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장 재임시절 회사에 1,892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로 불구속 기소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이 8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유성호
'해임처분 취소'의 판결이 있고 난 다음 날, 리영희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마침 내가 전화를 받지 못하자, 음성 메시지를 남겨놓으셨다.
"판결소식, 뉴스로 전해 듣고, 뭐 으레 그리 될 것이라 믿었지만, 정말 잘 되었소. 이제 이 폭력집단의 정체가 다 밝혀졌으니, 그것이 많은, 큰 영향을 줄 것이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돌아가기야 어렵겠지만, 아무튼 그동안 참 수고가 많았소."어느 대선배 어른께서도 전화를 주셨다. "고시 공부 세게 하더니, 양시(형사사건과 행정사건) 모두 패스했네", 그러셨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님들 덕분이었다. 조준희 변호사님을 비롯하여 백승헌 민변회장, 조용환, 김기중, 송호창, 한명옥, 그리고 김영식 변호사님들 덕분이었다. 이 엄혹한 시대 만난, 참 귀한 분들이다. 이명박 정권 출범 뒤 민변 변호사들 보통 고생이 아니다. 촛불 참여자에 대한 재판을 비롯하여 이명박 정권 아래 빚어진 온갖 반민주 사건이 폭주하다 보니, 얼마나 바빠졌는지 모른다. 민변 변호사들이 바빠졌다는 것은 반민주의 역주행이 얼마나 광폭한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법원을 오가면서 법원 주변에서 많은 1인 시위자들을 보았다. 사연도 가지가지였다. 얼마나 억울하고 호소할 데가 없으면 저렇게 호된 고생을 하나 싶었다. 나야 그래도 'KBS 사장' 지낸 덕에 내 이야기와 억울함이 세상에 알려지기도 하고, 그래서 억울함이 나눠지기도 하지만, 세상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저 무명의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과 한과 억울함은 누가 풀어줄까. 조작된 간첩 혐의로 온 가족이 고문을 당하고, 십수년을 징역을 살고, 심신은 다 망가지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 '진도가족간첩단사건'(13일 서울고법 재심에서 무죄 선고)을 비롯한 수많은 조작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들의 삶은 누가 보상해주는가.
'잃어버린 15개월' 원상회복 되어야'해임 처분 취소' 판결 이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사장 복귀 여부에 대한 것이다. 어느 누리꾼은 KBS 연말 시상식에 그냥 나가서 시상을 하라 주문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은 12일 판결에 대해 애써 침묵하면서 하찮은 사건인 양 대한다. 그러면서 항소 뜻을 밝혔으니, 기다려 보자는 입장이다. 그런데 임기가 끝난 뒤 진행되는 항소심부터는 '소송의 실익'이 없으니, '해임처분 무효 청구'의 내용보다는 형식 논리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12일의 1심 판결이 해임의 내용을 가지고 다투는 사실상의 최종심인 셈이다. 만약 내 임기가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남아 있다면 모를까, 임기가 불과 열하루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항소했으니..."라는 논리는 참으로 옹색한 게 아닐 수 없다.
역설적으로 바로 임기가 열하루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1심 판결의 내용과 정신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바로 그런 뜻에서, 나는 '원상 복귀'가 '잃어버린 15개월의 복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1심 판결, 즉 '해임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의 내용이자 정신이다. 만약 임기가 끝나버렸다고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온갖 못된 짓을 다 해도, 그만인 셈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고?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위법을 바로 잡고, 정의를 세우는 바탕이 허물어지고 만다. 이건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원칙의 문제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인사들이 그리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더 이상 '법치'니, '정의'니, '선진국'이니, '나라의 품격'이니 하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나의 해임 이후 KBS는 '불법 체제'그리고 KBS에게도 매우 불행한 일이다. 1심 판결에서 나의 해임의 절차, 내용이 모두 부당하고 법을 어긴 것이다라고 했으니, 나에 대한 '원상 회복'이 이뤄지지 않으면 나의 해임 이후 체제, 이병순 체제는 부당하고 법을 어긴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지금의 후임 사장 논의도 부당하고 법을 어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원상회복이 이뤄지지 않으면 KBS 체제는 계속 '불법 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KBS 신임 사장 선임과 관련하여 "그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나를 해임한 뒤 "이제 KBS가 거듭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온갖 권력기관들을 총동원해서, 부당하게 법을 어기면서까지 나를 해임한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지금의 '불법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사장 선임과 관련하여 무슨 말을 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부끄러움을 알아야지.
KBS의 '불법체제'를 낳은 나의 해임 작전은 지난해 2월말 이명박 대통령 취임 전에 이미 발동이 걸렸고,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자 본격화되었다. 2008년 이른 봄, 내게 이런 검찰 쪽 정보 보고가 전해졌다. 정권의 '마녀사냥'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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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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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이명박 대통령'은 패배했다 나의 '잃어버린 15개월' 원상회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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