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통령 처음"...또 볼 일은 없겠지?

[게릴라칼럼] 사라진 4할 타자와 5할 대통령 등장

등록 2012.04.09 16:21수정 2012.04.09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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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최근 은퇴한 이종범 선수
최근 은퇴한 이종범 선수KIA 타이거즈

기다리고 기다리던 프로야구가 지난 7일 개막했다. 승부조작 파문으로 얼룩이 지긴 했지만 시범경기에 역대 최다 관중이 몰린 것을 보면 올 시즌에도 프로야구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야구는 대표적인 기록경기라서 통계나 숫자에 관심을 가지고 보면 그 재미가 배가된다. 타자의 능력을 측정하는 숫자 중에 대표적인 것이 타율이다. 타율은 타격에 나선 횟수(타수)에 대한 안타수의 비율이다(타율=안타수/타수). 한 시즌 타율이 가장 높은 타자는 타격왕의 영예를 얻는다. 지난해(2011년)의 타격왕은 자이언츠의 이대호 선수로 타율이 3할5푼7리(=0.357)였다. 열 번 타격에 나서면 약 3.6번은 안타를 쳤다는 얘기이다.

보통 타율이 3할 대를 유지하면 대단히 우수한 타자로 평가받는다. 한편 4할 대는 타자들에게 꿈의 타율로 여겨진다. 30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4할 타자는 프로야구 원년(1982년)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였던 백인천이 유일하다. 그의 타율은 4할1푼2리였다. 얼마 전 은퇴한 이종범은 1994년 3할9푼3리의 타율을 기록한 바 있다. 당시 설사만 아니었다면 4할 달성은 무난했을 거라는 후일담이 우리를 더욱 아쉽게 만든다.

140년이 다 돼가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총 28회에 걸쳐 4할 대의 타자가 타격왕을 차지했다. 1920년대까지는 4할 타자가 드물지 않았다. 그러다가 1941년 테드 윌리엄스가 4할6리의 타율을 기록한 뒤, 아직까지도 윌리엄스는 마지막 4할 타자로 남아 있다.

꿈의 타율 4할... 왜 4할 타자는 사라졌을까

왜 4할 타자가 사라졌을까? 이 질문은 대부분의 야구 전문가들이나 관계자들, 그리고 팬들의 중요한 의문사항 가운데 하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 만큼 숱한 설명들이 난무하였다. 투수의 투구나 수비역량의 발전, 타격기량의 상대적 퇴보, 구단의 관리능력 향상 등이 주된 이유로 꼽혔다.

4할 타자의 미스터리를 가장 창의적으로 설명한 인물은 뜻밖에도 미국의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였다. 그는 자신의 역작 <풀하우스>(1996)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은 타자들의 기량이 퇴보한 탓이 아니라 오히려 전반적인 타격능력의 향상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굴드의 설명은 다음 그림으로 요약할 수 있다.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 굴드는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위의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타자들의 실력이 전체적으로 향상되었고 평균을 중심으로 한 변이가 줄어듦에 따라 4할 타자의 존재확률이 낮아졌다.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굴드는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위의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타자들의 실력이 전체적으로 향상되었고 평균을 중심으로 한 변이가 줄어듦에 따라 4할 타자의 존재확률이 낮아졌다.이종필

나는 위 그림과 굴드의 설명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첫째, 타자들의 타격능력은 나날이 향상되어 평균적으로 인간의 한계에 더 많이 다가가 있다.


둘째, 투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들(투수 마운드의 위치조정, 스트라이크 존의 변경, 혹은 여타의 규칙 변경 등) 덕분에 평균타율은 2할6푼 수준을 항상 유지하게 되었다.

셋째, 상향평준화된 타자들의 타율은 평균타율 중심으로 좁게 분포하게 되었다(인간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타자들의 능력이 향상되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넷째, 그 결과 4할 타자가 존재할 수 있는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굴드는 역대 메이저리그의 통계자료를 이용한 다양한 분석을 통해 위 주장들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했다. 상향평준화에 의한 변이의 감소. 한 마디로 말하면 그렇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구구단 실력은 천차만별이라서 구구단에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의미가 있지만, 고등학생들의 구구단 실력은 대단히 상향평준화 되어 있어서 구구단 천재를 뽑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것과도 같다.

4년 동안 엄청난 일들 다 해치운 5할 대통령 이명박

 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지난해 5월 21일 한·중·일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으로 축국하기 위해 서울공항에 마련된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지난해 5월 21일 한·중·일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으로 축국하기 위해 서울공항에 마련된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청와대

2012 프로야구 개막전을 보면서 올해는 누가 타격왕을 할까 생각하다가 나는 생뚱맞게도 문득 '5할 대통령'이 떠올랐다. "MB는 입만 열면 절반은 남 탓이고 절반은 거짓말"이라고 하던 어느 지인은 MB를 '5할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4할 타자와 5할 대통령은 그 어원이 전혀 다르지만, 확률적으로 대단히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이라는 면에서는 똑같다.

도올 김용옥은 최근 인기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MB를 일러 "단군 이래 이런 지도자는 없었다", "비교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라고 했었는데, 어쩌면 5할 대통령은 확률적으로 4할 타자가 아니라 5할 타자에 견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MB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이런 대통령은 처음 봤다"는 말을 요즘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이른바 '고소영 내각'과 공기업 낙하산 인사에서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 언론장악, 여론통제, 노무현 서거, 4대강 사업, 파탄 난 남북관계와 대중외교, 파탄 난 민생경제, 내곡동 사건, 여전히 의혹투성이인 BBK, 인천공항 및 KTX 민영화시도, 외교부의 주가조작, FTA 날치기,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도 더 심각한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최소한 하야나 탄핵사유에 해당하는)에 이르기까지.

불과 4년 안에 이런 엄청난 일들을 용감하게 다 해치운 지도자의 사례를 찾기는 정말 어려울 듯하다. 확률적으로 따져 보면 정말로 '5할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 것 같다. 불행하게도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시름과 걱정은 늘어만 갔다. 4할 타자는 국민들에게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을 주지만 5할 대통령은 불행과 슬픔과 고통만 안겨주었다.

퇴출과 응징 없인 다시 또 5할 대통령 탄생한다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추적해보면 5할 대통령이 출현한 원인 혹은 재림할 확률을 낮출 방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굴드에 따르면 4할 타자가 없어진 주된 이유는 상향평준화에 의한 변이의 감소다. 민주공화국을 세운 지 벌써 60년도 훨씬 넘었지만 한국의 정치 생태계를 돌아보면 굴드가 제시한 그림 (b)보다는 아쉽게도 (a)에 훨씬 가까워 보인다. 물론 그동안 한국정치나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역사의 물줄기가 거꾸로 흐를 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4.19혁명이나 87년 6월 항쟁으로 본래의 가던 길로 되돌려놓았고 그 결과 정치인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MB정권이 들어선 뒤의 한국사회의 변화를 돌아보면 여전히 정치생태계의 '변이의 폭'이 대단히 넓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례로 지난 정부에서는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 혹은 논문표절 의혹만으로도 고위 공직자 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했지만 MB정부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출세의 필요조건이었다.

지금 선거판을 보더라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나 제1야당의 경우 혁신적인 인적청산과 개혁공천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상향평준화가 안착되지 않으면 이처럼 한두 번의 부침으로도 갈지자로 크게 퇴행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생태계라면 또 다시 5할 대통령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프로야구에서는 공정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수준이하의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걸러진다. 야구와 정치가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이게 아닐까 싶다. 일단 '공정한 경쟁'부터가 불가능하다. 편파성으로 말하자면 역사와 전통의 조중동이 아직 건재하고 지금은 '점령당한' 인터넷 포털과 '낙하산'들이 장악한 방송사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중립적이라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이번 총선관련 보도를 보면 공정한 경쟁을 통한 공정한 퇴출은 요원해 보인다. 일례로 명백하게 선거법을 위반(일명 '카퍼레이드 사건')한 박근혜나 손수조의 경우 선관위가 나서서 억지논리로 변호하는가 하면 최소한의 사과를 요구하는 언론도 없다. 야구로 치자면 심판이 편파판정을 일삼고 중계방송은 그 화면을 내보내지도 않는 상황이다. 진보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가혹하면서도 보수에게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니던가.

'퇴출과 응징'이 생태계의 상향평준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한 가지 유력한 수단임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민주주의의 장점은 위대한 지도자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기보다 5할 대통령을 선택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아닐까.

국민들의 비장의 무기 '투표', 잘 쓰면 바꿀 수 있다

 2008년 6월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 때 모습.
2008년 6월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 때 모습. 권우성

지금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백인천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열심히 추적하고 있다. 트위터로 모집한 자발적 연구자들과 함께 집단작업을 진행 중이며, 백인천의 타율 0.412를 기념해 오는 4월 12일 그 결과가 나온다고 하니 무척 기다려진다. 한국 프로야구에도 굴드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이 될지 혹은 다른 원인이 드러날지 사뭇 궁금해진다.

언젠가는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들이 굴드의 방법론을 빌려 한국의 5할 대통령을 연구할 때가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쯤이면 5할 대통령이 이제 사라졌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될까?

한국 프로야구는 출범한 지 30년도 채 안 돼서 올림픽 금메달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세계를 재패하며 국민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 주었다. 정치에 관한 한, 우리 정치가 야구처럼 세계 1, 2등까지 되기를 욕심 부리는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저 상식과 원칙이 통하고 다른 사회분야가 발전하고 성숙한 만큼만 되었으면, 혹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다른 나라들 수준만큼만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을 뿐이다.

천만다행으로 우리에게는 투표라는 강력한 수단이 있다. 이 비장의 무기를 잘 쓰면 함량미달의 정치인은 곧바로 퇴출된다. 매우 드물게 사용할 수밖에 없어 좀 더디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퇴출과 응징'에 대한 확실하고도 압도적인 주권자의 의사가 표시된다면 건전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쌓이면 앞으로는 5할 대통령이 등장할 가능성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5할 대통령에 관한 한, 적어도 나는 굴드의 이론을 믿는다.

때마침 그 심판의 날이 머지않았다.
#총선 #굴드 #4할 타자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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