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은 다 썩었다"...또 속지 말자

[게릴라칼럼] 정치 혐오한다면, 정치권 향해 종이돌을 던져라

등록 2012.04.10 08:41수정 2012.04.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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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결국 총선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18대 총선은 누가 뭐라 해도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의 지난 4년에 대한 평가이자 대선 전초전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18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들불처럼 번져간 촛불의 물결에 동참했던 사람이라면, 4년 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고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총선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정국은 이상스레 요동치고 있다. 여러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또 일으켜지면서,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한 평가 선거라는 총선 의미가 흔들리고 있다.

모호해진 정권심판, MB에 대한 면역효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008년 6월 9일 저녁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제33차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008년 6월 9일 저녁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제33차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유성호

총선의 정권 심판적 성격이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일종의 면역효과의 영향이다. 이명박 정부가 등장한 직후만 해도, 국민들은 정부의 수준이 아니라 국민의 수준에서 정권을 평가했다. 2008년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그토록 들불처럼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의사에 대단히 민감할 것이라는, 더 정확하게는 어떤 정부라도 민주정부라면 국민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의사표현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근거 없는 기대는 대단히 파격적인 방식으로 허물어졌고, 이후에도 국민의 상식을 훌쩍 넘어서는 일들이 뻔뻔하게, 노골적으로 자행되었다. 4년간의 학습효과는 디도스 공격이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증거가 폭로되어도 과거와 같은 분노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만들었다. 상식이 파괴된 상황에서 나타나는 놀람과 분노의 감정보다는, 늘 벌어지고 있던 일의 연장선이라는 무덤덤함이 더 크게 발휘되는 것이다.

둘째로는 반MB정서에 편승한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프레임 전략으로 인한 것이다. 오래 전부터 친이-친박이라는 당내 계파 갈등을 여·야 간 대립에 맞먹는 갈등구조로 대치시킨 결과가 '반MB=반새누리당'이라는 공식을 교란시키는 데 일정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큰 선거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박근혜 위원장이 이명박 정부의 심판자로 프레이밍 되면서, 정부의 실정에 대한 공동 책임을 느끼기는커녕 정권심판의 주체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야권의 자승자박, 여권의 이슈 흔들기


 '막말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가 8일 오전 서울 공릉동 유세에서 "이번 선거는 김용민 심판이 아닌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이 돼야 한다"며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당부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막말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가 8일 오전 서울 공릉동 유세에서 "이번 선거는 김용민 심판이 아닌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이 돼야 한다"며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당부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남소연

셋째, 민주당 등 야권의 책임도 빼놓을 수 없다. 정권심판의 프레임을 굳힐 수 있었던 초기에는 이해득실 때문에 미적미적 시간을 보냈고, 후보등록일이 다 되어서야 극적인 단일화 협상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단일화 과정에서도 여러 잡음과 논란이 불거지면서 대승적 명분에 상처를 입었고, 새누리당과의 차별성을 희석시킬 정도의 부적절한 공천은 '반MB 이후'에 대한 낙천적 전망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데 실패하게 된 원인을 만들었다. 게다가 잇따른 경선불복은 정권심판이 시대적 명분이라기보다 정치'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설정된 정치구호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강화시켜 버렸다.

마지막으로, 총선의 의미를 교란시키는 미시적 사건이 침소봉대되면서 실상 중요한 문제들은 묻혀버리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지방자치선거가 지역단위의 전망을 둘러싼 경쟁이라면, 총선은 중앙이나 전국적 범위의 의제가 주요 화두가 된다. 그러나 선거과정에서는 실상 이 둘이 모호하게 결합하면서 지자체 선거가 정권 심판의 성격으로 진행 되거나 총선이 오로지 지역의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치부되는 현상이 종종 나타난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뉴타운 개발'이라는 지역적 의제가 관통했듯이, 이번 선거 또한 지역의제나 개별적 이슈에 매몰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총선의 의미를 어느 순간 잊어버린 채, 누군가가 그려놓은 협소한 프레임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이번 선거의 경우, 대표적인 사례가 주류 언론이 과거 발언에 대해 십자포화를 쏘아대고 있는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의 경우다. 이는 마치 8년 전, 정동영 의원의 노인 관련 발언을 대통령 탄핵사건과 동급으로 올려놓고 난도질을 해댔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미시적 사건은 해당 선거의 시대적 의미를 은폐하려는 이들에게 억지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는 계기로 활용되어 왔다.

시대적 의미 실종된 선거는 냉소주의로 이어져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이번 총선은 지엽적인 쟁점이 전국적 쟁점이 되거나 전국적 의제가 지역의제에 파묻히면서 선거 의미가 실종되고 있다. 정부가 4년 동안 국정을 이끌어온 패러다임에 대한 성찰과 앞으로의 전망이 화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후보의 과거 발언이 전국적 이슈로 등장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반복이 가져오는 가장 참혹한 결과는 냉소주의와 정치무관심의 확산이다. 선거가 우리 삶의 새로운 전망을 설계하기 위한 설렘의 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실수를 평가하는 수준으로 전락해 버린다. 평범한 사람들은 시대적 의미를 놓쳐버린 선거를 '그들(정치꾼들)만의 리그'라며 자신의 삶과 분리해 버리고, '정치는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수용한다. 

4년 전 총선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나타났다. 오로지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 선거였던 대선이 끝나자 뉴타운을 매개로 한 욕망만이 넘실댔던 18대 총선은 국민들의 외면 속에 역대 최저의 투표율(46.1%)을 기록했던 '냉소와 무관심의 선거'였다. 46.1%의 투표율이 말해주는 것은 국민 10명 중 2~3명의 지지만 얻어내면 국민을 대표한다고 떠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는, 지난 4년의 시간이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총선의 시대적 의미 되찾는 것, 결국 유권자의 몫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청와대

총선은 누가 뭐라 해도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시간이며 앞으로 4년 동안 전개될 정치의 폭을 결정짓는 순간이다. 이것은 설령 선거가 지엽적인 문제나 거짓에 현혹되어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어떤 이유로 선택을 했건, 지금의 결정은 향후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지난 4년 동안 우리는 이유가 무엇이었건 절반 이상의 무관심 속에 치러진 선거의 결과를 감내해야 했다. 정치적 권위주의가 복원 되었고, 힘의 논리가 정당성의 논리를 압도했다. 대통령이 장로 출신임에도 마치 불교가 국교가 된 것처럼 온 나라가 사찰 논란이다. 국가의 재산과 공적인 권력이 사유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넘실대도, 그것을 제어할 권력이 없다. 

신자유주의 경쟁만능주의가 약속했던 '저비용-고효율' 사회는 힘과 권력 있는 자들에게는 현실이 되었을지 몰라도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지독스런 '고비용-저효율'의 연속이었다. 과거보다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하고, 더 열심히 일했어도 소득격차는 나날이 벌어졌다. 총선이란, 이런 정치적 결과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어떤 대안적 패러다임을 한국사회에 적용할지를 결정하는 전국적인 정치행위다. 특정 패거리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동참해야할 정치행위다.

무관심과 참여 사이의 격차는 이른바 '박원순 효과'가 잘 보여주고 있다.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에서의 투표운동과 결합된 반값 등록금 운동은 선거 직후 서울시립대의 즉각적인 반값등록금 실현으로 이어졌고, 이번 총선에서도 대부분의 후보가 반값등록금을 약속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조금씩 힘을 합친 정치적 행동은 수조원의 돈이 강바닥을 헤집는 데 쓰이게 만들 수도, 보육비나 등록금 보조금으로 쓰이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정치란 자신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위해서만 힘을 쓰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이전투구를 욕하거나 언론의 편파방송을 탓하기 전에, 유권자가 먼저 이번 총선이 가지는 시대적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 시대적 의미를 잃어버린 선거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국민 자신이다. 따라서 ARS나 RDD 여론조사로 드러나지 않은 국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권에 전달해야만 한다.

정치학자 쉐보르스키는 이런 의미에서 투표용지를 유권자가 정치권에 던지는 '종이돌(paper stone)'이라 불렀다. 유권자 누구에게나 한 개의 종이돌이 주어진다. 지난 4년이 불만이었다면 종이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종이돌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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