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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대의 위기의 순간이 너무도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나의 성격상 한번 이사를 가면, 특별한 사건이 생기지 않으면, 잘 이사를 가질 않고 그 곳에서 최소한 3년이상은 사는 편이다. 지금 충정로의 금화시범아파트에 세들어 산지 2년쯤 되자 집주인이 자신이 들어와 살 것이라면서 집을 비워달라고 하였다. 처음 계약할 땐 아파트가 헐릴 때까지만 산다고 계약을 했다. 아파트가 아직 헐리지도 않았는데...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답답했다. 처음 약속과 다르게 나온 주인이 야속했다. 이사는 하긴 해야하는데 때마침 빙판길에서 넘어져 다친 허리가 문제였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20만원짜리 아파트는 방이 3개, 거실, 작은화장실겸 욕실, 다락같은 공간 두곳이 있었다. 아파트 계단의 구석 공간들. 비록 오래되어서 낡은 아파트이긴 하나 물건은 많이 재워 둘 수가 있어서 좋았다. 재활용품으로 꽃을 만드는 일을 하는 나의 집은 만든 꽃들이 그 아파트 구석구석에 빼곡히 쌓여 있었다. 여름이면 낡은 아파트라서 장마비에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별별 도구를 다 사용해야만 했다. 플라스틱 큰 통에 빗물을 받아서 바가지로 떠서 싱크대에다 퍼붓기도 많이 했다. 겨울이면 빈 집이 많은 곳이라서 여기저기서 수도관이 터져서 계단이 빙판이 되어 걸어 다니기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주인이 같이 살지 않았기에 세입자이긴 했어도 주인처럼 살았다. 물도 아껴쓰니 수도요금도 아주 적게 나와서, 거의 기본요금 수준도 안될 정도로 요금이 나왔다. 기름 보일러를 안 쓰고 전기장판이 아닌 작은 장판으로 된 의료기구로 대신해서 쓰니 가장 추운 한달도 전기요금이 만원 안팎으로 나왔다. 아파트가 4층이라서 이사 올 때도 무척 힘들게 이삿짐을 날랐다. 이젠 그 이삿짐을 4층에서 1층으로 옮겨야만 한다.
이삿짐이라도 다른 집처럼 단촐하고 깔끔한 이삿짐이면, 그래도 이사가 두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한테는 소중한 물건이지만 남들이 보기엔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물건들이다. 심지어 우리가족들조차도.
그 물건들을 대충 정리해서 아랫마을 사우나 근처의 단독주택 지하방을 얻었기에 그리로 일단 이삿짐을 일부분만 옮겼다. 18평 아파트 가득히 있는 나의 짐들을 방한칸과 조그만 보일러실에 두긴 역부족이라서 한달에 30만원하는 콘테이너박스를 얻었다. 그땐 그곳이 비어있었이게 언제든 사람이 들어오면 비워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20만원에 깎아서 얻었다. 그 콘테이너 박스를 얻기 전에 충정로 봉래 초등학교 근처에 5만원짜리 작은창고에도 일단 짐을 분산시켜 옮겨놨다.
봉고차를 여러번 불렀는데 다행히 봉고차아저씨께서 친절하게도 내가 가능한 시간에 옮길 수 있게 도와주셨다. 나의 딸도 엄마가 이사하는데 최대한 비용 이라든가 짐을 나르는데 힘을 아주 많이 보탰다. 올 봄에 분산시킨 이사이긴 하나 세번이나 이사를 한 셈이다. 한 해에 세번의 이사를 하다니.나와 딸은 이삿짐을 다 옮기고나서 몸과 마음이 온통 만신창이가 되었다.
몇개월뒤 약간의 안도의 숨을 쉴때쯤 콘테이너 박스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콘테이너 박스에 이사올 사람이 있으니 짐을 비워 달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전화를 받고나서 덜컥 겁이났고, 너무 두려웠다. 어디서 저 많은 짐을 쌓아 둘 창고나 방을 얻는담.콘테이너 박스를 약 4개월 썼을 때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나는 서대문사거리를 기준으로 해서 창고나 방을 발품을 팔아 샅샅이 찾아다녔다. 창고값이 비싸거나 주인들의 거부로 창고를 얻기에 매우 어려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에 살았던 금화시범아파트 총무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보증금 없이 방을 얻거나 창고를 얻을수는 없느냐고.어디알만한곳 있냐고.총무는 그런집은 없다고 하면서 " 우리집은 안될까? 우리집은?" 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역시 그런집은 금화시범 아파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무님 집은 보증금없이 한달에 10만원 주면 된다고 하여 그 사람이 깐깐해서 힘들긴 하겠지만, 별도리없이 콘테이너 박스의 짐을 총무님 집으로 3분의2 가량은 옮기고, 나머지 무거운 짐은 반지하의 보일러실이 있는 집으로 날랐다.
한 해에 약 4번이나 이사를 한 셈이다. 다시는 이런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든다. 그래도 내 생전에 22살때 미용실을 한 것 말고는 가게같은 콘테이너 박스를 얻은 것은 처음이다. 일반 집은 주인이 자주 나타나 간섭을 하기 쉽다. 그러나 콘테이너 박스는 누군가의 간섭을 받지 않아서 꽤 자유로운 느낌이다. 열쇠만 열고 물건들을 꺼내고, 넣고, 잠그면 되었다.콘테이너를 써본 덕분에 5월17일 신사임당 백일장 수필 제목, 수필 첫머리에 '콘테이너박스는 또 다른 나의 추억의 공간이다' 라는 표현을 해서인지 비록 꼴찌상이긴 하나 입선에 입상도 했던 기억들...
집주인 아줌마는 집에 갔으면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도 방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런것을 원칠 않는다. 보증금이 없이 계약을 하면 주인이 느닷없이 나가라고하면, 힘 없이 낙야 하니 그런것이 싫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에 사니까 나는 가장 싼집에 사는 편이다. 집은 나름 근사하고, 평지에 살고 교통이 아주 편한곳에 살기에 그런것은 꽤 혜택을 보는 셈이다. 다만 우리집 위 2층집이 문제이다. 아이들 아빠가 이혼을 하고 젊은 여자와 살아서 그 가정이 엉망진창이기에 아래층 아까시들도, 나도, 집주인도 그 가정으로 인해 늘 마음이 불쾌하고 걱정이 앞선다. 집주인이 같이 살지 않아서 좋긴하나 세입자들이 원만한 사람들로 구성이 되질 않다보니 낡은 금화 시범아파트 만큼 마음이 풍요롭고 자유롭질 못하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빵집에서 팔다 남은 빵들을 한봉지로 모아 파는 묶은빵은 사먹질 않았다. 뜬금없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왠지 나를 포함한, 내가 사는곳과 도움되지않는 주위 사람들을 한대 묶어 놓은 것 같다는 생각때문에 왠지 기분이 나빠서다.
그래도 사는 날까진 그들과 함께 살아야만 한다. 편하지는 않은 그집... 그래도 그 집안 모두를 위로하려는지 마당에 꽃다홍 나팔꽃이 아침마다 예쁘게 꽃을 활짝 피운다. 나도모르게 " 아구예뻐라, 아구예뻐라"가 절로 입속에서 튀어나온다. 우리의 삶엔 좋은것과 나쁜것이 언제나 어우러 지나 봅니다. 비록 셋방살이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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