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은도 둔장해수욕장의 노을. 모래밭, 펄밭, 바다가 구분이 안될 정도로 황홀하다.
이주빈
자은도 둔장해수욕장에 시나브로 노을이 내린다. 모래와 펄이 섞여있는 3.5km 백사장은 부드러우면서 단단해 발이 빠지지 않는다. 적막해져가는 바닷가에 푸릇한 탄성이 연이어 터진다. 가족과 함께 온 어린 아이들이 백사장에서 백합을 캐며 지르는 환호다.
면적이 100ha가 넘는 둔장해수욕장은 말 그대로 백합밭이다. 백합 종패를 뿌리면 해마다 2㎝씩 클 만큼 바다 토양이 좋다고 마을주민들은 자랑한다. 마을에서는 '둔장 어촌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문객들이 백합 캐기 등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있다.
백합은 익히 알려진 대로 조개 중의 으뜸으로 치는 고급 패류다. 그래서 상합(上蛤)으로 불린다. 조개 크기가 크다고 대합(大蛤)이라 부르기도 하고, 오래 사는 조개라며 생합(生蛤)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백합은 조개 속껍데기와 살이 하얘서 백합(白蛤)이라 부른다지만 다른 설도 있다. 조개 겉껍데기 모양이 백이면 백 같은 것이 하나도 없이 다 다르다 해서 백합(百蛤)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간에 참으로 멋진 이름 짓기다. 존재하는 실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름 짓기에선 꾸밈없는 민중의 진솔한 삶이 묻어난다. 한 무더기로 넘기지 않고 조개 하나하나의 모양에 의미를 부여한 자세에선 존재하는 것 모두가 하나같지 않음을 인정하는 무등(無等)의 세계관이 엿보인다.
자애롭고 은혜로운 섬, 자은도둔장해수욕장을 비롯한 자은도 해넘이길 12km는 2012년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대표 해안누리길 5선' 중 하나. 둔장 해변을 중심으로 이어진 솔 숲길과 해안의 풍광이 잘 어우러진 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둔장해수욕장의 노을 풍광은 매혹적이다.
홍조 그윽한 해가 할미섬과 두리섬 사이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노을 드는 풍광도 섬 이름을 그대로 닮았다. 자애롭고 은혜로운 섬, 자은도(慈恩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