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포기 움켜쥔 채 죽어간 어느 독립운동가의 최후

[신안군 힐링 섬길⑥] 암태도 추포 노두길

등록 2013.08.18 14:39수정 2013.08.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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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은 격리와 유폐가 아니다. 참된 힐링은 상처 있는 것들끼리의 위로와 공존이다.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전남 신안군에는 수려한 자연풍광과 노동하는 사람의 땀과 눈물이 잔파도처럼 함께 넘실대는 많은 섬길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천사의 섬, 신안군'에 보석처럼 나 있는 '힐링 섬길'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오늘은 그 여섯 번째로 암태도 힐링 섬길이다. [편집자말]
 섬의 어법과 육지의 어법은 다르다. 기약할 수 있음과 기약할 수 없음의 차이다. 추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서해.
섬의 어법과 육지의 어법은 다르다. 기약할 수 있음과 기약할 수 없음의 차이다. 추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서해. 이주빈

도회지에서 만난 두 친구는 명절을 맞아 각각 고향에 다녀올 참이다. 먼저 농촌이 고향인 친구가 말한다. "장흥에 다녀올게." 섬이 고향인 친구가 대답한다. "흑산도 들어간다." 한 친구는 갔다 돌아오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고, 한 친구는 그냥 간다는 이야기뿐이다. 육지의 어법과 섬의 어법이 이렇게 다르다.

육지의 어법은 미래의 행위까지를 기약한다. 떠나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안정성에서 언어의 여유가 묻어난다. 어떤 이들은 그 안정성이 농경문화와 어울려 한국의 독특한 보수성을 구축했다고 해설한다.


반면 섬의 어법은 지금 이 순간 자체만을 이야기한다. 한 치 앞을 기약하지 않는 짧은 문장에 언제 생사가 갈릴지 모르는 섬살이의 불확실성이 짙게 배어있다. 기약할 수 없고, 장담할 수 없기에 되레 자유롭다. 섬의 개방성은 이렇듯 생존의 불확실성이 주는 슬픈 선물이다.

섬에서 투쟁은 일상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모진 바람과 싸워야 하고, 먹고살기 위해서 태산 같은 파도와 싸운다. 일상과 생활 자체가 투쟁인 까닭에 사회정치적 성향은 일반적으로 보수적이다. 즉 어지간해서는 사회정치적 문제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싸움을 결심하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600여명이 단식... 결심하면 죽을 각오로 싸우는 사람들

 암태도 소작쟁의 항쟁 기념탑
암태도 소작쟁의 항쟁 기념탑암태면

그 유명한 암태도 소작쟁의를 기억하는가. <동아일보>(1924년 7월 15일 치)는 암태도 섬사람들의 당시 투쟁 소식을 '필경 아사동맹(畢竟餓死同盟)'이라는 제목을 달아 전했다.


암태도는 돌 많고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간척사업이 많이 진행돼 바닷가 돌밭은 논이 됐다. 자연스럽게 주민들도 어업보다 농사를 많이 짓게 됐다. 

친일 지주들이 암태도 소작인들에게 부과하는 소작료는 살인적이었다. 소작료가 7할이었던 것이다. 악랄한 착취에 견디지 못한 암태도 사람들은 1923년 12월 '암태도 소작인회'를 결성한다. 소작료를 인하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제는 친일 지주 대신 정당한 요구를 하는 농민대표들을 구속시켜버렸다. 분노한 암태도 주민들은 돛단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목포경찰서와 재판소 앞에서 두 차례에 걸쳐 단식투쟁을 벌였다. 목포경찰서 앞에서 벌인 1차 단식투쟁에는 암태도 주민 400여 명이 참여했다. 목포재판소 마당에서 벌인 2차 단식투쟁에는 암태도 주민 600여 명이 참여했다.

암태도 주민들의 기세에 놀란 일제는 "소작료는 4할로 인하하고, 구속자는 쌍방이 고소를 취하하며, 비석(주민들이 무너뜨린 지주 조상의 송덕비)은 소작회 부담으로 복구한다"는 약정서를 지주 측과 소작회가 교환하게 했다. 사실상 암태도 주민들의 승리였다.

독립운동가 서태석 선생을 아십니까

 추포도에 있는 보호수. 그 기개가 예사롭지 않다. 나무 한 그루 보호하듯 희생과 헌신으로 나라의 틀을 이들을 예우해야 하지 않을까.
추포도에 있는 보호수. 그 기개가 예사롭지 않다. 나무 한 그루 보호하듯 희생과 헌신으로 나라의 틀을 이들을 예우해야 하지 않을까.이주빈

이 투쟁의 중심에는 1907년부터 1915년까지 암태면장을 지낸 서태석이라는 인물이 있다. 면장을 하면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을 절감한 그는 1920년 3·1운동 한 돌을 맞아 목포에 태극기와 '대한독립 1주년 경고문'을 돌리다 수감됐다.

1년 동안 수감생활을 마친 그는 연해주로 가 사회주의 사상과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암태도로 돌아와 소작쟁의를 주도했다. 소작쟁의 투쟁 승리 이후 그는 독립운동에 철저히 복무한다. 그리고 잔혹한 고문과 수차례의 수감생활이 '독립운동가 서태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잔혹한 고문으로 그는 정신분열증을 앓게 된다. 제정신이 오락가락하던 그는 주변의 냉대 속에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리고 결국 여동생이 살던 압해도 어느 논둑에서 벼 포기를 움켜쥔 채 쓸쓸하게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1943년 6월, 그의 나이 쉰여덟이었다.

 추포 노두길. 만조로 불어난 바닷물이 노두길을 찰랑거리고 있다.
추포 노두길. 만조로 불어난 바닷물이 노두길을 찰랑거리고 있다.이주빈

1.2km에 이르는 추포 노두길을 걷는다. 주민들이 울력으로 냈던 옛 노두길 옆에 시멘트로 새 노두길을 냈다. 한 독립운동가의 쓸쓸한 최후처럼 슬픈 파도가 노두길에 흘러넘친다. 만조(滿潮)다. 지나쳐도 좋은 것이 있다면 역사와 그 공간에서 치열하게 헌신했던 이들에 대한 예우가 아닐까.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던 독립운동가 서태석. 하지만 대한민국은 2003년 8월까지 그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사회주의 운동가였기 때문이다. 대신 독립군을 때려잡으러 쫓아다닌 자들이, 제 겨레의 꽃 같은 젊은이를 일제의 총알받이로 내몬 이들이 서태석보다 먼저 대한민국의 훈장을 받았다. 숱한 의문과 체념이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을 냉소하게 한다.

터벅터벅 노두길을 걷는데 가벼운 첨벙 소리가 들린다. 짱뚱어 몇 마리가 바다 위를 박차 오르며 놀고 있다. 녀석들 옆으론 장작불에 달궈진 구들장처럼 뜨거운 돌멩이위에서 짱뚱어들이 낮잠을 즐기고 있다. 원래 짱뚱어는 만조 때는 굴을 파고 숨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뜨거운 돌멩이 위에서 행복하게 낮잠을 자고 있다니….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피와 죽음의 대가로 세워진 대한민국은 헌법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행복추구권을 명시하고 있다.

바람아, 그이의 쓰린 눈물을 훔쳐가렴

 짱뚱어가 만조에 나와 낮잠을 즐기고 있다.
짱뚱어가 만조에 나와 낮잠을 즐기고 있다.이주빈

 낮잠에서 깬 짱뚱어가 바다 위를 점프하며 어딘가로 마실을 가고 있다.
낮잠에서 깬 짱뚱어가 바다 위를 점프하며 어딘가로 마실을 가고 있다.이주빈

그 사람이 어떤 사상을 가졌든, 그이가 어떤 취향을 선호하든,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온갖 고초를 당하며 건국을 위해 몸바친 독립운동가들이 국가의 외면과 차별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안타깝게도 너무 많은 사례를 알고 있다.

누이가 사는 섬 외딴 논둑길에서 벼 포기를 움켜쥔 채 쓸쓸히 생을 마감했던 한 독립운동가의 최후가 차마 잊히질 않는다. 속절없는 바람아, 그이의 쓰린 눈물일랑 훔쳐가렴. 철없는 파도야, 그이의 서러운 몸뚱아리 꼭 안아주렴.
#신안군 힐링섬길 #소작쟁의 #독립운동가 #암태도 #짱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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