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지난해 5월 21일 한·중·일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으로 축국하기 위해 서울공항에 마련된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청와대
2012 프로야구 개막전을 보면서 올해는 누가 타격왕을 할까 생각하다가 나는 생뚱맞게도 문득 '5할 대통령'이 떠올랐다. "MB는 입만 열면 절반은 남 탓이고 절반은 거짓말"이라고 하던 어느 지인은 MB를 '5할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4할 타자와 5할 대통령은 그 어원이 전혀 다르지만, 확률적으로 대단히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이라는 면에서는 똑같다.
도올 김용옥은 최근 인기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MB를 일러 "단군 이래 이런 지도자는 없었다", "비교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라고 했었는데, 어쩌면 5할 대통령은 확률적으로 4할 타자가 아니라 5할 타자에 견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MB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이런 대통령은 처음 봤다"는 말을 요즘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이른바 '고소영 내각'과 공기업 낙하산 인사에서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 언론장악, 여론통제, 노무현 서거, 4대강 사업, 파탄 난 남북관계와 대중외교, 파탄 난 민생경제, 내곡동 사건, 여전히 의혹투성이인 BBK, 인천공항 및 KTX 민영화시도, 외교부의 주가조작, FTA 날치기,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도 더 심각한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최소한 하야나 탄핵사유에 해당하는)에 이르기까지.
불과 4년 안에 이런 엄청난 일들을 용감하게 다 해치운 지도자의 사례를 찾기는 정말 어려울 듯하다. 확률적으로 따져 보면 정말로 '5할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 것 같다. 불행하게도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시름과 걱정은 늘어만 갔다. 4할 타자는 국민들에게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을 주지만 5할 대통령은 불행과 슬픔과 고통만 안겨주었다.
퇴출과 응징 없인 다시 또 5할 대통령 탄생한다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추적해보면 5할 대통령이 출현한 원인 혹은 재림할 확률을 낮출 방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굴드에 따르면 4할 타자가 없어진 주된 이유는 상향평준화에 의한 변이의 감소다. 민주공화국을 세운 지 벌써 60년도 훨씬 넘었지만 한국의 정치 생태계를 돌아보면 굴드가 제시한 그림 (b)보다는 아쉽게도 (a)에 훨씬 가까워 보인다. 물론 그동안 한국정치나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역사의 물줄기가 거꾸로 흐를 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4.19혁명이나 87년 6월 항쟁으로 본래의 가던 길로 되돌려놓았고 그 결과 정치인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MB정권이 들어선 뒤의 한국사회의 변화를 돌아보면 여전히 정치생태계의 '변이의 폭'이 대단히 넓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례로 지난 정부에서는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 혹은 논문표절 의혹만으로도 고위 공직자 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했지만 MB정부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출세의 필요조건이었다.
지금 선거판을 보더라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나 제1야당의 경우 혁신적인 인적청산과 개혁공천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상향평준화가 안착되지 않으면 이처럼 한두 번의 부침으로도 갈지자로 크게 퇴행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생태계라면 또 다시 5할 대통령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프로야구에서는 공정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수준이하의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걸러진다. 야구와 정치가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이게 아닐까 싶다. 일단 '공정한 경쟁'부터가 불가능하다. 편파성으로 말하자면 역사와 전통의 조중동이 아직 건재하고 지금은 '점령당한' 인터넷 포털과 '낙하산'들이 장악한 방송사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중립적이라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이번 총선관련 보도를 보면 공정한 경쟁을 통한 공정한 퇴출은 요원해 보인다. 일례로 명백하게 선거법을 위반(일명 '카퍼레이드 사건')한 박근혜나 손수조의 경우 선관위가 나서서 억지논리로 변호하는가 하면 최소한의 사과를 요구하는 언론도 없다. 야구로 치자면 심판이 편파판정을 일삼고 중계방송은 그 화면을 내보내지도 않는 상황이다. 진보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가혹하면서도 보수에게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니던가.
'퇴출과 응징'이 생태계의 상향평준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한 가지 유력한 수단임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민주주의의 장점은 위대한 지도자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기보다 5할 대통령을 선택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아닐까.
국민들의 비장의 무기 '투표', 잘 쓰면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