kg 정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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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열린 자전거 대회 벨타 아 에스파냐. 16번째 구간은 알메리아를 지나갔다. 이곳은 영화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의 이탈리아판 서부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다. ⓒ 김대홍


자전거를 친환경 교통수단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서운할지 모르지만, 100여 년 전 자전거는 훌륭한 전쟁 무기였다. 군인들은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작전지로 움직였고, 무기를 실어 날랐다. 각종 전보를 전달하는 데 쓰였고, 공수부대가 자전거를 짊어 멘 상태로 하늘에서 몸을 던지기도 했다. 심지어 소방장비를 단 자전거까지 있었다.

연료 공급의 부담이 없고, 폭발하거나 화재가 날 위험성이 없으며 쉽게 고칠 수 있는 자전거는 전투지휘관들의 입맛에 맞았다.

<자전거의 역사> 속 사진을 통해 본 자전거는 이색적이지만 한편으론 씁쓸하다. 칼을 요리사가 쓰면 손님의 입을 행복하게 하지만, 강도가 들면 생명을 빼앗는다. '자전거가 무조건 옳다'는 전제는 적어도 이들 흑백사진 속에서 부정된다.

초창기 100년 동안 일어난 혁신에 비하면 이후 100여년 동안의 발전은 개량이라고 부를 만하다. 1885년 스탈리가 만든 자전거 모습은 지금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고, 점점 가벼워지고 튼튼해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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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전통을 지닌 자전거 대회는 여러 오르막을 지나야 한다. 오르막과 추위를 이겨야 하는 그 구간은 보는 사람에겐 그림이지만 선수에겐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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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속도를 높이기 위한 사람들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영국의 그래임 오브리는 1996년 '슈퍼맨 자세'라고 불리는 이 자세로 한 시간 기록을 세웠다. ⓒ 김대홍


기술의 발전을 메운 것은 사람이다. 20세기 이후 <자전거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위대한 자전거 챔피언들이다.

1951년 북아프리카인으로는 처음으로 투르 드 프랑스를 완주한 프랑스계 알제리 선수인 압델 카데르 자프, 1956년 지로 디탈리아에서 엄청난 눈보라 속을 달리다 저체온증으로 쓰러진 샤를리 골, 1960-1970년대 맹활약하며 우승 횟수 426회로 세계 주요 자전거 대회를 모두 휩쓴 '식인종' 에디 메르크스, 1993년 낡은 세탁기 부품으로 만든 자전거를 타고 출전해 한시간 기록을 세운 그래임 오브리, '산악왕'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다 2004년 34살 나이로 요절한 마르코 판타니, 2004년 그리고 투르 드 프랑스 7연패에 빛나는 랜스 암스트롱은 사진 속에서 뛰쳐나올 듯 생생하다.

책 엮은이는 챔피언들의 역사 속에 자전거 회사의 역사를 끼워 넣었다. 세계 부품 시장을 석권한 1921년 일본 시마노사 설립, 1962년 고급 미니벨로 시대를 연 알렉스 몰튼 자전거 출시, 1983년 산악자전거 역사를 연 게리 피셔 자전거의 등장, 1994년 피나렐로가 만든 6.5킬로그램에 카본 소재의 에스파다 모델 등을 사진을 통해 보다보면 장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자전거는 교통, 관련 설명 빠진 게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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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튼튼한 대나무도 자전거 몸통 재료로 쓰인다. ⓒ 예담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 말보다 낫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증명한다.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200여년 자전거 역사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절반을 차지하는 글에 대해서는 아쉬운 감이 남는다. 글이 너무 딱딱하다. 200여 년 역사 동안 사람과 회사에 얽힌 뒷얘기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형제가 자전거 가게를 했다는 것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아닌가. 랜스 암스트롱과 라이벌 마르코 판타니의 불화는 또 어떻고.

보충 설명이 아예 없는 것도 아쉽다. 미쇼형 자전거가 왜 벨로시페드라고 불렸는지, 마르코 판타니의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게 무엇인지, 크리티컬 매스(어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최소한의 규모, 떼거리 자전거 행진을 뜻함)라는 게 무슨 뜻인지 본문에선 설명이 없다.

'식인종'은 에디 메르크스의 별명인데, 코스탄테 지라르덴고라는 선수를 설명할 때도 '식인종'이라는 별명이 단 한 차례 나온다.(P263) 오타가 아니라면 "에디 메르크스처럼 '식인종'이라는 별명을 가진 코스탄테는"이라고 했다면 이해가 쉬웠을 것이다. 콜롬비아의 미겔 인두라인(P254)은 오타다. 스페인의 미겔 인두라인이라고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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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자전거. 접이식이다.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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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자전거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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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접이식 자전거 ⓒ 예담


자전거 역사 약력이 없었다는 것도 아쉽다. 뒷부분에 시대별로 정리가 돼 있었다면 두고두고 찾아보기 좋았을 것이다.

이 지적은 어디까지나 이 귀한 책에 대한 투정이다. 책 한 권에 담아내기엔 자전거의 역사는 너무나 찬란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교통으로서 자전거의 역사, 세계 유명 자전거 도시들, 책에선 소홀하게 다뤄진 미니벨로를 다룬 책이 2권으로 나오길 기대한다.

한편 투르 드 프랑스 1회, 지로 디탈리아 3회, 세계 사이클 선수권 대회 1회 우승을 한 펠리체 지몬디와 소설가 김훈이 추천사를 썼다.

덧붙이는 글 | 2008년 7월 22일 출간. 정가 8만원.


덧붙이는 글 2008년 7월 22일 출간. 정가 8만원.

자전거의 역사 - 두 바퀴에 실린 신화와 열정

프란체스코 바로니 지음, 문희경 옮김, 펠리체 지몬디 추천사, 이용우 감수,
예담, 2008


#자전거 #자전거의역사 #셀레리페르 #드라이지네 #바이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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