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맞벌이 남편, 가사노동 1분 더해준다?

[유러피언 드림, 그 현장을 가다⑦] 파리의 가사노동 분담과 한국

등록 2010.03.03 11:51수정 2010.03.1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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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기념 특별기획으로 '유러피언 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중 연재한다. 그 첫번째로, 시민기자와 상근기자로 구성된 유러피언 드림 특별취재팀은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나'를 현지취재, 약 30회에 걸쳐 연재한다.

* 이 글을 쓴 김용익 서울의대 교수는 오마이뉴스의 <유러피언드림: 프랑스편> 특별취재팀의 편집자문위원이다. [편집자말]
 2월 27일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에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나온 프랑스인 부부.
2월 27일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에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나온 프랑스인 부부.남소연

프랑스에서 만난 모든 남녀는 한 목소리로 집안일과 직장 일은 남녀가 같이 부담해서 한다고 말한다. 이건 이미 프랑스 사회에서는 더 이상 얘깃거리가 아니다.

"가사 일은 당연히 남녀가 분담해서 한다. 그러나 보통 가정에서는 아무래도 여자가 남자보다는 조금 더 하는 편이다. 직장에서도 남녀는 평등하다. 그러나 아직은 고위직을 남자가 맡는 일이 많고,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는 경향도 있다. 아직은 양성평등이 완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국립인구문제연구소(INED)에서 만난 안느 솔라즈 박사의 말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는 그녀의 전공 분야이니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프랑스에서 양성평등이나 가사노동 분담은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으나 아직은 약간 여자에 불리하다.

외벌이 남편은 31분, 맞벌이 남편은 32분 가사노동

그렇다고 해도, 한국과 프랑스의 상황은 아주 다르다. 우리나라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여자는 전업주부의 경우 6시간 25분, 맞벌이 아내의 경우 3시간 28분 집안일을 하는데, 그 전업주부의 남편은 31분, 맞벌이 남편은 32분 가사노동을 한다는 웃지 못할 통계가 있다. 아내가 직장이 있거나 없거나 남편이 집안일을 하는 시간은 차이가 단 1분에 불과하단 것이다.

전업주부가 가사노동을 하는 6시간 25분과 맞벌이 아내가 하는 3시간 28분의 차이, 2시간 57분의 간격에도 한국 사회 저출산의 큰 문제가 숨어 있다. 한국의 워킹맘은 가사노동의 노동강도를 올려서(정신없이 일을 해서, 품질을 떨어트려 대충대충 해치워서), 혹은 상당부분의 외주를 통해서(파출부를 쓰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서) 이 시간을 어렵사리 줄여간다. 때로는 친정이나 시가에 아이를 맡겨서 조부모의 가족노동에도 의존한다. 가사노동의 외주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고 여성들이 버는 임금의 상당 부분은 이에 소요된다.

가사와 육아에 드는 과다한 비용과 함께 여성들의 육아노동 부담은 우리나라 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 중 가장 큰 것이다. 육아노동의 경감은 어린이집, 유치원, 육아도움이 같은 육아 서비스의 제공과 그 비용의 국가부담, 그리고 가사노동을 남녀가 같이 분담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프랑스에서는 이 두 가지 부분이 매우 훌륭하게 해결이 되는 것이다. 여성의 가사노동을 줄여주는 것은 단순이 힘든 일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사회적 경력을 쌓아가면서 애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전제조건이다.


나누어 하기와 도와 주기, 그 결정적 차이

 파리의 중심가에서 만난 20대의 프랑스 여성 셀린, 간호사를 꿈꾸고 있다.
파리의 중심가에서 만난 20대의 프랑스 여성 셀린, 간호사를 꿈꾸고 있다.남소연
그런데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는 단순히 가사노동을 몇 시간이나 하느냐보다 더 큰 차이가 있다. 프랑스 남자는 가사노동을 '나누어 하는' 데 비해, 한국 남자는 집안일을 '도와준다'. 가사 노동의 1차적 책임을 누가 지느냐 하는 것은 두 나라 남녀의 의식에서 결정적인 차이다. 평균적인 프랑스 여성 셀린(21)씨의 말을 새겨들어 보자.


"내 미래의 남친은 청소·세탁·장보기·음식을 해야 해요. 나도 다림질과 음식 만드는 걸 거드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요. 그런 남자는 많아요."

남편이 가사노동을 돕기 위해서는 직장문화의 변화도 필요하다. 프랑스의 직장에서는 저녁 단체 회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친한 친구, 동료들을 불러 집에서 파티를 한다. 직장이 중심이 아니라 개인이 중심인 것이다. 접대도 하지 않는다. 중요한 일은 접대를 통해서가 아니라 근무시간 중의 공식적인 업무로 처리한다.

프랑스의 보육제도가 훌륭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한국도 이를 본받아 참여정부 시기부터 육아지원 대책을 대폭적으로 강화해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보육이 아무리 강화되더라도 가사노동의 양성 분담이 없이는 여성의 육아 노동을 근본적으로 덜어줄 수는 없다. 쉽게 말해서 보육 서비스는 낮에만 가능하고 밤에는 남편과 부인이 아이를 나누어 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교육학적으로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아이를 돌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저출산의 극복을 위해 국가의 역할 강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한 역할에 불과할 뿐,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변하지 않으면 여성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는 어렵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이제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남성의 문제인 것이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프랑스편> 특별취재팀:
오연호 대표(단장),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편집 자문위원), 손병관 남소연 앤드류 그루엔 (이상 상근기자) 전진한 안소민 김영숙 진민정(이상 시민기자)
#유러피언드림 #저출산 #프랑스 #맞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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