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선물 - 도둑 놈아!

등록 2009.05.22 09:26수정 2009.05.2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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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선물'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기사 공모 제목을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공모 제목을 보고 일주일을 넘게 끙끙거려보았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선물이 도통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멋진 기사 공모 글 한 편 써 보자는 나의 결심이 내가 이렇게 인생 헛살았나 하는 허무함에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제 갓 20대를 벗어났지만, 그래도 옛날 같았으면 인생의 절반을 살았을 나이인데, 준 선물 중에서도 받은 선물 중에서도 상대방 눈에서 눈물 콸콸 쏟아지게 한 선물도, 내 가슴에서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온 선물도 없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었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생일도 벌써 20번은 족히 넘겼을 나인데 이 무슨 통탄한 일이란 말인가.

기분 엄청 묘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또 며칠을 더 보낸 지금, 정말 다행스럽게도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다. 누군가가 그러지 아니했던가. 어떤 일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면 결국 답이 보이는 법이라고.

분한 마음인지 자책하는 마음이었는지 잠자리에 누워서도 '잊을 수 없는 선물'을 곱씹게 되었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이름. '김기호(나쁜 얘기도 아닌데다가, 포털사이트 검색 한 번 해도 참 다양한 직종에서 볼 수 있는 이름이기에 굳이 가명을 쓰지는 않겠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단짝이었던 녀석이다. 다른 동네로 이사 가고 나서부터는 연락이 끊어졌지만, 그래도 그 때는 정말 친했다. 그리고 사는 동안 어느덧 기억 저 편으로 밀어놓았던 일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선물을 주었던 친구이기도 하다. 좀 과장해 말하자면 내 인생의 구원자 김기호라고나 할까?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5살 때부터 집 밖에 나가면 안방다리를 하고 앉아 어른 옆에 앉아 있어야 한다고 믿었을 만큼 난 바른 생활 아이였다. 아! 적어도 집 밖에서는(집에서 별명은 꼴통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쩐지 초등학교 2학년 밖에 안 된 어린 마음에도 좀 비딱해 보이는 아이들이 대단해보였던 모양이다.

솔직히 드라마에서 보았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친구가 한 것을 보았던 것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아무튼 당시 내가 멋있게 보았던 녀석들은 도둑질 하는 녀석이었다. 그래, 안다. 나쁜 짓이고, 참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분명 그 당시는 그런 짓을 하면 다른 친구들이 나를 우러러 볼 줄 알았다. 그래서 기호를 포함한 친구 몇 명과 함께 집 앞 수퍼에 갔을 때 난 과감한 계획을 세우고 행동에 옮겼다.

초등학교 2학년 그 어린 나이에 도둑질을 하겠다는 대범한 계획을 세우긴 세웠는데, 과자를 훔칠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도둑질을 하긴 해야 하겠고, 과자처럼 큰 것을 훔칠 용기는 없고, 그러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 당시 우리 앞집 슈퍼는 100원짜리 과자를 사면 10원짜리 껌을 주곤 했다. 크기도 작고  다른 친구들이 과자를 사는 동안에는 아주머니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사각 지대에 놓여져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과자를 사는 순간을 틈타 그 10원짜리 껌 있는 곳으로 가서 한 손으로 재빨리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초등학교 2학년 주머니에 다 넣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다 해야 10~20개였을 것이다.

이왕 솔직하게 얘기한 것 욕 좀 듣더라도 좀 더 솔직히 얘기하자. 사실 처음 도둑질 성공했을 때는 기분이 묘하게 짜릿했다. 도둑질을 하는 순간의 엄청나게 떨린 마음을 잊을 만큼.

그리고 자랑스럽게 친구들에게 도둑질한 10원짜리 껌을 보여주었다. 난 당연히 "우와, 너 대단하다. 무섭지도 않냐?" 이런 반응이 나오리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기호라는 친구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이런 도둑놈! 나쁜 놈! 도둑질했어!" 이러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 가게 앞에서 말이다. 내가 얼마나 당황했던지 짜릿했던 마음이 다시 도둑질 하던 당시의 떨리는 마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더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녀석이 다른 아이들도 있는 곳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나에게 뭐라고 해서 부끄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들을까 무섭기도 해서 재빨리 무언가를 산 것처럼  들어가 다시 껌을 놓고 왔다.

물론 그 당시 어린 마음에는 그 친구가 꽤 미웠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 망신도 주었고,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면 잘못하면 주인아주머니한테 걸려서 경을 칠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무엇보다도 그 당시에는 정말 친한 친구였는데 친구를 궁지에 몰아넣다니!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선물을 해 준 것은 바로 그 친구가 아닐까 싶다. 만약 당시 기호가 내게 그렇게 아이들과 사람들이 다 있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도둑질을 했다고 비난하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어쩌면 그 짜릿한 마음을 잊지 못하고 더 큰 것을 도둑질하는 나쁜 버릇을 들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일이 있은 후 당연한 것이겠지만, 여자의 마음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도둑질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 나를 있게 해 준 기호라는 친구.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선물이다.

덧붙이는 글 |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선물' 공모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선물' 공모 글입니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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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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