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 수의 미리 준비하면 불효자?

[죽음에 관한 이야기] 할아버지와 수의

등록 2009.09.12 09:43수정 2009.09.1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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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건 불변의 진리 100년이 넘은 조상님의 유골이 흙으로 변해있다. 인간은 정말 흙으로 돌아가는 걸까? ⓒ 김동이


삶과 죽음. 인간이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심각하게 생각해 봤음직한 무거운 주제다. 나 또한 어느 순간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지만 좀처럼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


대학 시절에도 학업 중에 철학사상을 논(論)하면서 열띤 토론을 벌였던 기억도 있다. 또한, 논리학이라는 학문 중 '삼단논법'이라는 단원을 배우면서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사례가 있다. 여기에도 죽음이 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고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비록 삼단논법의 사례이긴 하지만 어쨌든 간에 모든 사람은 그 시기가 조금씩 다를 뿐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심각한 고찰을 해본 적이 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지난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후 공개된 노 전 대통령의 유서 때문이었다. 지금도 유서의 한 구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여오고 또 다시 심각한 고민에 빠져든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잠시 쓰던 글을 멈추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삶, 죽음. 도대체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죽음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얼마나 괴롭고 힘들면 삶을 포기하겠는가. 하지만, 차라리 죽을 용기로 살아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긴 하지만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르기에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도 해답이 없는 미지수로 남아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겪은 세 분의 죽음... 인생무상 느껴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 번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다. 모두가 가족들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7년 전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어머니. 직접 시신도 봤고, 장례식장에서 자리를 지키는 내내 내 몸 속에서 뽑아낼 수 있는 모든 눈물을 쏟아냈다.

더군다나 어머니께서는 큰 자식이 사 준 마지막 선물인 신발을 한 번 신지 못하시고 그렇게 떠나셨다(관련기사 : "맏아들이 사준 신발, 아까워서 어째 신누..."). 집안에 곱게 놓여 있는 신발을 보는 순간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에 난 또 한번 가슴을 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불과 몇 년 차이로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은 갑자기 돌아가신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린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그때도 마찬가지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터라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남달랐던 것 같다. 더군다나 집안의 가장 어른으로서 집안을 호령하였고, 특별히 나를 아껴주시던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허무함과 함께 큰 충격을 받았다.

상갓집을 찾았던 많은 문상객들은 호상(好喪)이라며 술도 먹고, 화투도 치며 밤을 새기도 했지만 난 할아버지께서 산으로 올라 땅 속에 영면하시기까지 끊임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장사 지내는 내내 나를 지켜보던 어른들은 조그만 게 기특하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고 하지만, 난 할아버지와의 각별한 인연이 있었기에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게 다른 누구보다 슬프고, 힘들었다.

수의를 왜 벌써 준비해 빨리 죽으라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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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함 작은 유골함에 담긴 조상님들을 보니 허무한 마음도 들었다. 특히, 곁에서 마지막 죽음을 지켜봤던 할아버지도 자연으로 돌아가시는 걸 보니 인생의 무상함도 느꼈다. ⓒ 김동이


병원에서 앓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집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남다르다.

어린 시절 대부분 아이들이 어머니, 아버지의 곁에서 잠을 자던 경우와는 달리 난 할아버지의 남다른 사랑을 받아 항상 할아버지 곁에서 잠이 들었다.

밥을 먹을 때도 항상 할아버지 옆에 자리해 맛있는 반찬은 거의 독차지할 정도였다. 행여 장날이라도 될 때면 장터에서 사오는 과일이며, 먹을거리는 동생들보다 나에게 더 많은 양이 주어졌고, 이럴 때면 동생들은 항상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어머니한테로 달려가서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이렇듯 할아버지의 나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고, 집안에서도 할아버지의 위세는 대단했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면 누구하나 토를 달지 못했고, 그렇게 해야 했다.

한번은 수의(壽衣) 문제로 집안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수의를 미리 준비해 두겠다는 집안 어른들의 말에 할아버지께서 발끈하신 것이다. 요즘은 영정사진도 미리 준비하고, 수의를 미리 준비해 주면 효도라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히 불쾌하셨나 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은 후로 그리 오래 되지 않아 할아버지께서는 세상을 떠나셨고, 가족들은 급하게 수의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뛰어 다녔다. 또한, 사진기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할아버지의 변변한 사진 한 장 없어 벽에 걸려 있던 할아버지의 초상화를 영정사진으로 모셨다.

가족들의 말대로 미리 수의와 영정사진을 준비해 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늦은 후회도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건 불변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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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묘 이장 모습 행정복합도시 공사로 인해 고향에 모셨던 조상의 묘를 이장했다. 하지만, 100년이 넘는 조상의 묘를 이장하면서 흙으로 돌아가신 조상의 유골을 수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골을 수습하는 이들도 애를 먹었다. ⓒ 김동이


그렇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20년이 넘은 지난해 여름, 고향마을을 떠나면서 조상의 산소를 이장했다. 이장하기 전 산신제를 지내고, 중장비를 동원해 묘를 이장하면서 또 한번 인생무상과 함께 죽음에 대한 심각한 고찰을 해 본적이 있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난 이때 사람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의 참뜻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 대부분이 100년이 넘는 조상의 묘였고, 어머니 산소를 제외하고는 20년이 넘은 묘였지만 육신은 이미 흙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육신이 20여년만에 시나브로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걸 보니 인간의 육신은 나약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그리고, 또 하나 산소를 이장하면서 사람은 흙으로 돌아갔지만 사람보다 더 오래도록 남아 있는 수의를 보면서 허무한 생각도 들었다.

영정사진을 준비하는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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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영정사진을 준비하는 노인들 예전에는 영정사진, 수의를 미리 준비하면 불효자라는 질책을 받았지만, 요즘은 세태가 변해 미리 영정사진과 수의를 준비한다. 사진은 계룡시의 한 마을에서 영정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 김동이


얼마 전 한 시골마을에서 행사가 열려 찾았던 적이 있다. 이날 행사 중의 가장 핵심은 어르신들의 영정사진 촬영이었다.

사진촬영을 위해 분주하게 화장을 하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 수의와 영정사진을 준비해 드리지 못한 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랐다.

초상화가 아닌 활짝 웃는 영정사진으로 모셨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감도 들었다. 지금은 할아버지의 모습은 초상화가 아닌 내 머릿속에 추억과 함께 영원히 남아 있긴 하지만 마음 속에는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요즘은 수의와 영정사진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게 불효가 아닌 효도라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아직까지 준비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부모님을 위해 준비해 두는 게 어떨까.

문득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구절 하나가 머릿속을 스치운다.

"樹欲靜而 風不止, 子欲養而 親不待"(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효도를 다하려고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죽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 응모글


덧붙이는 글 <'죽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 응모글
#삶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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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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