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지원금 '0원'...대학 등록금 다 어디 쓰나

대학문화의 꽃 '동아리', 학교의 지원 외면으로 '고사' 위기

등록 2011.10.07 14:30수정 2011.10.0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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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 곳곳에는 부원을 모집하는 포스터로 가득 찬다. ⓒ 박가영


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화려한 대학생활을 꿈꾼 적이 있을 것이다. 공부하기 싫어 몸을 비비 꼬는 학생들에게 '대학만 가면~'으로 시작하는 선생님의 구슬림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학교 축제며 개강파티에도 가보고, 캠퍼스 커플이 되어 연애도 해봐야지! 게다가 중·고등학교 시절 즐겨보던 '청춘 시트콤'은 학생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펴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밴드부 활동을 하는 주인공들이었다. 공부 외에도 몰두할 다른 것이 있다니, '대학 동아리'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러나 그런 동아리들이 최근 위기를 겪고 있다. 동아리 활동에 관심을 두지 않는 학생들도 한 원인이지만, 그보다 더 큰 타격은 학교 측의 지원이 미비한 데서 비롯된다. 대학 동아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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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닥다닥 붙어있는 동아리방.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아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 박가영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경희대학교. 동아리연합회 회장 서욱남(경영 07)씨를 만났다. 경희대학교에 등록된 동아리는 총 53개. 여기에 기타 소모임이나 단과대 동아리를 합치면 그 수는 80개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

동아리 지원금으로 대략 얼마 정도 받고 있냐고 물으니 6300만 원을 지원받는다고 말한다. 생각 외로 많은 금액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그가 손사래를 친다. 전체 금액 중에서 3300만 원은 회장단 및 임원들의 장학금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실제로 동아리들에게 전달되는 금액은 얼마 되지 않는단다.

냉난방 시설 없어 여름·겨울엔 동아리 활동 중단

동아리 지원금을 나누는 기준은 분과별로 다르다. 학술·종교분과의 경우 한 학기당 15만 원, 공연분과의 경우 30~35만 원이며 추가 지급이 가능하긴 하지만 많지 않은 수준이라고 전한다. 그는 "평균적으로 동아리 하나가 한 학기에 30만 원을 받는데, 따져보면 한 달 5만 원으로 운영해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악기 등의 비품을 수리하거나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동아리방, 학생회관 등 자치공간에 대해서는 만족하는지 물으니 "학생회관이 오래되어 불편하다. 대학이 새 건물은 많이 짓는데 학생회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단과대 풍물패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종원(한의 09)씨는 "1년에 10만 원을 지원받는데 이 돈으로는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또 방음 시설이 형편없어 제대로 연습하기도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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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방 내 전열기구 사용금지에 대한 안내문. ⓒ 박가영


사정은 중앙대학교와 성신여자대학교도 마찬가지. 먼저 중앙대에는 72개의 동아리가 있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과는 달리 재정적으로 힘들기는 다른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공연분과 활동을 하고 있는 조영진(전기전자공학 10)씨는 "한 학기에 25만 원을 지원받는데 공연을 올리려면 이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지원금만으로는 부족하여 (졸업한) 선배들이 공연비를 따로 챙겨줄 정도"라고 밝혔다.

성신여대는 상황이 더 열악하다. 지원금이 아예 없다. 오랫동안 동아리연합회와 학교가 마찰을 빚어왔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들만 이중고를 겪는 셈이다. 공연분과 소속의 한 학생은 "지원금이 아예 없으니 공연을 올리거나 행사가 있을 때는 인근 상가에 찾아가 공연비 협찬을 부탁한다. 이 과정이 가장 힘들다"며, 자치공간과 관련된 질문에는 "방음이 안 되고, 마땅히 연습할 만한 공간이 없다"고 대답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냐는 물음에 "한 번은 악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시끄럽다며 주민 민원이 들어와 죄송스러웠다. 이런 문제는 학생만 닦달할 것이 아니라 방음시설을 갖춘 연습실을 마련해주어야 해결된다"고 말했다.

냉·난방 문제 역시 동아리방의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여름·겨울에는 정상적인 동아리 활동을 하기 힘들 정도다. 자칫 화재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전열기에 의존해 겨울을 나거나 아예 활동을 중단하는 사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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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8개 대학의 동아리연합회를 통해 알아본 동아리 지원 현황. ⓒ 박가영


서울 8개 대학 평균 동아리 지원금 30만 원...성신여대는 '0원'

그 외에도 성공회대, 숙명여대, 광운대 등 서울 시내 대학들의 동아리 지원 실태를 각 대학 동아리연합회를 통해 알아보았다. 모두 8개 대학의 동아리 지원금은 평균 30만 원 정도였고, 학생 자치공간 만족도에 대해서는 대부분 '불만족' 또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동덕여대의 경우 34개의 동아리가 30개 동아리방을 쓰기 때문에 동아리 수에 비례하여 공간이 부족하다고 했고, 그 크기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때때로 동아리 사이에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숙명여대는 상황이 더 여의치 않았다. 최대 3개 동아리가 1개 방을 나눠 쓰는 경우도 있고, 난방시설은 낡은 라디에이터 수증기를 이용한 중앙난방을, 냉방 시설은 아예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동아리연합회 회장 최보람(경영 08)씨는 "동아리연합회에서 요구하여 올해 처음으로 학교에서 동아리방 점검을 다니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만족도는 매우 낮은 상태"라고 전해왔다. 또 학생회관 건물의 노후화를 지적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성공회대 동아리연합회 회장 박성업(사회과학부 09)씨 역시 "공연예술 동아리방인데도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 또 동아리 특성에 맞는 시설이나 장비는 대부분 회원들의 사비로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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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의 한 동아리방. 장구가 찢어졌지만 손 쓸 수가 없어 방치해둔 상태다. ⓒ 박가영


학생들 무관심과 대학의 지원 외면으로 '이중고' 

한국대학생문화연대의 박현서(이화여대 법학 06)씨는 대학 동아리들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이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동아리가 대학사회에서 가지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공동체를 중시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학생회의 힘이 많이 약화된 상태다. 또 학생들은 대학생활을 개인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대학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그녀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자신의 관심사와 요구를 가지고 공동체 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곳이 동아리다. 동아리를 통해서 대학 사회 전반의 문화를 바꿀 수 있고, 그것은 곧 한국 사회의 미래를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혹자는 동아리가 무엇 때문에 필요하냐고 묻는다. 스펙 쌓기에 몰두하여 더 이상 동아리 활동에 관심을 갖지 않는 학생들, 오히려 그런 것에 눈 돌릴 틈이 어디 있느냐며 면박을 주는 분들을 심심치 않게 본 터라 취재를 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직접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의 생각은 달랐다. 남들이 무엇이라고 하건 '동아리'는 대학에서의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첫 걸음이라 굳게 믿는 그들. 또, 동아리는 학생들의 열정을 분출하고 다양한 관심사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대학문화의 한 부분을 맡고 있는 대학 동아리들이 점점 힘을 잃게 된다면 '대학의 학원화'가 가속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것이 바로 대학 동아리가 앞으로도 건재해야 할 이유다.

덧붙이는 글 | 박가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박가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학문화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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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1기로 활동했습니다. 사람과 영화가 좋습니다. 이상은 영화, 현실은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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