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소리에도 깜짝 놀라는 생존자, 군 생활 가능할까?

46명 해군 2함대 사령부 복귀... 전문가 "참사 기억 환기시키지 말아야"

등록 2010.04.09 20:16수정 2010.04.0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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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사건 발생 13일만인 7일 오전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천안함 침몰 당시 상황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사건 발생 13일만인 7일 오전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천안함 침몰 당시 상황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여러) 생존 장병들은 지금 쇠 부딪히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만 들어도 깜짝 놀라는 안타까운 상태라고 들었다."

이정국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는 국군수도병원 의사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전했다. 생존 장병들이 받은 정신적 충격을 가늠할 수 있는 이 말은 8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실종자 가족들은 다른 누구보다 생존 장병들의 건강을 크게 염려하고 있다.

천안함에서 생존한 장병은 모두 58명. 최원일 함장(중령)을 비롯해 소령 1명, 대위 2명, 중위 3명, 부사관 37명 그리고 사병이 14명이다. 이들 중 46명은 7일 오후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로 복귀했다. 12명은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부대로 복귀한 부사관과 사병 중 39명은 8일 저녁 실종자 가족들과 만났다. 전날 기자회견에 이은 '강행군'이었다. 함선 침몰이라는 재난 현장에서 구조된 장병들은 앞으로 정상적인 군 복무를 할 수 있을까?

물 흐르는 소리에도 놀라는 생존 장병, 군 생활 지속 가능할까?

해군 2함대 사령부 안팎에서는 생존 장병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동료 병사 46명 실종이라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이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역사를 보면 종종 현재가 보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지난 2005년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GP 총기난사 사건을 보자. 당시 사고로 육군 8명이 숨졌다. 생존자는 28명이었다. 이들 중 16명은 사고 발생 6개월도 안 돼 의병 전역을 신청했고, 이중 13명이 제대했다.


생존자 28명 중 만기 제대한 4명을 제외하면 50% 이상이 의병 제대를 한 셈이다. 의병 제대를 했다고 이들의 고통이 끝난 건 아니었다. 상당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을 겪었다.

 경기도 연천 최전방부대 GP총기난사로 사망한 8명의 병사들의 합동영결식이 2005년 6월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유가족과 동료부대원들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고인들의 동료병사들이 영결식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후배병사의 눈물을 고참이 닦아주고 있다.(자료 사진)
경기도 연천 최전방부대 GP총기난사로 사망한 8명의 병사들의 합동영결식이 2005년 6월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유가족과 동료부대원들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고인들의 동료병사들이 영결식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후배병사의 눈물을 고참이 닦아주고 있다.(자료 사진)오마이뉴스 권우성

생존자 천아무개씨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에만 잠을 자며, 건망증이 심해지고 청력도 떨어지는" 증세로 제대 후에도 병원 치료를 받았다. 천씨는 치료를 위해 학교 복학도 뒤로 미뤘다.


사고 당시 상병이었던 S씨의 모친은 2005년 12월 <매일경제>와 한 인터뷰에서 "(아들이) 제대 후에도 약 없이는 잠을 못 자고 대인기피증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군 병원에서 몇 번 자해를 하더니 제대 후에도 자해 시도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통은 만기 제대한 이들에게도 찾아왔다. 만기 제대한 신 아무개씨는 밤에 잠을 못 자고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불안 증세를 겪었다. 신씨는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한동안 술과 담배에 의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취업 후 불이익을 받을까 두렵고, 군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기 위해 고통을 참고 만기 제대를 선택한 이들도 있었다.

2005년 GP 총기난사 생존자 50% 이상이 의병 전역

그렇다면 2명 사망을 확인했고, 44명이 여전히 실종 상태에 있는 천안함 침몰 사건은 2005년 GP 총기난사 사건에 비해 충격이 덜한 참사일까?

국방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처참한 살인 현장을 직접 겪었던 GP 총기난사 사건과 천안함 침몰 사건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천안함 침몰이 참사의 정도가 약하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정동철 해암병원 원장(신경정신과 전문의)은 "충격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신적 충격으로 따지면) 천안함 침몰은 GP 총기난사 사건에 비해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다"며 "오히려 큰 사회적 이슈의 정도를 봤을 때 천안함 생존자들은 더 장기적인 정신적 자극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8일 오후 경기 평택 해군2함대 정비지구 식당에서 천안함 생존 장병 40여명과 실종자 가족 5~60여명이 만난 가운데 한 실종자 어머니가 생존 장병을 껴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8일 오후 경기 평택 해군2함대 정비지구 식당에서 천안함 생존 장병 40여명과 실종자 가족 5~60여명이 만난 가운데 한 실종자 어머니가 생존 장병을 껴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뉴시스

이어 정 원장은 "엄청난 사건을 겪은 사람은 불안, 우울, 초조함, 패닉 등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며 "군 복무는 특성상 일반 직업에 비해 위험 상황에 대한 노출이 많은 만큼, 참사를 겪은 사람에게 당시 상황을 연상시키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생존 장병에게 참사 기억 환기 시키면 안 돼... 사회가 도와야"

또 정 원장은 "생존 장병들은 안 그래도 '나만 살아 돌아와 미안하다'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며 "사회가 자꾸 생존자들에게 사고 당시 상황을 묻거나 기억을 환기시키면 그들은 더욱 큰 슬픔을 느낄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현재 국방부는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12명 중 절반은 정신적 충격을 완화하는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부대로 복귀한 46명 중 상당수는 의무대에서 상담 치료 등을 받고 있다.

해군 2함대 사령부 쪽은 "아직 의병 전역을 신청한 장병은 없다"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상담을 진행할 계획이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는 장병이 나오면 절차에 따라 의병 전역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생사를 넘나든 생존 장병들은 다시 험난한 고개를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 원장은 "사회가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안함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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