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엔 장학금 없니?"
휴... 빚만 갚다 생 마감하려나

[등록금이 가계에 미치는 영향 ⑤] 대학생은 '돈덩어리', 대학은 '똥덩어리'

등록 2009.04.25 10:58수정 2009.05.08 14:4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학은 노력만 하면 누구나 쉽게 들어가는 줄 알았다. 딸은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IN 서울' 할 만큼은 되었지만, 원했던 만큼의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본인은 재수하겠다는 걸 남편은 부득부득 우겼다. 재수한다고 성적이 올라가는 거 아니니까 일단 들어가라. 재수하려면 집 나가라고.


"등록금 비싼 사립대학 나와서 뭘 하겠니? 아빠는 돈도 없고 청주에 있는 충북대 가면 네가 원하는 심리학과 교수진도 괜찮은 것 같으니 들어가서 해라. 어디면 어떠냐. 다 너 하기 나름이지. 청주에는 할머니 집도 있고 작은 아빠도 계시고 하니 낯설지 않게 어려울 땐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거다."

아이는 울며불며 사흘을 단식투쟁으로 버티다가 제가 벌어 다니겠다며 집을 나가겠다고 짐을 주섬주섬 싼다. 마음 약한 어미는 한밤중에 짐싸는 딸을 말리며 일단 들어간 다음에 생각을 해보자고 달랬다.

"재수하려면 집 나가라" 했지만...

a

'등록금 인하, 청년실업 해결' 등을 촉구하는 전국대학생대표자 농성단이 11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연행학우 석방', '이명박정부 심판' 등을 외치며 삼보일배 행진을 하고 있다. ⓒ 남소연


딸은 마음에 내키지 않는 대학엘 들어가더니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하는 듯했다. 주말이면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올라와 월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잠도 안 깬 눈을 비비며 간신히 내려가곤 했다. 집 나서는 딸의 처진 어깨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새내기로 한참 즐겁고 축하받고 신나야 할 시기인데 코 빠뜨린 모습으로 집을 나서는 아이를 보며 안타까웠다. 대학이 뭐기에. 아이가 가고 난 뒤 어쩌다 방문을 열어보면 머리카락이 한웅큼씩 빠져 방바닥에 쌓여 있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냥 서울에 있는 대학엘 보내든지 원하는 대로 재수를 시킬 걸 그랬나?'

대학 입학할 땐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이 고등학교 1기분 정도였다. 50여만 원 정도 낸 것 같다. 어미는 싸다고 좋아했으나, 아이는 속으로 앓고 있었다. 결국 부모가 졌다. 아이보고 '반수(학교에 다니면서 재수를 준비하는 것)'하라고 했다.


그 말을 하기 전에도 아이는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는지, 그 많았던 머리카락이 반 이하로 줄었다. 더 빠지지 않도록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반수 결과는 생각만큼 좋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겠다고 했다. 나이는 먹어가고 졸업한 후가 걱정스러웠지만, '조금 더 돌아간다고 인생에 문제될 건 없겠지'라고 자위하며 허락했다.

'빚'내서 대학 가면, '빛'나는 미래 보장될까

a

민주노동당 충남도당의 대학생 학자금 대출현황 분석발표 기자회견 모습. ⓒ 윤평호


자퇴까지 하면서 모질게 맘먹고 했던 공부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딸은 결국 같은 대학에 다시 복학을 했다. 이번에는 등록금을 제대로 다 냈다. 빚을 내서. 서울에 있는 사립대에 비하면 액수는 적었지만, 결코 혼자 벌어서 빚내지 않고 낼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187만원 그뿐인가. 방세 내야지, 친구 혼자 쓰기도 벅찬 원룸 전셋집에 얹혀 사는 비용도 한달에 15만원씩 줘야 하고, 생활비겸 교통비로 최하 35만원 정도는 줘야 했다. 그 외에도 잡비 들어가지, 교재값 따로 줘야지. 정말 한국에서 대학생 하나 키우는 건 '돈덩어리'다.

그렇다고 졸업하면 취직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장학금을 다 주는 것도 아니고. 등록금 낼 때쯤 되어 "이번 학기엔 장학금 없니?"라고 물으면 "장학금 자체가 별로 없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길 한가. 학교가 있는 청주에선 꿈도 못 꾸고 방학 동안 서울 와서 잠깐씩 하더니 그마저도 자리가 없단다. 쥐꼬리만한 시급은 오는 시간 가는 시간 점심시간 등을 따지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고도 했다. 요즘엔 공부할 시간도 없다고 아예 알아볼 생각도 안 한다.

게다가 올해는 3학년 진학을 앞두고 휴학까지 해버렸다. 소위 말하는 '스펙'을 올리겠다고. 한동안 4학년에서 휴학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더니 이젠 더 내려왔다. 4학년 때 휴학을 하면 취직자리 알아볼 시간도 기회도 적고, 인턴으로 나갈 기회도 적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3학년을 앞두고 휴학을 한단다. 보장되지 않은 앞날에 대한 불안감으로 더 많은 대비를 하고 싶은 아이들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학교 다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모의 한숨도 깊어만 간다. 부모로서 노후를 대비할 시간도 그만큼 짧아지는 셈이다.

대학들의 누적 적립금, 뭐에 쓰는 돈?

a

사립대학의 누적 적립금 사립대학의 누적 적립금 통계-2006년 통계 ⓒ 경향신문

대학 당국은 '등록금을 올려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고 하는데 지난 국정감사에서 내놓은 '2007년 주요대학 누적 적립금' 자료를 보면 2007년 사립대학의 누적 적립금은 5조5833억원에 이른단다. 

이 가운데 연구 적립금은 4712억원, 장학 적립금은 4444억원에 불과했다. 반면 건축 적립금은 2조4750억원, 용도를 정확하게 어려운 기타적립금은 2조1034억원으로 집계됐다. 도대체 이런 적립금을 쌓아놓기만 하고, 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알고 싶을 뿐이다.

대학 등록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해마다 오르기만 한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평균 6.25%가 올랐다고 한다. 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입학금만 대주고 나머진 네가 벌어서 다니라고 등 떠밀어야 하는 건지, 졸업할 때까지 허리 휘게 대줘야 하는 건지.

아이는 낳으라고 하면서 국가에서 책임져 주는 건 없고, 비싼 등록금은 부모가 내든지 본인이 돈벌어서 내든지 나몰라라 하고. 대학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아이들은 미어터지게 머리 들이밀고. 소위 명문대라 하는 곳은 더욱더 배짱 튕기고. 머리 싸매고 공부해서 돈 갖다 바친다고 졸업한 후의 취직을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닌데.

정부는 소비자와 공급자 보고 알아서 하라고 뒷짐지고 방관만 한다. 그래도 내 형편은 다른 사람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국립대라 사립보다 등록금도 적은 편이고, 무이자대출도 되니까.

이 땅의 부모들은 빚만 갚다 생 마감하려나

어찌보면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건 무모한 짓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고 개인에게만 모든 것을 떠넘기는 정부에 무얼 바라고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 키웠는지. 남들보다 낫다고는 하지만 대출받은 전세자금 갚을 일도 아득한데, 앞으로 남은 2년이 걱정이다. 지금 현재 대출금만 534만원이다.

등록금은 계속 오르고 취업에 대한 전망은 캄캄한 터널 속 같고. 언젠가 터널이 끝나긴 하겠지만 그 터널이 끝나기 전에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만 할지 답답할 뿐이다. 죽을 때까지 빚만 갚다 생을 마감하게 될 것 같다. 내년에 대학생이 둘째까지 하나 더 보태면.

우리나라의 고등학생 대학진학률은 84%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취업을 했을 때 직장에서 재교육받는 기간은 무려 20.3개월에 해당한다고 한다. 즉 대학 교육은 취업에 별로 보탬이 되지 않는단 뜻이리라. 이런 보탬도 되지 않는 대학교에 목숨 걸고 진학할 만한 의미가 있는 일인지 아직도 의문이다.
#등록금 #대학 #우골탑 #상아탑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고장난 우산 버리는 방법 아시나요?
  2. 2 마을회관에 나타난 뱀, 그때 들어온 집배원이 한 의외의 대처
  3. 3 삼성 유튜브에 올라온 화제의 영상... 한국은 큰일 났다
  4. 4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현상들... 서울도 예외 아니다
  5. 5 "과제 개떡같이 내지 마라" "빵점"... 모욕당한 교사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