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대생, 낙태경험까지 다 말해주네요

[유러피언드림, 그 현장을 가다 ⑨] 한국 워킹맘, 파리 길거리 인터뷰 도전하다

등록 2010.03.03 19:41수정 2010.03.1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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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기념 특별기획으로 '유러피언 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중 연재한다. 그 첫번째로, 시민기자와 상근기자로 구성된 유러피언 드림 특별취재팀은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나'를 현지취재, 약 3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말>

취재정리: 김영숙 시민기자

공동취재: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프랑스편> 특별취재팀

 

창간10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가 준비한 특별기획 '<유러피언 드림>의 현장을 가다' 그 첫번째 기획으로 프랑스에 파견된 특별취재팀이 25일 파리 시내에서 만난 다출산 가족에게 출산과 육아문제 등에 관해 묻고 있다. 사진 맨 왼쪽이 취재수첩을 들고 있는 김영숙 시민기자. ⓒ 오마이뉴스 남소연

창간10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가 준비한 특별기획 '<유러피언 드림>의 현장을 가다' 그 첫번째 기획으로 프랑스에 파견된 특별취재팀이 25일 파리 시내에서 만난 다출산 가족에게 출산과 육아문제 등에 관해 묻고 있다. 사진 맨 왼쪽이 취재수첩을 들고 있는 김영숙 시민기자. ⓒ 오마이뉴스 남소연

프랑스에 온 지 이틀 되던 날인 지난달 25일 오후, 한국의 워킹맘인 나는 '무한도전'을 시도했다. 무작정 파리 시민들을 만나 즉석 길거리 인터뷰를 해보고 싶었다. 프랑스의 생얼을 보기 위해.

 

나는 파리에 처음 왔다. 오마이뉴스의 <유러피언드림: 프랑스편> 특별취재팀에 '일반인' 자격으로 합류해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 문제를 극복했는지를 취재 중이다. 2주 전에 시민기자로 가입했고, 이제 막 첫 번째 기사를 썼을 뿐이다. 왕초보 시민기자인 내게 다가오는 낯선 파리의 거리. 걱정이 앞선다. 물어봐도 답을 안 해주면 어떡하지?

 

내 인생 최초의 길거리 인터뷰

 

첫 목적지는 루브르 박물관 앞. 지하철 출구 계단을 올라가자 고풍스러운 건물이 나타난다. 다행히 장소가 관광지여서 그런지 여유롭게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인터뷰할 이를 물색했다. 저만치 앞에 아이 넷을 동반한 커플이 보였다.

 

시민과의 첫 인터뷰. 긴장된다. 통역이 있긴 하지만 뜬금 없는 질문에 사람들이 낯설어 하지 않을까? 어쨌든 진격해본다.

 

통역이 같이 있는 게 확실히 큰 도움이 된다. 마흔 네살 동갑인 이샴, 아이샤 커플은 둘 다 공무원이었다. 인터뷰 취지를 설명하니 흔쾌히 그러마 한다. 옆에 사진기자도 같이 있으니 뭔가 취재하는 모양새로 보이기도 했나 보다. 나 혼자 와서 더듬거리는 영어로 물었다면 이런 상황까지 발전하긴 힘들었겠지.

 

- 아이가 넷이나 되는데 키우기 힘들지 않나?

"남편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데 4시반에 막내를 찾으러 크레쉬(탁아소)에 간다. 아이가 있으면 탄력근무제를 이용할 수 있어 가능하다. 정부나 양쪽 직장으로부터의 육아지원금도 있어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 실례지만 한달 동안의 육아지원금은 모두 얼마나 되나?

"500 유로(약 75만 원) 정도 된다."

 

음… 첫 인터뷰를 마치니 가슴이 감개무량하다. 이런 건 TV 에서나 봤었는데. 쪼그라 있던 마음이 조금 부푸는 것 같다. 저만치 계단에 나란히 앉아 있는 젊은 커플. 저들에겐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접근해 봤다.

 

주말을 맞아 27일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에 산책나온 프랑스인들이 골목길을 걸으며 따뜻한 햇살을 즐기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주말을 맞아 27일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에 산책나온 프랑스인들이 골목길을 걸으며 따뜻한 햇살을 즐기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다들 아이는 두세명 정도 갖겠다고 생각"

 

커플인 줄 알았는데, 오누이 사이였다. 음, 멀리서 보니 진짜 그런 분위기로 보였는데. 사람 보는 눈을 더 키워야겠다. 그래도 굴하지 않는다. 낙태 경험이 있는 미혼 학생인 동생 클레몽소(25)에게 물었다.

 

- 아이를 갖고 싶은가? 갖고 싶다면 몇 명의 아이를 키우고 싶은가?

"갖고 싶다. 2~3명 정도가 좋은 것 같다."

 

진한 갈색머리에 약간 몽환적인 눈빛을 가진 클레몽소가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왜 참 의외의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한국에서 저 또래의 여대생이 '2~3명 정도의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싶어요'라는 말을 듣기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을 떠올렸기 때문이 아닐까?

 

- 그렇다면 아이를 가지기 위해 결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동거는 어떻게 생각하나?

"결혼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꼭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를 꼭 가지고 싶다. 결혼은 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고 본다."

 

옆에서 동생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던 오빠도 머리를 끄덕이며 당연하다는 눈빛을 보낸다. 음, '나 결혼 안 하고 그냥 동거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여동생을 그냥 저렇게 바라볼 오빠가 우리 현실에서 많을까? '내 여자친구는 그래도 되지만, 내 여동생은 안 돼'라는 오빠들이 많은 게 현실 아닌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 친구들도 본인처럼 향후 아이를 2~3명 가지고 싶어하는 게 보통인가?

"기본적으로는 그 정도로 가지고 싶어하는 편이다."

 

처음엔 까칠해 보여 말 걸기가 망설여졌던 클레몽소. 그는 어느덧 낙태를 한 경험까지 이야기하면서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또박또박 이야기한다. 사적인 질문에 예민할 거라는 프랑스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무색하게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해준 클레몽소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다시 공원으로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낙태경험, 전처 아이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조금 걸었더니 저기 앞에 중년의 커플이 어린 남자 아이를 데리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통역이 어떻게 잘 얘기했는지 취재가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군하사관인 패트릭(46), 고등학교 교직원인 나탈리(45) 커플이었다.

 

25일 오후 루브르 박물관을 찾은 중년의 커플 나탈리와 패트릭이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단란한 시간를 즐기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25일 오후 루브르 박물관을 찾은 중년의 커플 나탈리와 패트릭이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단란한 시간를 즐기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아이가 귀여운데 몇 살인가? 아이를 더 낳을 생각도 있나?

"다섯 살이다. 패트릭이 이미 전 부인과의 사이에 세 아이가 있어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은 없다."

 

놀라웠다. 전 부인 이야기를 이렇게 허물없이 하는 것이. 다음 질문을 어떻게 하나 내심 당혹해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손병관씨가 내 대신 질문을 한다.

 

- (패트릭에게) 전처의 자식들과 지금의 아이를 위해 한 달에 얼마 정도 쓰나? 그리고 정부의 지원은 ?

 

이 질문에 패트릭은 별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나탈리도 태연하게 쳐다보고 있다.

 

"정부에서 이혼한 아내에게 보조금을 주고, 나 역시 전처에게 육아비로 일부 보내주고 있다. 아이들이 일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전처와의 아이들에게 1인당 매달 150유로를 후원한다. 셋 중 둘은 일자리를 잡았다. 정부에서 그 동안 꽤 많은 보조금을 줬지만, 정부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아이들에게 도움을 줬을 것이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이들에 한국의 육아조건과 출산율을 들려줬더니 반응이 초간단이었다.

 

"참 안 됐네요."

 

"돈 많이 벌면 세금 더 내는 것은 당연"

 

25일 저녁 파리 시내의 뛸르리 공원에서 만난 이자벨은 "미테랑, 시라크, 사르코지 등 역대 정부 모두 가족지원 정책에 관련해서는 좌우파에 상관없이 핵심적인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25일 저녁 파리 시내의 뛸르리 공원에서 만난 이자벨은 "미테랑, 시라크, 사르코지 등 역대 정부 모두 가족지원 정책에 관련해서는 좌우파에 상관없이 핵심적인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서서히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근처의 뛸르리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두 아이와 함께 한 가족. 그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여러 정부지원금은 국민이 내는 고율의 세금(평균소득자의 경우 49%, 2007년 기준,OECD자료)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그들은 높은 세금에 별 불만은 없을까? 20년차 부부인 록산느(45), 크리스티앙(45) 커플에게 물었다.

 

- 세금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세금은 소득이 높을수록 더 많이 내는 구조인데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세금이 많다고 하지만,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실제 내는 세금은 많이 줄어드는 편이라 큰 불만은 없다."

 

그들에게 '세금 피로증후군'의 기색은 거의 없었다. 자기들이 누리는 것들의 대부분이 세금 덕분인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면 아이들의 자녀교육에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처럼 아이들이 대학공부를 꼭 해야 하고, 번듯한 직업을 가지기를 원할까?

 

이 질문에는 록산느 커플이나 그 다음에 인터뷰한 이브(62) 모두 비슷한 대답을 했다. 공부를 하는 건 아이들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고, 대학교육도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아이의 직업은 아이가 찾는 것이고 내가 바라는 것이 아이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록산느 커플과 20년쯤 세대차이가 나는 이브 역시 자녀 교육관이 비슷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이가 셋인 이브에겐 프랑스의 '옛날'과 요즘을 비교하는 질문을 던졌다.

 

- "아이 셋을 키우셨는데, 힘든 점은 없었나? 그때와 지금의 차이가 있다고 보나?"

"힘든 기억은 없다. 나라의 지원이 훌륭한 덕분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젊은이들이 공부하는 기간이 늘어나면서 결혼이나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 시기가 늦어지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아이를 낳는 것에는 별 영향이 없는 듯하다."

 

창간10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가 준비한 특별기획 '<유러피언 드림>의 현장을 가다' 그 첫번째 기획으로 프랑스에 파견된 특별취재팀이 머물고 있는 파리시내에서 바라본 에펠탑. ⓒ 오마이뉴스 남소연

창간10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가 준비한 특별기획 '<유러피언 드림>의 현장을 가다' 그 첫번째 기획으로 프랑스에 파견된 특별취재팀이 머물고 있는 파리시내에서 바라본 에펠탑. ⓒ 오마이뉴스 남소연

68혁명이 뭐기에

 

이곳 프랑스에 와 보니 출산율 이슈와 관련하여 1968년의 파리 학생 운동(이하 '68혁명')을 기억하고 운운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이브의 젊은 시절 중 어느 한 부분에 68혁명이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68혁명으로 인한 사회적 영향을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지 물어보았다. 이브는 질문을 받자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때 나는 20살이었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 진보적으로 변화시키려 노력했다. 그때의 노력에 대해서 아주 좋게 생각한다. 68혁명은 학생과 노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프랑스에서는 68혁명을 계기로 많은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 남녀간에 결혼 없이 동거하는 경우도 늘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사회적 변화의 기조에 맞추어 프랑스 정부는 1975년에 합의이혼을 합법으로 발표했고, 최근에는 동거하는 커플에게도 결혼한 부부와 똑같은 정부지원금을 주고 있다. 동거 커플이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해선 관공서에 '시민계약서'를 제출하게 되는데, 그런 걸 보면 '동거'라는 말의 뉘앙스를 한국과 같이 생각할 일은 아닌 듯했다.

 

계속되는 이브의 말이다.

 

"가족 정책 면에서도 좌파정부가 가족의 이익을 훨씬 많이 고려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우파 정부 역시 기존의 혜택을 삭감하거나 하는 예는 없다. 미테랑, 시라크, 사르코지 등 역대 정부 모두 가족지원 정책에 관련해서는 좌우파에 상관없이 핵심적인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

 

딸 이자벨이 옆에서 거들었다.

 

"최근에 사르코지의 신자유주의 기조의 유입 영향으로 내가 일하는 병원 사무업무에도 미세한 정책의 변화가 있고 염려하는 면이 있기도 하다. 그래도 실제 출생하는 아이는 늘어나고 있는 걸 보면 사르코지가 그렇게 얘기해도 사람들은 겁내지 않고 있다. 현재의 약간의 우경화 추세가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 같다."

 

프랑스, 이제 네가 조금씩 보인다

 

18세기 프랑스 혁명과 잦은 변혁의 시도, 그리고 20세기에 68혁명까지 겪은 혁명의 나라. 그들은 당당했고 자신 있어 보였다. 처음 파리 길거리에서 무작정 만나본 프랑스 사람들. 그 곳에서 인터뷰한 것만으로 그 깊이와 진정성을 가늠하긴 힘들지만, 시민들의 전반적 분위기는 어느 정도 감지가 되었다.

 

<오마이뉴스> 기자회원 등록 2주째인, 나 왕초보 시민기자의 파리 길거리 인터뷰 도전. 가볍게 시작해서 마지막엔 무거운 주제까지 나눌 수 있었던 점이 고무적이었다. 용기가 생긴다. 프랑스가 내 가슴에 들어오고 있다. 조금 더 이 분위기의 물결에 몸을 맡기며 흠뻑 젖어보리라. 프랑스, 이제 네가 조금씩 보인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프랑스편> 특별취재팀 :

오연호 대표(단장),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편집 자문위원), 손병관 남소연 앤드류 그루엔 (이상 상근기자) 전진한 안소민 김영숙 진민정(이상 시민기자)

#유러피언드림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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