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와 아버지, 어머니까지 보내고 나니...

가족의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등록 2009.09.05 14:37수정 2009.09.0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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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망이 없어지려면 집착이 없어져야 하고 집착이 없어지려면 '나'라는 존재가 없어져야 할 것이며, '나'가 없다면 늙는 일도 죽음도 없다. 결국 집착이 없는 곳에는 삶이 없고, 삶이 없으면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괴로움도 없다."

 

사람사랑이 곧 희망이라는 생각에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았던 저에게 올 1월부터 마음 공부를 시작하면서 사람에 대한 집착 또한 또 다른 아상과 이기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의 일방적 집착 때문에 소중한 사람에게 부담과 짐이 되고 되려 그 사람에게 가슴 아픈 상처를 안겨다 주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반드시 변화하는 법이고 고정된 실체가 없으니 집착을 멀리해야 한다는 수행자의 마음가짐을 피상적으로나마 알게 되니 진정 '나'라는 주객관적인 정체성을 차츰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되어 버린 내 안의 이기심과 헛된 망상, 욕심 그리고 남을 이기려고만 하는 분노와 증오의 감정 또한 서서히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그 '화'를 조정하기에는 발톱의 때만치만도 못하지만요.

 

묻어둔 가족사의 슬픔을 음지에서 양지로 꺼내어 정화시키다

 

a 천지인의 조화로운 생명사상을 깨닫게 해 준 붓다 자연속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인 것 처럼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변화 그 자체임을 믿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이 행복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천지인의 조화로운 생명사상을 깨닫게 해 준 붓다 자연속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인 것 처럼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변화 그 자체임을 믿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이 행복임을 알게되었습니다. ⓒ 이정민

▲ 천지인의 조화로운 생명사상을 깨닫게 해 준 붓다 자연속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인 것 처럼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변화 그 자체임을 믿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이 행복임을 알게되었습니다. ⓒ 이정민

 

죽음을 진정 가슴으로 느끼게 되는 경우가 바로 가족이나 친구 등 가장 가까이에 계신 분들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현실을 여간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함께 하지 못함에 서럽고 원통한 마음이 앞을 가리고 더 잘해주지 못했음에 한없는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오는 현실의 고통을 그대로 마주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족사를 이야기하면서 슬픈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어렵지만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어 내면에 묻어두었던 아픔을 정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누나의 죽음과 마주하였습니다. 사춘기 시절이라 서로 말 한마디 해 본 적 없던 누나가 갑작스레 교통사고로 떠나 버렸습니다. 대학입학을 앞두고 멋진 형님과 미래를 약속까지 했던 누나의 죽음은 그 자체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여리고 내성적인 성격에 수업시간 내내 눈물을 흘려야 했고 1년여의 기간을 망연자실하며 기나긴 시간과의 싸움을 이어나갔습니다. 결국 가족 구성원의 첫 죽음과 함께 찾아온 우울증과 분노는 고등학교시절 방황과 폭력, 사회적 불신 등으로 내 안의 배타적 이기심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죽은 사람은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갔으니까 산 사람은 어찌되었든 살아야 되지 않느냐'고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땐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바쁜 생활의 연속선에서 자연스레 누나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죽음만큼 더 큰 시련은 없지만 그 죽음을 통해 삶의 지혜를 깨닫는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엄격하고 보수적인 가정환경 탓에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와의 갈등과 대립은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저의 불찰이 더욱 컸지만 아버지의 일방적인 꾸지람과 억압은 방황하던 저에게 불을 지피는 듯 원망과 분노의 심정만 키우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주변 친구분이나 이웃 주민들에게 성실하고 인정받고 정 많은 어른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들어오시는 순간부터 뭔지 모를 성냄과 스트레스를 저희와 어머니에게 쏟아냈습니다. 아마도 홀로 짊어지시기에 너무나 힘든 아버지만의 답답한 울타리가 반대급부로 작용하질 않았나 생각합니다.

 

온 나라가 월드컵 경기로 들썩거리는 그 해, 아버지는 갑작스레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술로 지내온 세월이 많으셨기에 아니 홀로 술로 버티면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생각하셨기에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던 마음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백방으로 치료가 가능한 방안을 강구해 보았지만 결국 아버지는 그 해 여름을 못 넘기시고 이승과의 이별을 고하셨습니다. 부자지간이라 어색함과 딱딱함의 관계로만 형성되어서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못했던 제 자신이 그때만큼 죄 많은 후회스러움으로 오랜 시간을 책망해 본 적은 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여리고도 강한 사람이 어머니라고 하였듯 아버지와 누나를 가슴에 묻고 살아남은 가족의 몫을 끝까지 다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시는 당신의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더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은 어머니를 더욱 악착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켰으며 이젠 쉬어도 좋으시련만 바쁨의 순간을 통해서 아픔을 잊으시려나 하는 듯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과 씨름을 할 정도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강조하시며 성공해서 인정받는 사람보다는 나누면서 함께 어울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랬던 자식 인성교육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더 엄격했던 그런 어진 분이셨습니다.

 

그 무렵 안정적인 직장에서 정신 없이 생활하고 있던 저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작은 행복을 찾아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시간에 쫓기며 일상을 보듬어 볼 수 있는 여유마저 없었기에 조금씩 느리게 천천히 가자고 생활의 리듬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차츰 마음의 안정이 생기니 그렇게 보이지 않던 소중한 사람도 눈에 들어오고 어머니와 함께 하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술도 줄이고 제 곁에 있는 좋은 사람과 함께 어머니의 행복 찾기를 위해 조금씩 웃음을 되찾아 드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일상의 행복도 잠시였을 뿐, 직장생활이 만만치 않은 터라 귀가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지게 되어 어머니께서 홀로 집에 계시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얼굴을 보는 체 마는 체 하며 저는 저대로의 시간에 빠져들었고 그 사이 어머니는 우울증과 두통에 많은 밤을 불면증에 시달리시며 그렇게 병을 키워오셨던 것입니다.

 

여느 때처럼 어머니는 일상에 지친 저를 위해 장을 보러 나가겠다고 하셨고 저는 무거운 몸을 겨우 이끌고 태워다 드리겠다고 하자 괜찮다며 혼자 다녀오시겠다며 그렇게 발길을 재촉하셨습니다. 아마도 주말에 잠이라도 더 자게 해주기 위해 아들 생각하는 맘으로 끝까지 저와의 동행을 만류하셨나 봅니다. 그날은 사상 유례없던 동장군의 한파가 몰아치는 날이었기에 자면서도 마음이 편칠 않았습니다. 불편한 심기와 걱정 때문에 한낮에 악몽까지 꿈꾸던 그 시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여기 00병원입니다. 환자분께서 지금 의식을 잃고 쓰러져 계시니 빨리 응급실로 오세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절대로 오지 말아야 할 전화가 오고야 말았습니다. 온 몸이 부르르 떨리고 숨이 막히고 머리가 어지러워오면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안돼, 절대 안돼, 왜 나한테 자꾸 이러는 거야, 내가 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도착하자마자 중환자실로 옮겨진 어머니의 얼굴은 그 자체로 너무 창백해 보였습니다. 마음의 심약함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뇌출혈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고혈압에 시달리면서 병원도 가지 못하고 두통약으로만 버텨오셨던 당신께서는 겨울의 혹독한 한파를 견디지 못하시고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를 붙들고 몇 시간을 울어댔는지 저 또한 그 자리에서 넋을 놓아버렸습니다. 곧 큰 병원으로 옮겨서 의사에게 무조건 살려야 한다며 부탁을 드려보았지만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러 결국 3일만에 평온한 얼굴로 저희와의 마지막을 함께 하셨습니다.

 

삶의 경건함을 배우며 죽음을 이제 존중하고자 합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삶의 첫 죽음과 마주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한 시간을 보내는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각자 시간을 갖고 인생의 최대의 위기를 고군분투하며 방황하는 속에 죽음의 경험이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삶의 시야와 겸손함 그리고 배려를 가져다 주는 법입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자연 사상의 가르침은 죽음을 통해 또 다른 삶을 배울 수 있는 지혜를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축생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지구 저편의 또 다른 사람으로 변화하여 전생의 업보를 떠 안고 다시 살아간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누나는 이제 제 마음 속에 영원한 동반자가 되어 지혜로운 삶의 근원적 깨달음을 얻기 위해 언제나 함께 존재하기에 저는 행복합니다. 또한 제가 알고 있는 선현들과 지인들의 거룩한 죽음 또한 언제나 저에게 삶의 경건함을 가르치며 탐욕과 진노와 어리석음을 멀리하고 지혜와 자비, 복덕을 깨우쳐주기에 이제 그 죽음을 존중하고자 합니다.

 

"마음의 본성은 일찍이 태어남도 없었고, 죽음도 없는 것입니다.

 흙에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면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덧붙이는 글 [응모글] 죽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 : 가족사에 얽힌 부모의 죽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
#삶과 죽음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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