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에서 지난 31일 민주당에 제출한 초계함 침몰 관련 상황보고.
전병헌 의원 블로그
사망한 군인에 대한 보상금 수준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제정된 군인연금법 시행령의 사망 보상금 지급규정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베트남 파병으로 많은 군인들이 전사하자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우려, 교전 중 사망은 공무 중 사망한 것으로 처리하고 사망보상금은 사망 직전 받았던 월급의 36배로 못박아 국가로 하여금 그 이상 지급할 수 없도록 했다.
이 규정은 지난 2004년 1월에야 개정됐다. 지난 2002년 서해교전을 겪은 참여정부는 군인연금법 시행령을 개정, 적과의 교전과정에서 전사한 군 장병의 유족들이 최고 2억 원의 사망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연금 대상자인 부사관 이상 간부에 대해서는 보상금을 높였으나 병들의 경우는 보상 액수면에서 눈에 띄게 개선된 점이 없는 상태다.
이러한 지적이 일자 최근 국방부는 뒤늦게 사병의 사망보상금을 1억 원 수준으로 인상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보상금과는 별도로 군내 간부와 군무원들을 대상으로 성금을 모아 희생자 가족에게 5천만 원씩 전달할 계획도 내놓았다.
또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천안함 실종자의 경우 지난해 12월 개정된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전사자'로 처리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전사자'로 처리될 경우 보상금은 대폭 상승해 병사가 약 2억 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해 3656만 원을 보상받았던 다른 군 사망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결국 이런 일회성 대책이 사망한 군인에 대해 국가가 책임지는 형태의 근본적인 보상책이 되기는 사실상 어려워, 일각에서는 천안함 사고로 인해 악화된 국민여론 무마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있다.
일부 시민은 국가가 군인 사망에 대한 진상규명도 없이 국민성금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진석씨는 "어제 보니까 KBS에서 천안함 국민성금 모금하더라"며 "도대체 이 나라는 국민성금 없으면 보상이고 뭐고 없는 나라냐"고 꼬집었다.
실제로 지난 2002년 벌어졌던 서해교전의 경우, 전사한 6명의 장병에게 3억5천여만 원의 보상금이 전달되었지만 그 중 대부분은 국민성금이었다. 당시 고 윤영하 소령에게 지급된 국가 보상은 5천6백여만 원, 병사에게 지급된 국가 보상은 3천1백만 원에서 3천3백만 원 사이에 불과했다.
헌법 29조, 정부 잘못했어도 배상 책임은 없다? 적은 국가 보상금보다 더 큰 문제는 군인이 국가의 실수나 잘못으로 사망한 경우에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헌법 29조 2항인 국가배상청구 조항에 따르면 군인이나 경찰 공무원 등은 국가에게 받은 손해에 대해 법률이 정하는 보상 이외의 배상은 청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한 국가배상법 2조에서도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또는 향토예비군이 공무집행 중 전사·순직 또는 공적인 상해를 입은 경우에 본인 또는 그 유족이 다른 법령의 규정에 의해 재해보상금·유족연금·상이연금 등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때에는 (별도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천안함 실종자들의 경우, 이 두 가지 법 조항 때문에 차후 천안함 침몰이 선박 노후 등 국가의 책임으로 밝혀지더라도 국가를 상대로 별도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셈이다. 지난 2005년 경기도 최전방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의 경우 사망자들의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고, 지난 1993년에는 경기도 연천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동원 예비군 19명이 사망한 사건에서도 유가족의 배상청구가 기각된 바 있다.
왜 이런 법 조항이 만들어진걸까. 헌법학자들은 지난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유신헌법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시 월남전에 참전해 사망했거나 다친 군인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내는 손해배상청구 건수가 급증하자 배상 책임을 피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했다는 것이다.
전광석 연세대 법학과 교수는 "군인의 국가배상청구를 제한한 헌법 29조 2항은 평등권과 국가배상청구권 등의 헌법 이념에 어긋나는 조항"이라며 "헌법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헌법 29조 2항에 대해서)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29조 2항이 누구나 문제점을 지적하는 '헌법 개정 0 순위'로 꼽히는 조항이지만 당장은 누구도 손 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문제의 헌법 29조 2항은 헌법 조항이기 때문에 개헌을 하는 방법 이외에는 고치거나 삭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