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을 욕하고 이건희를 보니...민망하다

[게릴라칼럼] 우리 모두가 '갑-을 폭력'의 공범이다

등록 2013.05.29 14:59수정 2013.05.2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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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대한항공 승무원에게 '진상짓'을 한 임원은 사표를 냈다.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부은 남양유업 직원은 해고되었고, 인턴직원을 성추행한 청와대 대변인은 면직처리됐다. 이 모든 사태가 여론을 뒤흔든 속도만큼이나 재빠르게 수습되었다.

이로써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이제 탑승객들은 승무원을 존경과 감사로 대하기 시작할 것이고, 힘센 '갑'들은 '을'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게 되며, 상사는 권력을 이용해 부하직원을 착취하기를 그만 두고 도울 방안을 고민하게 될까? 그렇게 되리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해자 측은 논란이 일기 무섭게 바짝 엎드려 사과했다. 당연한 일이다. 누가 봐도 잘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론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아, 시민들이 화내는 거 보니 우리가 잘못한 거였구나.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지'.

이런 깨달음이 아니라면, 이번 사건이 변화를 가져오기 어려울 것이다. 나쁜 짓임을 뻔히 알면서 저지른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부 정보를 단속하는 통제력과 여론관리 기술만 교묘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들'과 달리 '우리'는 의로운가?

고개숙인 남양유업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 사장에게 폭언하는 녹취음성이 공개되면서 여론의 거센 비판이 불매운동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중구 브라운스톤  LW컨벤션센터에서 김웅 대표이사와 본부장 이상 간부들이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숙이고 있다.
고개숙인 남양유업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 사장에게 폭언하는 녹취음성이 공개되면서 여론의 거센 비판이 불매운동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중구 브라운스톤 LW컨벤션센터에서 김웅 대표이사와 본부장 이상 간부들이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숙이고 있다.권우성

이제 우리 자신을 살펴보자. 위 사건들이 우리를 분노케 한 이유가 무엇일까? 가해자가 황급히 사과한 이유와 같을 것이다. 누가 봐도 옳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의감에 불타는 국민인 탓에, 약자를 괴롭히는 불의를 그냥 보아 넘기지 못했던 것일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늘 정의로운 국민은 아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불의에 눈감아왔을 뿐 아니라, 직접 나서서 악행에 참여하기도 했다. 우리는 대한항공에 탑승한 포스코 고위인사의 몰상식한 요구, 무례, 폭언, 폭행에 경악했지만, '진상짓'은 일부 권력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실은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의 2011년 설문조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서비스직 종사자 중 폭언으로 고통 받은 사람이 30% 이었고, 무려 40%가 인격을 무시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로 인해 4명 가운데 1 명 이상이 치료가 필요한 중증 혹은 고도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한국의 서비스직 종사자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일반 노동자의 두 배에 달한다.


생계를 무기 삼아 남을 쥐어 짜는 악습은 일부 계층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잇달아 터진 사건의 주역들이 힘있는 사람들이었던 탓에 '그들의 문제'처럼 인식되었을 뿐이다. '적'과 '아군'이 뚜렷이 구분되었기에 손가락질하기도 쉬웠다. 이런 우리의 정의감이 얼마나 허술하게 작동하는지 보자.

지난 5월 초,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소식이 태평양을 건너 한국을 강타했을 무렵, 남양유업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신문과 방송이 두 가지 소식으로 도배된 것은 당연했다. 윤창중 경질, 기자회견, 새로운 혐의 발견 등 핵폭탄급 뉴스가 초를 다투며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조용히 주목 받는 뉴스가 있었다.

'이건희·이부진 부녀, 대학생이 닮고 싶은 최고경영자 1위'

남양유업 본사 앞에 남양유업 제품이 버려져 쌓이고, 상점 입구에 '악덕기업 남양우유 제품을 팔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나붙고,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주식을 팔고 잠적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 때였다. 바로 그 시간에 이건희 회장은 미국을 방문한 대통령과 함께 만찬에 참석하고 있었고, 한국 대학생들에 의해 '닮고싶은 경영자 1위'로 꼽혔다.

대학생들만이 아니다. 며칠 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재벌총수 선호도' 조사에서도 이건희 회장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남양 회장과 삼성 회장의 엇갈린 팔자는 대통령 순방 때 대변인이 성추행을 저지르고 도망 온 것만큼이나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악덕업자'와 '닮고 싶은 경영자'의 차이

남양유업은 욕 먹어 마땅한 일을 했고, 여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남양과 삼성이 받는 대접의 차이는 그다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삼성이 저질러 온 일은 약자를 모욕하고 위협한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은 2008년 태안 기름유출로 수많은 어민들의 삶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절망한 어민 여럿이 목숨을 끊었다. 삼성 반도체와 액정화면 공장에서 암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50명이 넘지만, 삼성은 개인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해 왔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암에 걸린 직원 가운데 오직 2명만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을 뿐이다.

"사람을 소중히 아끼는 삼성이 되길..." 환경운동연합,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킨이(반올림), 경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1월 30일 오전 경기도 동탄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정문앞에서 '불산누출 사고 은폐 규탄과 진상규명 및 대책수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가운데, 한 참석자가 "사람을 소중히 아끼는 삼성이 되길..."이 적힌 마스크를 쓰고 있다. 참석자들은 삼성전자측의 미흡한 초동대처와 재해사실을 은폐하려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5명의 사상자를 발생한 것은 삼성전자의 비인간적인  태도가 빚은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누출된 불산액이 소량이어서 주민 피해는 없다고 삼성전자측은 주장 하지만 인근 일부 초등학교는 개학을 연기하는 등 주민들의 불안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며 명백한 해명과 책임을 요구했다.
"사람을 소중히 아끼는 삼성이 되길..."환경운동연합,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킨이(반올림), 경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1월 30일 오전 경기도 동탄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정문앞에서 '불산누출 사고 은폐 규탄과 진상규명 및 대책수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가운데, 한 참석자가 "사람을 소중히 아끼는 삼성이 되길..."이 적힌 마스크를 쓰고 있다. 참석자들은 삼성전자측의 미흡한 초동대처와 재해사실을 은폐하려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5명의 사상자를 발생한 것은 삼성전자의 비인간적인 태도가 빚은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누출된 불산액이 소량이어서 주민 피해는 없다고 삼성전자측은 주장 하지만 인근 일부 초등학교는 개학을 연기하는 등 주민들의 불안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며 명백한 해명과 책임을 요구했다.권우성

지난 1월에는 삼성반도체 화성공장에서 불산 유출 사고가 났다. 삼성은 시민들은 물론, 직원들에게조차 사고 사실을 숨기며 대피시키지 않았다. 회사측은 10시간이나 불산유출을 방치하다가 사망자가 발행한 뒤에 경찰에 늑장신고를 했다. '알람이 울리지 않을 정도로 극소량이 유출됐다'고 주장했으나, 이후 거짓임이 드러났다.

삼성은 5월에도 똑같은 사고를 냈다. 해명까지도 동일했다. '유출된 불산은 극소량'이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전동수 사장은 사고 대책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몰라요, 나는 돈만 벌면 되잖아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삼성 불매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건희 회장에게 '닮고 싶은 경영자'와 '가장 선호하는 총수'의 영예가 돌아갔다.

더 큰 비난을 받아 마땅할 기업에 우리는 이처럼 관대하다. 우선 불매운동 하기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남양이 싫으면 안 먹거나 다른 회사 제품을 사면 되지만, 삼성을 거부하면 당장 내 삶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불매에 나서기에는 삼성 래미안아파트가 너무 고급스럽고, 갤럭시 폰이 너무 번듯하며, 삼성에 근무하는 가족이 너무 자랑스럽다.

만만한 상대만 골라 손쉬운 분노를 표출하는 것, 이것을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 거대한 악에는 침묵하거나 작은 악만 골라서 비난하는 것이 한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정직해진 국민들?

학교폭력도 마찬가지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학교폭력이 난폭한 청소년 몇 명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학생들을 경쟁 지옥으로 몰아넣고 나서 서로 돕고 배려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학교폭력의 주범은 경쟁교육과 그를 부추기는 소수의 대학과 입시산업,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이다. 경쟁에 매몰된 국민은 다스리기도 쉽다. 서로 치고 싸우기 바쁜 국민들은 단합된 목소리로 국가에 무엇을 요구할 여유도, 그럴 만한 비판의식도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폭력 청소년' 몇 명을 처벌하는 '단죄쇼'를 벌인다.

물론 '그들' 만이 문제는 아니다. 우리 역시 해결책 찾기를 거부하지 않는가. 내 아이만 맞지 않으면 될 뿐, '경쟁교육'이라는 거대하고 골치 아픈 문제와 맞서 싸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 아이가 경쟁에서 앞서가기를 바라면서 입시경쟁에 힘을 보탠다. 국민들이 발벗고 나서서 자식들을 경쟁 속으로 밀어 넣는 데 어떤 정부가 교육제도를 손보려 하겠는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0년 6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제20회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0년 6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제20회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유성호
2010년,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

배임과 조세포탈로 유죄판결을 받은 뒤에 한 말이다.

그의 소망은 벌써 이뤄진 것 같다. 어떤 부도덕한 일을 하든, 돈만 잘 벌면 된다는 본심을 가식 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고 다친 상황에서도 '돈만 잘 벌면 된다'는 말에 초연했던 우리 모습도 그렇거니와, 수조 원 대 비자금과 불법승계로 처벌 받은 사람을 '가장 닮고 싶은 경영자'와 '가장 선호하는 총수'로 꼽지 않았던가.

우리가 존경하는 회장은 '정직해진' 국민들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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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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