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어법과 육지의 어법은 다르다. 기약할 수 있음과 기약할 수 없음의 차이다. 추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서해.
이주빈
도회지에서 만난 두 친구는 명절을 맞아 각각 고향에 다녀올 참이다. 먼저 농촌이 고향인 친구가 말한다. "장흥에 다녀올게." 섬이 고향인 친구가 대답한다. "흑산도 들어간다." 한 친구는 갔다 돌아오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고, 한 친구는 그냥 간다는 이야기뿐이다. 육지의 어법과 섬의 어법이 이렇게 다르다.
육지의 어법은 미래의 행위까지를 기약한다. 떠나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안정성에서 언어의 여유가 묻어난다. 어떤 이들은 그 안정성이 농경문화와 어울려 한국의 독특한 보수성을 구축했다고 해설한다.
반면 섬의 어법은 지금 이 순간 자체만을 이야기한다. 한 치 앞을 기약하지 않는 짧은 문장에 언제 생사가 갈릴지 모르는 섬살이의 불확실성이 짙게 배어있다. 기약할 수 없고, 장담할 수 없기에 되레 자유롭다. 섬의 개방성은 이렇듯 생존의 불확실성이 주는 슬픈 선물이다.
섬에서 투쟁은 일상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모진 바람과 싸워야 하고, 먹고살기 위해서 태산 같은 파도와 싸운다. 일상과 생활 자체가 투쟁인 까닭에 사회정치적 성향은 일반적으로 보수적이다. 즉 어지간해서는 사회정치적 문제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싸움을 결심하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600여명이 단식... 결심하면 죽을 각오로 싸우는 사람들