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0원 때문에 정년 앞두고 해고, 기가 막힙니다"

[2013 전국투어- 광주전라⑪] 전북지역 최장기 파업, 전북고속 파업 그 후

등록 2013.06.26 17:20수정 2013.06.2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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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6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광주전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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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외버스터미널 유료주차장 한켠에 위치해있는 전북고속 노조사무실. ⓒ 안소민


"기자요? 기자라면 이제 별로 안 반갑습니다."

서운함이 배어나는 목소리였다. 민주노총 전북고속 사무실에 들어서는 기자를 향해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그간 언론으로 겪은 마음고생을 보여주는 듯 했다.

2012년 12월 10일, 전북고속 노조와 사측의 협상이 타결됐다. 2년반 넘게 끌어온 싸움이었다. 전북지역 파업 사상, 이렇듯 긴 파업은 없었다. 2010년 12월 8일, 민주노총 5개 시내버스 회사와 전북고속, 부안의 2개 시내버스 회사 노조 800여 명이 파업에 들어갈 때만해도, 이렇듯 길어질 거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기세좋게 시작했던 파업, 그러나 2011년 4월 30일. 시내버스 노조는 사측과의 잠정합의안을 받아들이면서 파업을 중단했다(잠정합의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시내버스는 그후 2012년 3월, 2차 파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전북고속만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칼바람이 매섭게 불던 2012년 12월 2일. 전북고속측의 정홍근 쟁의부장은 사측의 성실한 임금단체협약교섭(이하 임단협)과 장기파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전주시 덕진동의 종합경기장 망루 위로 올라간다.

대선을 앞둔 마지막 승부수였다. 그리고 열흘 후, 노조를 인정하겠다는 사측의 협상에 따라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전북고속의 파업은 전부 다 끝났다고 믿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소리없는 전쟁은 다시 시작됐다.  

파업,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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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고속 정홍근 쟁의부장. 눈에 보이는 파업은 끝났을 지 모르지만, 아직도 그는 '투쟁' 중이다. ⓒ 안소민


전북고속 노조 정홍근 쟁의부장을 지난 18일, 전북고속 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은 전주시외버스 터미널 유료주차장 한 켠에 위치한 콘테이너 건물이었다. 2012년 12월 12일, 목숨 건 투쟁 끝에 얻어낸 사무실.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벗은 신발을 놓을 공간이 없어, 사무실 내부에 신발을 들여놓아야할 만큼 열악하다. 이 사무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랐던가. 

"사측에서 노조를 인정해줬다고 했는데, 인정해준 게 아니에요. 저희가 얘기한 건 사무실 하나 달라는 것이었어요. 사실, 고속버스 건물 내에도 빈 사무실이 많아요. 그런데 우리한테 그 한 칸도 내줄 수 없대요. 이미 전세 나갔다고 하는데, 지금까지도 비어있어요."

정홍근 부장은 사측이 노조 사무실을 주지않으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곧 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존재를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는 것. 전북고속 측은 "이미 도청에서 중재를 해서 콘테이너에 사무실을 제공한 것인데 이제 와서 문제 될 건 없다"고 강조했다.

정홍근 부장은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을 향한 사측의 차별과 탄압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위험하고 힘든 노선만을 민조노총 조합원에게 떠넘기거나, 노후 버스만을 골라서 배차하는 등 일상의 사소한 것부터 차별을 당한다는 설명이다. 물론 사측에 이에 대해 항의도 했다.

노조의 지적에 대해 전북고속은 "체계가 있는 회사에서 그런 일(차별)은 있을 수 없다. 근무 기간, 무사고 등 실적에 따라서 배치했다. 다만, 민노(민주노총), 한노(한국노총)간의 숙소문제가 서로 불편하니까 감안해서 코스에 따라서 배차를 한 것 뿐이지 일부러 차별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2월에는 버스 요금 3100원을 착복했다는 혐의로, 정년을 목전에 둔 조합원을 해고한 사건도 있었다.

3100원 착복했다며 부당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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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내부에 목판각으로 새겨있는 '민주노총 전국 공공운수노조 전북지역 버스지부 전북고속지회'라는 글자가 뚜렷하다 ⓒ 안소민


"그날도 시외 노선을 뛰고 오는 길인데, 추운 겨울 할머니가 길거리에서 차를 세워달라고 했대요. 추운 날씨에 할머니를 내버려둘 수 없어서 태웠죠. 그런데 할머니가 마침 돈이 부족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기사가 할머니 요금을 대신 내준다고 냈는데 돈통에 깜빡 잊고 못 넣은 거죠. 그런데 나중에 기입장에는 분명 3100원을 포함한 금액을 적었거든요. 나중에 넣야겠다 하면서 못 넣은거죠. 이건 명백한 실수지, 착복이라 보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전북고속에서는 회사 버스비를 착복했다는 혐의로 단칼에 부당해고 했어요."

전북고속은 이와 관련 "현재 소송 중이라 할 말은 없다. 버스업계에서는 현금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착오나 실수였다면, 징계위원회에서 이 점을 충분히 감안했을텐데 해고까지 간 것은 그런 판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현재 민주노총 전북고속 노조 조합원은 32명이다. 지도부 4명과 조합원 26명, 해고자 2명으로 구성돼 있다.

2012년 3월 15일, 남상훈 지부장의 단식투쟁으로 또 한번 힘을 얻는가 싶었는데, 큰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해 7월 14일, 통상임금을 포기한 채, 조합원들은 회사에 복귀했다. 7월 14일, 시점으로 복귀한 조합원 숫자는 총 32명이었다. 2010년 12월에 파업할 때만 해도 전북고속 노조원 숫자는 127명이었다. 

그 중 일부는 회사를 그만두기도 하고, 일부는 노조를 탈퇴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했기 때문이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않는 파업에 모든 걸 걸 순 없었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파업기간 도중, 정홍근 쟁의부장의 소원은 조합원 전체가 일시에 집회 한 번 해보는 것이었다. 파업 현장에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파업 언제 끝나냐'고 되묻는 조합원들을 볼 때마다 답답했다.  

현재 정홍근 쟁의부장과 3명의 지도부는 나머지 조합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한명 당 64만원을 받아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불편하다고 털어놨다.

"지난 2년 반동안 무노동 무임금으로 지낼 때는 최소한 당당하기라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해요. 조합원들이 약 10만원씩 걷어서 우리에게 주는데, 그들도 경제사정이 다 뻔하거든요. 그 돈을 받자니 참 가시방석이에요. 조합원들은 우리를 보면서 '재내들은 언제까지 일 안하고, 우리 돈을 받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이런 식으로 서로가 불신하고 와해되는 게 두려워요."

여기에 더해진 사측의 교묘한 차별과 억압도 참기 힘든 일이다. 아무리 견고한 조직이라 하더라도, 이런 현실 앞에서 계속 싸움을 진행할 수 없다. 정홍근 부장은 이 사실을 염려했다.

"전북고속 파업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요. '우리가 이 쪽 지역의 정서를 너무 몰랐구나'라는 것이었요. 버스 지원금을 받아서 운영하는데, 그 돈이 다 시민이 낸 세금 아니예요? 그게 부당하게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밝혀냈는데도, 시민들은 파업을 독려해주기는커녕, 파업 자체를 불편해 하더라구요. 지역민들의 지지와 응원을 등에 입지 않고서는 싸워이기기 힘든다는 걸 배웠어요."

최종목표는 임단협 성사... "그냥 굽히고 들어갈 순 없죠"

정홍근 쟁의부장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최종목표는 임단협 성사. 사측이 성의 있고 진정성있는 태도로 임단협에 임할 때까지, 그는 싸움을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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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2일. 사측으로부터 노조사무실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지 6개월만인 2013년 5월 24일에야 현판식을 할 수 있었다. ⓒ 안소민


"좀 있으면 넷째가 태어납니다. 저라고 왜 다 그만두고, 평범하게 살고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다 알고있는데, 그냥 굽히고 들어갈 수는 없죠. 일해서 아내에게 월급을 갖다주면 당장은 좋을지 몰라요. 하지만 지금껏 700여일동안 함께 싸워준 아내에 대한 보답은 아닌 거 같아요. 임단협 성사하고, 노조가 사내에서 확실하게 자리잡게 만드는 것, 그게 아내와 가족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는 길일 겁니다"

망루에서 내려오고 난 후, 더욱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정홍근 부장. 소리없는 파업을 이어가고 있기에 더욱 외롭다. 그의 외로움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버스는 부지런히 손님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전북고속 #장기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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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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