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래? 나 이래봬도 병장 출신이여~

[차별의 기억] 죽마고우들만 만나면 나오는 좌충우돌 군대 이야기

등록 2008.11.24 15:20수정 2008.12.0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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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한 곳에서, 또는 이미 예견된 곳에서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키가 작느니 몸무게가 많이 나가느니 하는 신체적인 이유로,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병역을 이행했는지 아니면 현역인지, 방위인지, 상근인지 등 별의별 사유로 인해 차별을 받거나 차별을 하게 된다.

 

나 같은 경우도 키가 작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적도 있고, 학력이 낮다기 보다 출신 학교가 지방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군 재직시 출신 학교를 보고 계원을 선발하면서 차별을 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내 추억 속에서 '차별'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지금부터 같은 시기에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같이 하며 추억을 쌓았고, 이제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들어선 죽마고우들의 웃음 폭탄 터지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친구들과 사심 없이 나눈 이야기로, 전혀 비방할 의도 없이 재미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것임을 먼저 밝히고 시작하려 한다.

 

죽마고우들 만나면 군대이야기... "총은 본겨?" 비아냥도

 

어린 시절부터 같은 고향에서 자란 죽마고우 9명이 결성한 '계(契)'가 하나 있다. 친구들은 이 계를 결성한 이후 1년에 4~5번 정도 만난다.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쌓았던 고향이 행정중심복합도시에 포함되면서 사라져 모임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고향이 사라지기 전에는 명절만 되어도 친구들을 만나기가 쉬웠는데 고향이 사라진 지금은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친구들은 모임날짜만 잡히면 회사 근무를 바꾸어서라도 시간을 내서 꼭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보통 모임은 중간 장소인 대전에서 이루어지며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눌 겸 저녁시간에 맞춘다.

 

시간과 장소가 정해지고 모임 날짜가 되면 친구들이 모임장소로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두세 명만 모이면 그때부터 곧바로 농담과 함께 안부를 묻는다.

 

"야, 병특(병역특례-특례업체에서 일하면서 군복무를 대체하는 제도)! 잘 지낸겨?"
"고럼, 상근(상근예비역-현역생활을 하다가 상병 진급 즈음 고향지역 경찰서 등에서 예전 방위와 같이 출퇴근하면서 현역과 같은 기간만큼 군복무를 하는 제도)은 어떻게 지냈는감?"
"나야 뭐, 고향 지키느라 여념이 없지."
"그려? 근디 다른 애들은 왜 이리 안오남?"

 

먼저 도착한 친구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한두 명씩 속속 모임장소에 도착한다.

 

"야, 잘들 있었냐? 쫄따구들이 먼저 와 있었네."

"쫄따구라니? 이거 왜이래? 이래봬도 나 병장 출신이여~ 같은 병장끼리 왜 이랴?"

"같은 병장이라니? 난 현역 꽉 채우고 나왔고, 넌 현역도 아니고 방위도 아니잖여."

"그래도 임마! 나두 꽉 채우긴 했어."

 

자주 모이는 모임은 아니지만 모임의 시작은 항상 이랬다. 말투로만 봐서는 빈정 상할만 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모두가 이런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음꽃이 피기 일쑤다.

 

어느덧 친구들이 다 모이고 짧은 회의가 시작된다. 보통 회의는 회계결산과 다음 모임 전까지 있을 친구, 친구가족 등과 관련된 결혼식, 회갑 등의 행사 공지를 위주로 회의가 진행된다. 짧은 회의가 끝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된다.

 

한잔, 두잔… 술 자리가 무르익을 무렵이 되면 다시 등장하는 화두가 군생활 이야기다. 친구들의 군생활 이야기를 잠시 소개하자면 이렇다.

 

"내가 군대 입대했을 때는 겨울이었는데 진짜 추웠다. 그것도 철책부대라서 훈련받을 때는 이것저것 다 껴입고 했지. 한번은 사격하는데 동기 한명이 총에 혓바닥이 붙어서 엄청 웃은 적도 있는데, 암튼 정말 추웠던 기억이 나네."

"넌 (훈련소) 4주밖에 안받고 나와서 얘기 들어보믄 현역 군생활 한 애들보다 추억이 더 많냐 잉?"

"그러니께. 쟤는 어찌된 게 군생활은 혼자 다 했어. 근디 너 총은 쏴 보긴 했냐? 아니 총은 본겨?"

"고럼, 보긴 봤지. 쏴보지는 않았지만…."

 

총은 쏴봤느니, 수류탄은 던져봤느니, 같은 내무반에 고문관이 있는데 그 고문관과 관련된 에피소드, 자면서 행군을 해봤냐는 등 정상적으로 군생활을 하지 않은 두 친구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농담을 넘어 친구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이런 농담을 주고 받는 동안 한쪽에서 웃음을 지으며 쳐다보고 있는 친구가 있다. 바로 그 유명한 해병대 병장 출신 친구다. 이 친구는 성격 탓도 있겠지만 자신의 군생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친구들의 추측은 '아! 저놈이 진짜루 군생활 힘들게 했구나' 아니면 '흔히말하는 FM식으로 군생활을 해서 추억거리가 별로 없구나'하고 생각을 한다.

 

상황은 나도 마찬가지다. 병 생활을 해보지 않은 터라 끼어들기도 뭐하고 혹여나 대화에 끼어들어 한 마디 한다면 최전방 철책 생활시에 있었던 에피소드 몇 가지를 들려주곤 하지만, 짧게 군 생활한 두 친구가 워낙 앞다투어 군생활이 이렇다 저렇다 떠드는 바람에 금방 묻히곤 한다.

 

그 때문에 현역 출신 친구들은 병특이나 상근 출신 친구들에게 "저 봐라! 제대로 군생활 한 놈은 가만히 있잖여. 꼭 짧게 갔다 온 놈들이 제일 말 많어"라며 윽박(?)지르기도 한다.

 

군대갔다 온 걸로 차별? 그래도 우리는 영원한 친구여

 

군대 어디갔다 왔건, 계급이 무엇이었던, 학교를 어디까지 다녔건, 돈이 많건 적건 간에 '죽마고우'라는 하나의 특별한 인연으로 묶여진 친구들은 항상 비슷한 패턴으로 모임이 흘러가지만 누구하나 빈정상해하고 따지는 친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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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고우(竹馬故友) 죽마고우 9명중 4명만 나와있네요. 애석하게도 9명이 다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네요. 다음 모임때는 꼭 9명이 다 모여 사진을 찍어야겠어요. 누가 병특, 상근인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깁니다. ⓒ 김동이

▲ 죽마고우(竹馬故友) 죽마고우 9명중 4명만 나와있네요. 애석하게도 9명이 다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네요. 다음 모임때는 꼭 9명이 다 모여 사진을 찍어야겠어요. 누가 병특, 상근인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깁니다. ⓒ 김동이

특별한 인연으로 엮어진 친구들 사이에서는 차별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친구들이 한 자리에 같이 한 모임장소에서 만큼은 모두가 동등한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점이다.

 

30년 세월을 넘게 같이 자라고 보아 온 '죽마고우' 친구 9명은 비록 한 자리에 모이면 차별 아닌 차별을 하면서 농담도 주고받고, 때로는 진지한 고민을 이야기하며 상담도 받고 서로를 걱정해주고, 또 기쁜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같이 슬퍼하며 희로애락을 같이 해 왔다. 각자가 가는 길은 서로 다르지만 특별한 인연으로 만난 친구들의 우정은 영원할 것이다.

 

"친구들아! 지금까지처럼 좋은 우정 영원히 간직하고 힘들 때는 힘이 되어 주는 진정한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해라."

덧붙이는 글 '차별의 기억' 응모글입니다.
#차별 #군대이야기 #죽마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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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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